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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저 샐러드를 먹다가

  • 홍박샘
  • |
  • 2014-01-22
13

(일화 1) 이름도 거창한 씨저 샐러드

 

아주 젊어서 모 대사관 직원과 식사를 했습니다. 고급 호텔 이탤리언 레스토랑.

시저 샐러드를 주문하면서 그 양반이 "저는 앤초비를 좋아해요. 아끼지 말고 써주세요." 해요.

제 귀에 참 세련되게 들리더군요. 우선 씨저 샐러드에 앤초비가 들어가는 지도 몰랐거니와,

앤초비라는 게 멸치 같은 생선을 소금에 절인 건데 그게 우리 입에 맞지 않는다고 들었거든요.

한국인들이 유학 가 주문 잘 못해 앤초비 듬뿍 든 피자로 질겁했다는둥... 흉흉한 소식도 들었고.

그 걸 즐긴다는 대사관 아줌마가 참 서양 문화에 익숙한 글로벌인 처럼 보여서 멋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죠. "겉절이에 멸치젓 좀 많이 넣으세요." 하는 겁니다.

한국에 오래 산 서양인이 그런 말 한다고 해서 뭐 그리 멋지냐 이거죠.

 

그런데 그렇게 주워 담은 앤초비로 그 이후 다른 레스토랑에서 내가 폼 잴 기회가 있었습니다.

희한하게 넓은 나무 판에 그 상추(로메인이라 하죠)를 길게 자르지 않고 뉘여놓고,

그 위에 드레싱을 뿌렸는데 나무 판 옆에 다지지 않은 앤초비 몇 마리를 따로 줬더라고요.

그깟 샐러드용 상추를 나이프와 포크로 썰어먹게 해놓았더란 말입니다.

상대가 앤초비를 가리키며 요게 뭐냐고 묻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앤여사라고....

시저 드레싱에는 요 분이 들어 간다고 태고적부터 아는 듯 설명이 가능했습니다.

상대가 내가 앤초비를 아는 것에 그리 인상깊어 하지 않을 양반이었고

저 역시 겉절이에 멸치젓이 뭐 대수겠냐는 생각을 가진 때라 자연스러웠습니다.

 

일화 1 메세지: 알고 보면 별 거 아닌데 알아 두면 그래도 배경지식이 된다.

 

--------

(일화 2) 듣도 보도 못한 스트로짜쁘레띠

 

그냥 흔한 파스타집에서 만난 어떤 여인. 둘이 먹었으니 파스타 두 종류시켰을 테고

전체랍시고 마늘 빵 비스무리한 거 하나 시켰고 아마 샐러드가 있었을 겁니다.

그 여인은 파스타에 대해 아는 많은 지식을 메뉴 선택 시 늘어놓으시더군요. 

그런데 링귀니, 펜네, 페투치니, 푸실리 등 흔히 보는 파스타일 뿐이었습니다. 

가끔 우리는 그렇게 나 만 아는 줄 알거나 나도 안다고 알리고픈 어색한 시기를 겪습니다. 

 

다른 얘기 하나 더. .

유명한 걸로 정평이 난 이탤리언 식당 메뉴판에 아주 낯선 파스타 이름이 즐비합디다.

Strozzapreti. 스트로짜쁘레띠. 같이 식사하는 양반에게 물었더니

두 줄의 파스타를 살짝 비튼 듯 꼬은 short-cut pasta라고 알려주더군요.

서양음식에 노출돼 성장했고 그 유명한 ㅊ동 토박이라 좋은 음식점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묻는 저도 금방 알아듣고, 설명하는 그도 별 대단치 않게 여기는 자연스러운 대화였습니다.

 

말이 파스타지 이태리 사람들 밥입니다.

우리가 쌀, 보리, 조, 수수, 조.. 좀 더 나가면 5분도미, 7분도미, 뭐 이렇게 잘 아는 것과 같겠지요.

이태리 남자랑 사는 내 친구는 파스타라면 신물 난다네요. 일년 열두 달 매끼 먹어보라고요.

남편은 파스타 먹고 자기는 밥에 물 말아 한국서 공수해 온 장아찌랑 먹는 답니다.

 

일화 2 메세지: 조금 알면 많이 안다고 알리고 싶다.

 

---------

 

시답잖은 얘기였지만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뭐든지 처음에는 어색한 티가 납니다. 거기서 멈추면 영원히 어색한 짓을 해야 합니다. 

그 단계에서 계속 추구하면 많이 알게 되고 세련되지고 전문가가 되지요.

저는 대학 입학하고 처음 호텔 레스토랑에 갔는데 일회용 잼을 요플레 처럼 숟갈로 떠먹었습니다.

저를 데려간 상대가 조용히 뚜껑을 뜯어서 빵에 발라 먹는 모습을 천천히 보여주더군요.

지금도 여전히 우아하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웬만한 리셉션이나 파티에서 그럭저럭

천천히 먹으며 담소하며 즐기는 혹은 불편하지 않은 정도는 됩니다.

 

나는 영어선생이니까 결론은 요걸로......

아이들 영어도 그렇지 않을까요. 조금 하다가 말면 영원히 그 수준입니다.

또 조금 할 줄 안다고 떠벌리기만 하고 더 노력하지 안으면 세련되지 못한 영어가 지속됩니다.

자꾸 관심 갖고 갈고 닦고 조금 쉬었다가도 또 다시 노력하고 그렇게 그렇게

삶의 일부가 되어야 영어 구사가 몸에 뱁니다.

수 십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요? 하루에 단어 50개? 문법 문제 풀기?

 

----------

글을 써놓고 이게 주제가 있는 일관성 있는 글인가,

그냥 잡문인가, 내가 먹는 거 뒤기 좋아한다는 겐가 구분이 안가요.

그냥 떠들고 싶은 때도 있잖아요. 웍싯 만들다 지쳐서리... ㅋㅋ

저녁에 시저샐러드를 식탁에 놓았시유. 별건 감요? 서양상추에 시판용 드레싱 확 뿌린 거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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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꽁이
  • |
  • 2014-01-23 10:43
답댓글

저는 뭔가를 깊게 파고드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런가..

어디 가서 뭔가를 아는 체 할 게 없더라구요..ㅋㅋㅋ

그래서 누군가가 어떤 것을 자세하게 설명해주면 와~하고 듣는 편이예요..^^;;

그렇지만, 자신이 아는 걸 아낌없이 주려는 분과 단지 자랑삼아 얘기하는 분은 구별이 되더라구요..^^

 

실은 제가요..요즘...소의랑 사이가 좀 그래요..ㅡ.ㅡ

시간은 없고 짧은 시간 안에 무언가를 하려고 하니, 저는 닥달하는 엄마가 되어버렸네요..

내가 쏟아부은 것보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초라하니

저도 속이 좀 상하게 되네요..

전에는 그런 마음이 안 들었는데, 초등학교 올라오니..왜 그렇게 되는걸까요...

그래도 자꾸 관심 갖고 갈고 닦고 쉬기도 하면서 노력해볼게요..^^

 

박사님 글이 요즘 제 상황을 잘 헤쳐나가라는 글 같네요..

감사합니다..^^ 으흐흐...

박사님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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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박샘
  • |
  • 2014-01-23 11:00
맞아. 알기 때문에 설명해 주려는 사람과 어쩌다 들어서 아는 걸 드러내려는 사람은 표시가 나요.
내가 세상에 만난 수 많은 사람에게 거들먹 거리고 아는 체를 얼마나 했는지 가끔 얼굴이 화끈해.
내가 영어 좀 안다고, 미국 사정도 안다고 사람들한테 무지하게 떠들고 잘난척 했다우.

소의 아직도 애기여. 그냥 갈 길이 멀어 이 사람아.
난 오늘 새벽에도 대학 간 아들놈이 과목 하나가 어렵다고 징징대는 카톡 받았어요.
야 이 눔아, 니 인생 니가 알아서 해, 하고 전화할라다가 애미한테 하소연 하는 걸
그럴 수 없어 전화 걸어 그냥 의논 상대 해줬어요.
전화 끊고는 답답하고 한심하기 이를 데 없지만 어쩌겠나 그 애는 내가 유일한 안심통로인걸.
그대도 소의한테 안심통로가 되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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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령돌맘
  • |
  • 2014-01-23 10:13
답댓글

ㅋㅋㅋ 박사님 글을 읽으며 혼자서 웃어댑니다..^^

저는요.. 성격이 그래서인지.. 모르는것이 있으면 아는것으로 선택하기만 했었답니다..

그런데 아이 키우면서 그런것도 바뀌어 가더라구요... 모르는것도 챙피하지 않고.. (그래도 가끔 챙피하긴 해요..ㅋㅋ) 당당하고.. 그냥 하나하나 배워가지 뭐~ 하는 스타일로 바뀌더라구요..

그런데요.. 그런것들이 내 삶을 좀더 멋지게 변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어주기도 하더라구요..

뭔가에 자꾸 도전해보고...  실패하거나.. 창피함을 당해도 그런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새로운 기회가 되구요..

 

박사님의 음식이야기...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알려주시는 글이라 생각해요..^ㅡ^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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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박샘
  • |
  • 2014-01-23 10:52
모른다고 묻는 것도 자신감이어요.
조금 아는 것도 같아서 그냥 넘어갈까 할 때가 있는데 그게 오히려 배움을 막습디다.
나는 이제 모른다는 걸 드러내고 싶지 않는 순진함은 없어요.
내가 메뉴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면 거기 직원한테 물어요.
또 와인을 해야할 경우 내가 택한 메뉴와 어울리는 와인 골라달라 하고.
과감하게 안 마신다고 거절도 하고요. 내가 지불한 비용에 대한 서비스 받는 거란 여겨요.
아주 격식을 갖춘 행사에서는 좀 알았으면 싶은 매너나 음식 이름도 있더라고.
그런데 그런 격식있는 자리가 평생 몇 번이나 있겠수. 그 또한 그럭저럭 지나갑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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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랑팔랑
  • |
  • 2014-01-23 00:36
답댓글
어디서 본 것은 있어 가지고...스테이크 '미디움'으로 시켰다가 피 뚝뚝 떨어지는 것 보고 1/3도 못먹고 나온 적이 있어요^^

그 이후 트라우마일까요??? 이상하게 소고기를 구워 먹으면 폭풍 설* ㅠㅠ..
찜과 불고기는 괜찮아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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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박샘
  • |
  • 2014-01-23 09:10
그게 애매해요. 딱 계량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요리사에 따라 굽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medium이면 가장 가운데 안 쪽은 익지 않아 칼로 자르면 피가 나오죠. ㅋㅋ
칼로 잘라 보고 내가 원하는 굽기가 아니면 웨이터 불러서 좀 더 구워달라면 돼요.
훈련 받은 웨이터들은 손님이 스테이크를 한 컷 자를 때까지 기다려 만족도를 묻는답니다.
우리 처럼 삼겹살 먹는 민족은 medium well done이나 well done이 맞아요.
아무리 well done은 뻣뻣하다고 해도 굳세게 well done만 먹는 제 남편 있시요.
아들은 medium rare를 먹어요. 그야말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난 그렇게 구워 먹인 적이 없는데 어쩌다 그리 원시 혹은 세련이 됐는지 모르갔시요.
팔랑여사 그럼 육회는 전혀 못 드시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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