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7살’, 아이가 7살이 되면 천지분간 못하고 장난은 최고조요, 고집은 불통이니 미운 짓만 골라 한다고 어른들이 붙인 별명입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주변에 미운 7살을 빗겨가는 아이는 없었던 듯합니다. 장난꾸러기 남동생은 한옥의 미닫이문 한 가운데를 뚫고 넘나들었으니 창호지가 성할 날이 없었고 문창호지를 보수할 때면 친정어머니께서는 ‘미운 7살이라더니 미친 7살'이라고 푸념하시곤 했습니다. 그래도 회초리 한 번 드신 적이 없으셨지요. 작은 집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 한옥은 아니어서 창호지를 덧바를 일은 없었지만 집안의 벽이란 벽은 예외없이 사촌동생들의 낙서로 몸살을 앓아야 했습니다. 작은 어머니께서는 급기야 빈방 하나를 아이들의 낙서장으로 내어주셨고 방안에는 나지막한 사다리까지 마련해 주셨습니다. 손닿는 벽이 형체를 알 수없는 기하학적 낙서로 채워지면 다음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림도 그리고 창작활동(?)을 했지요. 가끔씩은 언니와 나, 동생까지 합세하여 낙서방의 벽을 온갖 색의 크레파스로 맘껏 물들이곤 했습니다. 우리들에겐 작은 천국과도 같은 자유로운 공간. 지금 생각해도 작은 어머니의 통 큰 스케일은 그저 경이롭고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고만고만한 또래들이 몰려 살던 동네에는 집집마다 조용한 날이 없었습니다. 다치고 깨지고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장독대에서 뛰어내리는가 하면 심지어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아이까지... 숨바꼭질을 한다며 골목에 놓인 쓰레기통에서 기어 나오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장독대에 숨다가 간장독을 안고 넘어지는 아이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미운이 아닌 미친 7살들이 동네 구석구석을 휩쓸고 다녔지요. 말이 7살이지 꼭 7살은 아닌 미친(?) 아이들을 해질녘이면 목청껏 부르며 찾아다니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저녁하늘에 메아리쳤습니다.
세월은 흘렀어도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에 고비는 있게 마련입니다.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했던 아이가, 부모에게 순종하며 행복만을 안겨줄 것 같았던 아이가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어찌보면 7살 즈음이 그런 나이인 것 같습니다. 부모나 형제의 보살핌 없이도 이제는 세상을 알겠노라 혼자서도 밖에 나가 놀 수 있고 머리도 굵어졌으니 말대답에 고집도 부리며 나름 독립을 구가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매사에 미숙하니 부딪히는 건건마다 사건사고는 당연하지요ㅎㅎ 미운 7살이 4살로 당겨졌다고 불평하는 엄마들이 있는가 하면 아이의 평생효도는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이미 끝이 났다고 한숨짓는 엄마도 있습니다. 4살이던 7살이던 이 고비를 잘 넘기는 데에는 엄마들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보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지요. 아이의 자아가 자리잡기 시작하는 시기가 된 것입니다. 당황스런 엄마로 아이와 맞서기 보다는 아이에게 맞는 맞춤형 교육방법으로 고비를 계기로 전환하는 방편을 모색하는 편이 좋을 듯싶습니다.
미운 아니, 미친 7살 아이들을 다스리던 친정 집안만의 비법은 다름 아닌 서예였습니다. 서예가였던 어머니 덕분에 우리에겐 어려서부터 붓이 친숙했고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연필보다 붓을 먼저 잡았습니다. 붓글씨를 쓰려면 우선 먹부터 갈아야 합니다. 무릎을 꿇고 정자세로 앉아 일체의 잡담도 없이 벼루에 먹을 곧추세우고 정성들여 먹을 갑니다.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윗물이 지지 않고 진한 국물 맛을 내기 위해 물을 서너 차례에 나누어 붓듯, 먹물도 이색이 지지 않도록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천천히 농도를 맞춥니다. 먹을 가는 동안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집중을 하며 글씨를 쓸 준비를 하는 거죠. 먹물이 완성되면 조심스레 한 획 한 획을 그으며 글씨를 써 내려갑니다. 미운 7살들에게는 극기훈련 시간이 따로 없지요.^^ 꾸준히 수련을 하게 되면 날뛰던 아이들도 차분해지고 진득한 자세로 변모하니 집안의 모든 사촌들까지 거쳐야 했던 통과의례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도 나 어린 시절과 같은 미운 7살, 미친 7살이 있는 지 주변에서 본 바가 없으니 모르겠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 아이들도 미친(?) 7살은 건너 뛴 듯합니다. 장난이 심하다 해도 예전 우리 자랄 때만큼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드네요. 아파트의 놀이터가 빈 공간이 된 지는 이미 오래고, 아이들끼리 뭉쳐서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노는 모습도 언제 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아파트 후문 앞에 무표정한 얼굴로, 때로는 무엇을 외우는지 혼자 웅얼거리며 학원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 또한 낯설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보며 가끔씩은 왠지 가슴이 짠~합니다.
엄마의 빨래 방망이를 피해 도망 다니며 정신없이 놀던 미운 7살, 미친 7살 사고뭉치 아이들이 그리운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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