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나 말이 되면 학생들의 면담신청이 늘어납니다. 한 여학생이 개인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이제 2학년을 마쳤으니 진로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할 시기입니다. 요즘엔 학생들이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하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재학 중에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이나 자격을 갖추기 위한 준비를 하지요. 해외연수나 교환학생, 워킹홀리데이, 인턴과정, 자격증 공부 등 휴학사유도 다양합니다. 입학에서 졸업까지 여학생은 6년, 남학생들은 군대를 포함하여 8년 정도가 보편적입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이 여학생은 어느 길로 가야 할 지 고민이 매우 큽니다. 본인의 희망과 능력, 적성만이 진로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학생처럼 가정 형편이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지요. 빨리 학교를 마치고 직장에 들어가 가계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학기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에는 10시간 이상을 레스토랑에서 일합니다. 교환학생도 가고 싶고 졸업 후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데, 부모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으니 어쩌면 좋겠냐고요. 물론 학생의 성향으로 봤을 때, 직장 생활도 아주 잘 할 것입니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에 수업준비나 발표도 깔끔하게 잘 합니다. 가을엔 스피치콘테스트에서 1등을 하여 유럽행 티켓을 부상으로 받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능력있는 학생이죠. 상담 내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인생에 관한 진로 상담은 극히 조심스럽습니다. 제일 당혹스러운 때는 바로, ‘교수님 강의를 듣고, 졸업 후 언어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입니다. 내가 학생들의 진로결정에 혹시나 잘못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닌지 한 편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공부는 오랜 시간 자기와의 싸움일 뿐만 아니라 주변의 도움과 희생도 따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확실한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섣불리 뛰어들면 안 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확고한 신념과 자신감으로 시작했다 해도 중간 중간 회의를 느끼고 고비를 맞게 되는 것은 여타 직업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공부한 기간은 끝맺음을 하기 전까지는 경력으로 인정될 수 없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방학동안 자신을 잘 들여다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멀고도 험한 길이 될 수 있고, 도중에 빠져나올 수도 있다는 일말의 망설임이라도 있다면 더욱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도 어려운 판국에 더구나 가계를 책임지라는 압력을 수시로 받게 된다면 시간이 갈수록 버티기는 더욱 힘들 것이 자명한 사실입니다. 결국 자신의 의지를 확인할 수밖에요. 얼마나 절실하게 원하고 있는지... 고집이 있다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원하는 답을 주었는지는 모릅니다. 인생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에 무조건 파랑새의 꿈을 부추길 수만은 없으니까요.
새 학기에 다시 만난 그 학생은 여전히 꿈을 놓지 않고 고집스럽게 학과공부에 아르바이트에 각종 행사까지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지난 가을 부상으로 받은 비행기티켓으로 여름방학에는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겨울 방학엔 학생통역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1년간 현지에서 공부와 일도 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니 그녀의 고집스런 노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정형편과 그 부담감 때문에 눈물짓던 학생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탄탄하게 다져가는 의지의 한국인이 있을 뿐이지요.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할 지 가닥이 확실히 잡힌 듯합니다.
아이들을 키우고 많은 학생들을 대하다 보니 고집스런 아이들에게는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과 추진력이 있다는 사실이지요. 고집이 센 아이들은 커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반드시 관철시키려 하거나 하던 일은 어떻게든 끝맺음을 하고자 자신과의 싸움에 승부를 겁니다. 성인이 된 대학생들에서는 주관이 강한 학생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런 학생들은 리더쉽이 강하고 그에 따른 책임감도 남다릅니다. 체계적인 사고와 설득력도 겸비하지요.
떼를 쓰는 것과 고집을 부리는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부당한 일에 억지를 부리는 것이 떼를 쓰는 것이라면 고집은 자기주장을 꺾지 않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고집이 센 내 아이, 아이가 고집을 꺾지 않고 막무가내일 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지요? 아이의 고집을 무조건 꺾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설사 시행착오를 겪는다 해도 아이에게 얻어질 교훈이 있다면 그것도 교육이라는 생각입니다. 역시 판단은 엄마의 몫이겠지요.
항상 정갈하게 잘 차려주는 밥상만을 받아먹는 내 아이, 이것이 내 아이를 위한 최고의 영양식일지 자문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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