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 때의 일이다. “사내자식들이 몇 대 치고 박고 한 걸 가지고...” 학교에서 싸우다가 상대 아이를 때린 것이 문제가 되어 학교에 불려간 부모가 있었다.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법인데 아들에게 사흘 정학 처분을 내렸다고 학교에 몹시 화를 냈다. 오로지 학적부에 기록이 남아 대학 가는데 지장 받을 게 걱정일 뿐, 상대방을 때렸다는 사실이나 맞은 아이가 받았을 마음의 상처 따위는 관심 밖인 듯했다. 기죽지 않고 한판(?) 벌인 아들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싸움은 대수롭지 않은, 일상적인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다만 이 다툼이 폭력적이 되면 특히 외국학교에선 문제가 심각해진다. 공작용 가위를 들고 단지 찌르는 시늉만 했는데 그 광경을 목격한 학생들의 신고로 해당 아이가 자퇴를 하게 된 경우를 보았다. 그런 공격성이 다른 학생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이유였다. 부모들이 평소 방관하면 안 될 부분이다.
딸아이를 키우다 보니 폭력이 걱정된 적은 별로 없지만 친구문제는 늘 신경이 쓰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이던가, 늘 학교 가는 것을 즐거워하던 아이가 어느 날인가부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얘가 어쩌고 쟤가 저쩌고... 주로 반 아이들에 대한 것이었는데 자꾸 듣다보니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2, 3년에 한 번씩 이제 좀 적응할 만하면 옮기게 되는 사정인지라 미안함도 있었을 것이다. 얼른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을 신청했다. 그런데 내 불만을 잠자코 들어주시던 선생님은 말끝으로 ‘그렇지만 댁의 따님도 만만치 않습니다’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애나 어른이나 다툼이 생기면 잘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서로 상대방 탓만 하는 법, 전학 후 새 학교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아이들끼리 기 싸움을 한 것인데 나는 내 아이 말만 듣고 다른 아이들을 탓하는 한참 모자라는 엄마였던 것이다.
사소한 감정 다툼이란 언제 어디서고 겪는 일이고 부모로서 아이가 상황을 슬기롭게 잘 넘기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도 맞다. 그런데 말은 이렇게 쿨하게 할 수 있지만 막상 자기 자식이 따돌림을 당하게 되면 그 화나고 속상한 마음을 삭히고 다스리기란 쉽지 않다. 또 속 시원한 해결책이 없으니 그저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엄마는 내가 외국아이들과도 친하게 잘 지냈으면 하지? 그런데 내가 주말마다 놀러나간다고 하면 싫어할 거잖아, 걔네들과 친해지려면 금요일 밤엔 같이 영화도 보고 밤샘파티에도 가야하는데” 프랑스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친구문제로 잔소리를 하자 아이가 울면서 한 말이었다. 딸아이는 그때 겪은 외로움을 엄마인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던 그 친구 덕에 잘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 같이 점심 먹고 같이 수다 떨고 숙제하는 친구, 그냥 편한 친구가 하나라도 있어서 웬만한 따돌림은 견딜 만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동안 친구 하나 없이 혼자 점심을 먹어야했던 아이의 외로움을 헤아려 주지 못했던 것이 몹시 미안했다, 남자아이들 경우엔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그런 걱정은 없다는데 그렇다고 농구나 축구를 실컷 하고 들어와 저녁밥만 먹으면 쓰러져 자버리는 고등학생 아들을 보는 엄마들의 마음이 썩 편한 것만도 아닌 눈치였다.
친구들도 두루 잘 사귀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라니, 이 모순 아닌 모순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이 공부하는 ‘착한(?!)’친구들하고만 어울리라는 것이 엄마들의 속마음일 텐데 엄마가 좋다고 하는 친구들만 사귄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지..... 아이 어릴 적 학부형들과 친해져서 여전히 자주 만나며 재미있게 지내는 낼 모레 환갑인 당신 딸이 살림은 안하고 너무 밖으로만 나돈다며 “갸들이랑 놀지 마래이”했다는, 80세 넘으신 노모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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