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쯤, 스위스 국제고등학교에서 IB (International Baccalaureat) 한국어를 담당한 경험이 있다. 제 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한 아이들에게 우리 문학을 가르치는 교과과정이었고 학생들은 주로 조기유학 온 한국 학생들이었다. 한번은 홍길동전에 대한 과제를 읽다가 학생 중 한명이 길동이 서자로 태어나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하는 표현을 ‘호명호제하지’ 못하니 로 쓴 것을 본 적이 있다. 한자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으니 ‘호형호제(呼兄呼弟)’를 잘못 알고 쓴 것이었다.
사실 이런 일은 요즘 학생들에게서 흔히 발견된다. ‘그 여자 탤런트에게는 백치미가 있어’ 했더니 백치미는 이가 하얘서 예쁘다는 뜻이냐 물었던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 맥아더 동상에 쓰여 있는 ‘한미수교 100주년...’ 문구를 읽고 한미수교는 어떤 종교냐 하는 아이도 있었다.
하긴 그 어렵다는 언론사 입사시험을 통과한 일간지 기자들이 쓴 신문기사에서조차도 전철(前轍)을 밟지 않아야 한다고 써야 맞는 것을 ‘전철을 밟아야 한다’로 잘 못 쓰고, 환골탈태(換骨奪胎)를 ‘환골탈퇴’라 하는 등, 심심찮게 오류가 발견되는 실정이니 학생들이 이런 실수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영어에 쏠림 공부를 하였으므로 우리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어 익히기에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글 전용교육을 선호하시는 분들이 들으면 펄쩍 뛰실 일이겠고 또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공부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니 좀 안쓰러운 일이 되겠지만 나는 우리말을 제대로, 바르게 쓰기위해서는 한자공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이다. 주장하는 측의 의견이 각기 다르긴 해도 우리말 속의 한자로 이루어진 낱말은 적게 보면 35%에서 많게는 70% 가량이라고 한다. 때문에 아무리 우리 역사 속에서 한문으로 쓰인 그 많은 문헌들에 대한 연구는 학자의 몫이라 치더라도 우리가 한글로만 글을 쓰고 말하는 것에는 확실히 부족함이 있다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자공부가 부담이 될 것이라지만 덤으로 얻는 소득도 있어 보인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하게 된 딸아이 말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걸쳐 억지로라도 외웠던 한자 덕에 비교적 쉽게 중국어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자 부수를 알므로 발음은 정확히 몰라도 처음 보는 중국어 단어의 뜻을 유추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또 우리말 단어를 떠올리니 중국어 표현을 배우지 않았어도 적당히 응용하여 쓸 수 있었다고 했다. 짐작컨대 라틴어를 알고 프랑스어를 하면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 배우는 게 쉬워지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또 역으로 중국어를 배우니 우리말 표현과 이해력이 늘더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나 자신도 한자공부에 보다 외국어 익히기에 쏟은 시간이 훨씬 많으므로 큰소리할 형편이 못되지만 영어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홈쇼핑 진행자들이 옷이나 화장품을 팔 때 흔히 하듯, ‘이번 씨즌 디자이너 에디션 롱자켓의 슬림한 핏감이 어쩌고’, ‘론칭 빅히트 리얼 아이템 앰플 모노더마가 저쩌고’ 하는 식의, 외국어 남용은 모른 체하면서 우리말 속의 한자표현을 틀리게 사용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더 이상 이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될 것 같다. 결론은, 요새 유행하는 말로 한자공부 ‘강추’이다. ‘백치미 있다’ 소리를 바로 알아듣고 칭찬으로 들어야 할지 말지를 제대로 고민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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