어머니 이야기
밭가에서 - 김 용 택 -
아들아
내 없이살아 못 배운 죄로
빼앗기고 살며
흉년 든 논밭뙈기 알곡식 훑어 씹어
피와 눈물과 사랑을 함께
불덩어리 같은 너의 몸에 흘려넣었느니라
숨소리 꺼져가다 살아났던 아들아
너그덜을 낳아 기르며
이 논밭 임자로 살고 싶어
그 난리통에도 찢어질 듯 우는
너그덜을 들쳐업고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앞산으로 도망칠 때
여기저기 피 흘리며 쓰러지던 사람들
귓가를 스쳐 발 아래 콩튀듯 하던 총알들
얼매나 입이 바싹바싹 타고 쓴내가 나고 오금이 저리던지
간이 떨리던지
그때는 꼭 죽는 줄로만 알았느니라
우리가 뭔 죄였냐
우리가 뭔 죄였는지 아직도 난 모른단다
앞산 밭가에 굴을 파고
배고파 우는 너그덜 입을 틀어막으며
밤과 낮 따로따로 시달리며
풀뿌리 나무껍질로
모진 목숨을 연명했느니라
동네에 불을 지른 후
야야, 말도 마라 그 세간살이들이 다 타는데도
우리덜은 꿈쩍 못했느니라
이따금 너그 아버지는 개처럼 끌려가서
개처럼 두들겨맞을 때
나는 사지가 벌벌 떨리고
눈에서 불똥이 튀었느니라
헌 살강같이 살이 찢기고 터져
실신한 몸에
된장을 바르고 똥물을 먹이며
나는 피눈물을 쏟았느니라
오살헐 놈들 니 애비가 무슨 죄였니
농사 지은 죄밖에 없는 니 애비를
시방도 살아나온 굽이굽이 생각하면
눈물이 새로 나온단다
초근목피, 말들이 쉽고
보릿고개, 말들이 좋지
난리가 끝난 흉년 든 오월이었느니라
다슬기를 잡아 순창에서 된장과 바꿔오다가
(얘야 그땐 된장만 있으면 살았단다. 아무 풀이나 된장만
넣으면 죽이 되고 허기진 배를 채웠단다)
네 동생을 밴 몸으로
어찌나 허기가 지던지
검게 익은 오디를 아귀아귀 정신없이 따먹고
식곤증으로 뽕나무 아래에서
세상 모르게 잠든 적도 있었단다
생각해보렴
오디를 환장한 사람처럼
따먹던 니 에미 모습을
깨어나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갈길은 멀고 어찌나 겁이 나던지
얘야, 그 지긋지긋한 세상 세월을
이 터진 입으로 어찌 다 주워섬기겠느냐
뭐니뭐니 혀도 배고픈 것만은 못 참겠더라
눈에 쌍불을 켜고 먹을 것만 보면 환장허겄드라
한번은 어찌나 배가 고프던지
제사 때 쓰려고 도장 깊숙이 감춰둔 쌀을
돌라가지고 앞산 밭가에서 밥을 해먹다
너그 할머니한테 들켜
을매나 혼이 났던지
그때를 생각하면 시방은 우습구나
그땐 누렇게 부황들이 든 얼굴들이
무섭기까지 했더니라
얘야, 이날 입때까지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옷
나도 너그덜도
제대로 못 먹고 못 입으며
젖 보채고 밥 보채는
너그덜을 업고 데리고
모내고 밭매고 삼 삼아 베 짜며
(아이고 지금도 생각이 난다. 셋째를 낳을 때 한창 모내기
철이었느니라. 배가 어찌나 부르던지 다리를 쭉 벋고 못
자리판에 퍼질러앉아 모를 찌다 배가 아파 집에 와서 셋째
를 낳았느니라)
못 배운 게 하도 원이 되고 한이 되고 피가 맺혀
너그덜만은 지게 지게 하지 않으려고
손톱 밑에 흙 들게 하지 않으려고
소 키우고 돼지 키우고
한푼 두푼 피같이 애껴
어찌어찌 전답을 장만하고
내 살과 내 피와 내 뼈를 갈아
거름과 씨앗으로 전답을 걸구고
손톱 길 새 없이 논밭에 살았단다
이 손과 얼굴과 몸뚱어리를 봐라
이게 어디 온전한 삭신인가를
니 아부지 옷을 봐라
어디 성한 속옷 하나 있고
나들이할 빤듯한 옷 한벌 있는가를
우리 같으면 모든 장사꾼들 다 망할 것이다
어디 이발 한번 제때에 한 줄 아니
세월은 빨라
인자는 너그덜도 제 길로 한 길씩 자라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만
내가 죽으면 물려주려 뼈빠지게 장만한 땅이
이렇게 풀들이 우북하게 묵어가고
밤나무 감나무들은 쓸모없게 되고
외양간은 비었구나
고향도 전답이 있어야 고향이고
그러네 저러네 혀도 농사꾼은
땅을 갖고 있어야 농사꾼 아니더냐
인자 팔 만한 논밭은 없고
너그덜이 고향 떠나 뿔뿔이 흩어진 것도 서러운데
너그덜은 고향 떠나
타관에서 가난에 쫓기고
우리는 여기 남아 이날 입때까지
이제나 저제나 마찬가지로 사니
죽어나는 게 촌사람뿐이구나
왜 이러다냐
왜 이렇게 세상은 갈수록 험하고
살수록 기가 맥힌다냐
아, 글씨 농사 질 땐 몰라도
농사만 짓고 나면 맥이 풀리니
얘야
논 팔러 온 아들아
내 없이 살았어도
남의 눈에 눈물나게 허면
내 눈에선 피눈물이 나는 줄 알며 살았단다
세상 이치가 애비는 애비대로 따라간다는 말을 믿으며 살았단다
생각하면 할수록 목이 메어오고
설움이 복받치는구나
여기저기서
불쌍한 내 자식들아.
김용택님의 첫 시집이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섬진강 곁에서 살아낸 삶이 이리 고단하신데...
앉아서 편히 글로 읽으니 미안코 아쉽습니다.
그리고... 영어 이야기도 아닌데 여러분~ 긴 글 읽혀드려 죄송하기도 하공...
시를 읽으며... 오늘도 열심히 감사하며 살고,
오늘도 열심히 자식 공부시켜야 되겠다 마음먹어봅니다.
우리 자식들이 부모님과 선생님의 깊은 뜻과 먼 듯한 미래를 예측하진 못해도
오늘 하루 성실하기에... SQR 모두 잘해주었죠? 보여주세용~~~♡


쑥쑥몰
체험이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