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는 길에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진 택배상자를 받아왔습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상자입니다. 수취인은 딸아이로 되어있고 보낸 사람은 시아버님이네요. 한 서울 시내에 살면서 시아버님께 택배를 받기는 처음입니다. 상자를 딸아이 방 책상위에 올려 두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택배상자를 열어 본 딸은 ‘꺅!’ 소리를 지르며 몹시 좋아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성년이 되는 손녀딸을 축하하신다며 카드와 예쁜 목걸이를 선물로 보내셨다네요. 딸아이는 할아버지께 감사하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80도 훨씬 넘은 연세에 손녀딸에 대한 사랑이 자별하시니 감사하지요. 선물을 고르느라 백화점을 한 시간 이상 돌아다니셨다네요.
며칠 뒤면 성년의 날이고 우리 집에선 처음 맞는 행사가 될 듯했습니다. 당일 아침, 딸내미에게 일찍 들어오라 말했지요. 저녁 식사를 근사하게 준비하고 식탁엔 촛대도 갖다 놓았습니다. 장미꽃다발과 와인, 아이스크림 케이크까지 축하파티를 위한 만반의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요즘엔 다들 그렇게 하는 거라니 실로 좋은 세상을 만난 아이들입니다.
좀 늦을 거라고 먼저 저녁식사 하시라고 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아빠와 동생까지, 온 가족이 저 오기를 기다렸는데...
그야말로 제대로 ‘스팀 아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끼리 허전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식탁 한쪽에는 주인을 맞지 못한 장미꽃다발이 꽃병에 꽂혔습니다. 그래도 케이크를 함께 자르겠다는 생각에 냉동실 한 켠에 잘 보관했지요. 늦은 시간, 친구들에게 받았다는 꽃들과 향수, 선물을 가슴에 한아름 안고 딸이 들어왔습니다. 얼굴엔 기쁨이 넘칩니다.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딸을 본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고 엄마에겐 혹독한 교훈을 남긴 성년의 날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식탁 위 꽃병에 꽂혀있는 장미꽃다발을 보니 뜻 모를 눈물이 또 흘렀습니다. 나이가 드니 눈물샘도 주책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며칠 후, 두 딸을 가진 선배와 통화를 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딸아이에게 그 날 느꼈던 섭섭함과 배신감, 상실감, 허전함 기타 등등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 선배 웃으며 딸과 함께 당일을 보내려 했냐며 오히려 놀라더군요. 내가 아니라 내 딸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졸지에 개념없이 욕심 부리는 엄마로 전락했습니다ㅠㅠ
둘째와 셋째의 성년의 날엔 마음을 비웠고 늦은 귀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이가 커 가도 엄마는 항상 제자리에서 자식을 품에 안고 삽니다. 이런 착각에서 본격적으로 깨어나기 시작하는 시기는 아마도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난 이후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아이가 들고 나는 시간은 물론 아이의 방과 후 일정까지 엄마의 정보망에 정확하게 입력되어 있습니다. 아이와의 소소한 대화도 가능하지요. 그런데 대학생이 되고나면 갑자기 바빠진 아이와 대화는커녕 얼굴 마주할 시간도 부족해집니다. 극장에 같이 가자고 조르는 엄마가 귀엽다고 하는 학생도 있는 걸 보면 엄마들은 이제나 저제나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아이바라기임에 틀림없습니다.
남친이나 여친이 생기기라도 하면 엄마한테 수시로 날려주던 사랑의 멘트조차 자취를 감춘다니 마음의 준비를 해 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학기 중에 한두 번 정도는 학생들과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내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이다 보니 가끔은 학생들을 통해 그들의 진솔한 생각을 듣기도 하고 내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참고도 합니다. 엄마의 오글멘트 톡이나 이모티콘이 부담스럽다거나 수시로 보내주는 ‘좋은 글, 보이스피싱 경고’ 등은 특히 사양하고 싶은 엄마톡 1호라는 학생들의 말에 가슴이 뜨끔합니다. 오늘도 이미 한 통 보냈는데...
모두가 다름 아닌 내 얘기이니 내 아이들이 느끼는 부담감도 예외는 아니겠지요ㅜㅜ
마음을 비워야한다고 다짐합니다.
아이가 홀로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가슴으로는 여전히 아이를 향한 외사랑을 놓지 못하는 것이 엄마의 마음입니다. 또 다시 서운함에 눈물을 삼켜야 하는 순간을 맞게 될 지도 모릅니다. 거듭되는 상처로 흉터가 남을 만도 하건만 아이로 인한 상처는 ‘엄마표 단기기억상실증’으로 곧 잊혀지게 마련입니다.
친정엄마도 우리들을 키우며 그러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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