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는 왜 피아노를 칠 줄 모르지요?” 서른 넘은 아들이 묻는 말에 “넌 동생과는 달리 죽어도 피아노 치기 싫다하여 그만 두라했기 때문” 이라 했더니 “아니 하기 싫어한다고 당장 그만 두게 하는 부모가 어디 있어요, 야단을 쳐서라도 계속하게 했어야지” 라는 기막힌 원망(?)을 들었다는 분이 있었다. 나 역시 조르고 졸라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지만 오래가지 않아 흥미를 잃었던 기억이 있다. 생각했던 것만큼 재미있지도 쉽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무서운 아버지를 둔 덕에 음치, 박치는 면했으니 하기 싫어한다고 그만두게 놔두지 않은 아버지께 감사할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 악기 하나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플루트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단소나 리코더 등은 학교 음악시간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딸아이가 커서 드디어 악기를 가르치고 싶은 나이가 되었을 때 첼로를 시키고 싶었지만 이사를 자주 다녀야 했던 사정을 고려하여 바이올린으로 정했다. 이동 시 비행기 좌석을 두 자리 사야한다는 말에 첼로는 바로 제외되었으니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의 악기 선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셈이다. 악기점도 없고 선생님도 오로지 한 명뿐이었던 -그나마 다행인 것이 옆 나라인 코트디브아르에는 선생님도 아예 없다고 했다 - 세네갈에서 드디어 바이올린 수업이 시작되었다.
서울에 주문한 악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한테 몇 번이나 다짐받아 놓은 것이 있었다. 일단 시작하면 절대 중도 포기는 없다는 것. 그러나 몇 번 레슨을 받아보더니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것만 폼 나고 좋았지 팔도 아프고 영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급기야는 처음 시작할 때의 약속을 들먹이며 “그렇게 연습 안하면 이 바이올린 다른 아이 줘버린다”고 협박(?)을 했는데 이것이 영 내 체면을 구기는 일이 되었으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응 줘” 하는 것이 아닌가. 울면서 매달리며 열심히 할 테니 제발 바이올린을 계속 하게 해달라고 하길 기대했던 내가 보기 좋게 한 방 먹은 거였다. 아이는 어릴 적 나와는 달랐던 것이고 순간 나는 어떻게 이 사태를 수습해야할지 당황했다.
그 때 무슨 수로 그 고비를 넘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가 지금도 여전히 바이올린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잘 넘기긴 한 모양이다. 아마도 이리 구슬리고 저리 꾀면서 위기 때마다 잘 모면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바이올린을 하게 해줘 정말 고맙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
악기가 아니라도 무얼 하다보면 그만 둘까 고민하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고 죽기보다 싫다면야 어쩔 도리가 없지만 그 고비를 잘 넘기게 해주는 것도 부모의 일인 것 같다. 잘하면 제 잘나서요, 못하면 부모 탓이 되는 경우가 어디 드문 일인가. 이래저래 부모노릇 하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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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Daniel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