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오늘 읽은, 최근 들어 가장 통쾌했던 기사 한 꼭지 소개합니다.
(ㅎㅎㅎ 사실은 이게 본론 ^_____^ )
[1] 조중동 커밍아웃? “MB 살려준건 노무현 정권”
[칼럼] ‘잃어버린 10년’ 성과로 MB옹호하는 ‘자충수’ 사설
자칭 '비판신문' 조중동에게 노무현 정권은 다시 떠올리기조차 싫은 괴로운 기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반면 이명박 정권은 긍정하고 아끼고 밀어주고 사랑해야 할 그 무엇이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조중동의 비난과 공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슬로건이 있다. 바로 "잃어버린 10년"이란 수사가 그것이다. 조중동은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개혁정권 10년 동안 쉬임없이 "대한민국이 망해가고 있다"고 떠벌였다. 좌파정권 덕에 이 나라에 붉은 색 기운이 감돌고, 무능정권으로 인해 이 나라 경제가 활력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때 신문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자랑했던(지금은 60%대로 떨어졌다는 보도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조중동의 이런 프로파간다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특히 "노무현 정권이 경제를 말아 먹었다"는 집요한 세뇌전술은 '잃어버린 10년' 구호와 맞물리면서 경제대통령을 자임하는 이명박 후보에 대한 '묻지마 지지'로 나타났다. "노무현이 죽인 경제, 이명박이 되살린다"는 맹목적 믿음은 쓰나미처럼 2007 대선판을 휩쓸었고 그것으로 선거는 끝이었다.
그리고 2008년 10월. 대한민국은 이명박 정권 8개월만에 '제2의 IMF'를 걱정해야 할 절박한 처지에 내몰리게 됐다. 경제주권만 내주지 않았다 뿐이지, 돌아가는 모양새만 보자면 그때나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외국언론들의 계속된 위기경보에 정부 당국이 항의와 변명으로 일관하는 풍경이라든지 또는 정부가 은행 대외채무에 대한 지급보증 카드를 11년만에 다시 꺼내 든 것이라든지,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시장의 불신을 초래한 이명박 대통령의 헛발질이 계속되면서 조중동의 고민도 덩달아 깊어졌다. 이제 와서 매섭게 비판하자니 '경제구원자'랍시고 그를 치켜세운 지난 날의 흔적이 민망하고, 그렇다고 대한민국 경제가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상황에서 무작정 잘 한다고 박수칠 수도 없고...
'권언일체 공생공사'하는 사이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이 대통령을 감싸기는 해야 겠는데 내세울 전과 하나 보이지 않는 딱한 처지. 이런 딜렘머를 해결하기 위해 조중동이 꺼내든 히든카드가 바로 '자충수 사설'이다. 자신들이 그토록 저주해 마지 않았던 '잃어버린 10년'의 성과를 빌어 이 대통령의 경제실정을 옹호하는 기막힌 묘수(?) 말이다.
'이명박이 죽인 경제'를 변호하기 위해 '노무현이 살린 경제'를 인용하고 손을 벌려야 하는 조중동의 궁색함이 처절하게 묻어나는 사설을 몇 편 감상해 보자.
먼저 10월 22일자 동아일보 사설. 타이틀이 <‘국가 서열’ 전진이냐 후퇴냐 갈림길에 섰다>다. 이 대통령이 국민경제자문회의석상에서 발언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가 서열이 바뀔 수 있다"는 말에서 제목을 따왔다. 내용은 살펴보나마나다. 이게 전부니까.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류의 공익광고 사설에 무엇을 더 기대할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그래도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다며 동아일보가 내놓은 근거다. 사설은 게리 베이커 시카고대 교수의 말에 주목한다. 그가 현재의 가혹한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세계적으로 경제성장이 회복될 것이라며 세계인에게 용기를 주는 사례로 한국을 꼽았다는 것이다. "한국은 1997년 경제위기 때 녹초가 됐지만 그 이후 뚜렷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운운.
재밌지 않은가. 게리 베이커가 희망과 용기의 표상으로 꼽은 한국경제의 부활은 김대중-노무현 개혁정권 아래서 이뤄진 것들이다. 요컨대 '잃어버린 10년'의 자랑스런 업적이었단 얘기다. 그런 사실을 한사코 부정하던 동아일보가 이제 와서 그것을 추억하며 이명박 정권 하의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다고, 나아가 지금은 힘들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국가서열이 바뀔 수 있다고 노래하는 것이 다만 역겨울 뿐.
중앙일보라고 다를까. 10월 6일자 사설 <공포심·과민반응이 사태 악화시킨다>를 보자. "지금은 위기 상황이다"는 말로 시작하는 사설은 그 원인으로 "무모한 투기와 탐욕"으로 인한 세계 금융시스템의 붕괴와 "연일 갈팡질팡"하는 이 정부의 미숙한 대응을 꼽는다. 이 두 가지 요인이 더해지면서 위기가 더 심화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덧붙인다. "누구의 말처럼 이번 위기는 10년간 좌편향 정책이 초래한 산물이 아니다..."
중앙일보가 이처럼 위기를 강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일어설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사설 마지막 단락에서 중앙일보는 "우리 경제가 외부 풍랑에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만큼 허약한 체질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한다. 이렇게 긍정을 얘기할 수 있는 토대는 무엇일까.
"여전히 한국은 세계 6위의 외환보유국이고, 기업과 은행의 체질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재정적자는 미국·일본·유럽보다 훨씬 양호하다... 달러 부족에 따른 현재의 혼란은 일시적인 마찰이지 한국 경제의 건전성 자체가 치명상을 입은 것은 아니다."
아다시피 '세계 6위의 외환보유국'과 '기업과 은행의 체질개선' 등 '한국 경제의 건전성'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조중동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저주했던 그 정권들 하에서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구원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들 정권 덕에 그나마 숨을 쉬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한 입으로 "좌파정권이 경제를 말아 먹었다"고 욕하고, 다른 입으로 "그 기간 동안에 한국경제가 튼실해졌다"고 말하려니 속된 말로 얼마나 쪽팔릴까.
마지막으로, 조선일보는 동아나 중앙과는 한 차원 다른 색다른 '자충수' 묘기를 보여준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다함없는 증오를 자랑하는 신문답게 그를 향해 있는 힘껏 비수를 던졌는데 실상 피를 흘린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었더라는 전설의 묘기가 그것이다. 10월 3일자 <노 전 대통령, 요즘 어깨가 으쓱해졌습니까>란 사설을 들춰 보자.
사설은 노 전 대통령이 지난 1일 '10·4 남북정상선언' 기념 강연에서 발언한 말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한다. 북한 급변사태 때 대응계획인 '작계 5029'를 자신이 좌절시켰다고 자랑스레 얘기했다느니, 북한과 중국이 싫어하기 때문에 한미동맹도 강조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도 했다느니, 국가보안법을 폐기하려고 했다느니... 한 마디로 노 전 대통령은 빨갱이라는 것이다.
이런 류의 말은 워낙 많이 들어서 새로울 것도 없으므로 패스. 재밌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을 욕하면서 조선일보가 부지불식 간에 자신의 속마음을 커밍아웃하고 말았다는 데 있다. 이런 식이다. "노 전 대통령이 다시 이러는 것은 국민이 이명박 정권 초반에 실망하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얻은 때문일 것이다... 후임이 헤매는 것을 보고 으쓱해진 모양이다..." 운운.
이 대목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국민이 이명박 정권 초반에 실망하는 것을 보고"란 말과 "후임이 헤매는 것을 보고"란 말이다. 무슨 말인가. 자신들이 혼신을 다해서 밀었던 이 대통령이 헤매고 있으며, 국민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주고 있는 모습이 조선일보 눈에도 훤히 보인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솔직한 고백인가.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이 사설을 읽으면 필경 얼굴이 후끈 달아 오를 것이다.
폐일언 왈, 진실은 언제든 드러나고야 마는 법이다. 조중동이 '잃어버린 10년'이란 슬로건을 내세워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킨 것까지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러나 그 슬로건이 거짓이었다는 것, 그라고 그들이 '경제구원자'라 포장한 이 대통령이 실은 방향도 모르고 헛발질만 일삼는 무능력자에 불과하며, '노무현이 죽인 경제를 이명박이 살리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이 살린 경제를 이명박이 죽이고 있다'는 것, 나아가 조중동이 비난해 마지 않는 노무현 경제 덕에 그나마 이 대통령이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는 것을 조중동이 알아서 제 입으로 토설하고 있지 아니한가. 
▲ 문한별 편집위원
결국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개혁정권은 대한민국 경제의 희망의 토대를 닦았고, 이명박 대통령은 헤매고 있다", 이게 조중동 '자충수 사설'의 행간에 담긴 숨은 메시지인 셈이다.
[2] 많이 들으면 말할 수 있는데 왜 많이 읽는 것은 말하기로 연결되지 않는 걸까?
듣기와 말하기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에 대한 소박한 의문에서 시작한 글입니다.
원제목은 '음성정보가 어떻게 문법을 형성하게 되는가' 입니다. 세 번에 나눠서 올렸더랬습니다.
새로 치거나... 편집할 여력은 없어서 (아직 시험이 안 끝났답니다. ^___^;; ) 예전에 어느 까페에 올렸던 글을 그대로 퍼 올립니다. 에헹헹
※ 주의
길고 난삽하니 시간이 없으신 분은 걍 패스하세용~~
영어 교육과도 무관하지 않은 주제이지만, 순전히 제 가설과 추론에 의존한 글이기 때문에 주제 토론에 넣겠습니다. 관련 주제로 연구하고 계시는 분이나 집적되어 있는 데이타베이스에 접근 가능하신 분은 정보 좀 나눠 주시면 미리 감사드립니다. 도서관에 파묻히고 싶지만... 본연의 임무(육아)가 있는 관계로 흑흑- 뭐, 그렇답니다.
어제 낮잠 자고 일어나니 애들 아빠가 있길래 마음을 푹 놓고 문득 이 주제로 생각이 떠올라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더니, 애들 아빠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묻습니다. 그래, 돈 걱정 안하고 그냥 맘 편하게 공부만 했으면 좋겠어... 했더니, 인자한 표정으로,
머리가 말랑말랑한 상태로 보관을 잘 해 두랍니다. 나중에 애들이 돈 벌어다 줄 거라고... -_-;;
이런 집입니다. 후훗-
(1) 진화 정보의 전달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아기의 뇌는 유전 정보에 기록된 대로 초기 형태를 가질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모릅니다.)
얼만큼 발달이 가능할 것이냐에 대한 것은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만,
처음에는 부모가 전달해 준 진화 정보 만큼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테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와 100% 같은 환경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의 뇌는 원래 자신이 가졌던 가능성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기억이 나실까 모르겠습니다만, 용불용설이라고, 취득된 형질은 진화가 되지 않는다...고 했던 거?
야구 선수의 길어진 팔은 유전이 안 된다고...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직도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형질 변화는 26세까지 진행된 결과가 DNA에 저장되어 후대에 넘어간다고 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시간 제한이 있다는 가설) 고로 성장기와 최적 가임기 -- 가장 건강하고 생명력이 충만한 시기 --에 획득한 형질이 아이에게 유전된다고 가정한다면, 아이가 처음 갖고 태어나는 뇌는 생식 세포가 유전 정보를 획득할 당시 우리, 부모의 뇌가 어떤 상태로 분화되어 있었는가를 초기 발달 가능성 (A)라고 하겠습니다. (아이의 미래를 점치시고 싶은 분은 그 때 뭘 하고 계셨었는지, 뭐가 가장 쉬웠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뇌가 신체의 모든 기능을 관장한다고 할 때, 뇌 뿐만이 아니고 탄생 이후의 성장 발달은 모두 (A)의 시나리오를 따를 것입니다.
(2) 뇌 분화 - 시기와 기간의 제약
몸의 성장과 더불어 뇌도 (A)의 시나리오대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수정체가 초기에는 모든 면이 일정한 하나의 세포였다가 이후에 분화가 진행되어 어느 부분은 머리가 되고 어느 부분은 팔 다리가 되는지 정해지듯이, 뇌 역시 어느 부분이 기억을 담당하게 되고 어느 부분이 감정을 처리하는지, 각자의 기능대로 물질이 나뉘게 됩니다. 이 시기는 유전 정보에 기록된 대로이며 가능성은 초기 가능성 (A)에 환경 변수 (B)를 따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재 범람하는 유아 교육 정보는 거의 모두 (A)와 (B)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B)를 최적으로 하면 (A)를 능가해서 최적의 상태로 자랄 수 있다는 의견이 조기 교육에 가장 힘을 실어주는 가설입니다. 이것이 왜곡되고 오용되어 교육 현장에서는 환경 변수를 조절하면 분화 시기와 상관 없이 뇌에 모든 정보가 기록될 것처럼 부모들을 속이는 각종 상품 광고가 판을 치지요.
(B)가 (A)에 미치는 영향이 과연 어느 정도냐, 이것은 단언하기 힘듭니다만,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가 현재 내릴 수 있는 결론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 분화 시기가 정해져 있고, 길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기가 시신경 및 시근육 을 발달시키는 시기는 초기 6개월이라고 합니다. 시력이 안정적으로 자리잡는 시기는 취학기, 정도는 1이 조금 안되나 그렇습니다. 그런데 수렵, 채집이 아직도 주요한 삶의 유지 방식으로 남아 있는 아프리카 어떤 민족은 기본 시력이 5정도 된다고 하네요. 10km 밖에서 교통 표지판이 보인다고 하니... 음... ㅎㅎ 신생아 초기 6개월에 뭔 자극을 어떻게 주면 (A)를 이 정도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초점 맞추기 등등을 한다고 하지만, 사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우리 주거 환경과 시야가 넓지 않은 자연 환경을 고려할 때 이후의 환경 변수는 시력에 + 자극을 주는 것이 아니라 - 자극을 주는 것이 확실합니다. 반대로 아기가 빛을 보지 못하면? 시신경이 발달하지 못해 시력을 잃게 된다고 하죠.
둘째, 분화 시기와 기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대체 이거 어떻게 조사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 뇌에 이상이 있는 아이들의 MRI 촬영으로 얻어진 결과가 아닌가 하네요. MRI 검사는 전자파 때문에 좋지 않다고 하는데... 하여간 -- 굵직한 항목만 추리자면, 6개월까지 시신경 발달, 생후 1년 대부분의 자동 반사 작용이 사라지고 변연계가 환경 자극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게 되구요. 이 때 부모와의 애착관계, 정서적 안정이 중요하다는 이유는 초기 3년 동안에 변연계 발달이 우선적으로 진행되어 그렇습니다. 환경 자극을 받아 들여 신체 반응을 조절하는 부분입니다. 생후 6년 경에는 남아의 경우 독립적으로 발달하던 좌우뇌가 통합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 때가 문자 학습의 최적기라고 한다죠. 초3학년 시기가 되면 전두엽이 발달하기 시작해 이성적이고 깊은 통합적 사고가 가능하게 된다네요. 이후에도 뇌의 분화는 계속 진행되어 24세경, 성인의 두뇌를 완성한답니다.
{ 언어 발달에 관해서는, 언어의 외적인 부분 - 음운, 억양 등을 변별하는 시기가 만1세, 그 때부터 만3세까지 문법이 생성되고, 카테고리에 따라 어휘를 정리해 넣기 시작해 어휘량이 폭발적으로 늘어 나구요. 만3세부터 지속적으로 어휘가 증가하고 언어를 상황에 맞게 쓰는 기술이 발달합니다. 초기에는 청각 발달, 이후에는 인지 발달, 사회성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취학 연령 이후에는 사고력 발달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이게 시사하는 주요점은, 사고력이 발달할 시기에는 자연적으로 에너지가 그리로 쏠리기 때문에 언어의 외적인 부분은 습득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도 됩니다. 문법도 마찬가지로 사고력을 가동하여 '알' 수는 있지만 습득이 힘든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인지 발달 시기가 지나서 그렇습니다. 사회성 발달 시기를 지나 배운 말 좀 해 보려면 쑥스러워서 망설여야 하는 이유도 사회성 발달 시기를 이미 지나 실수를 두려워 하는 심리적인 저항이 생기기 때문이어요. }
정확히 언제 어느 부분이 (A)를 능가하여 뇌를 최적으로 발달시킬 수 있는 + 자극을 원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A)는 개인차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조기 교육이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할 것이라는 낙관은 하기 힘듭니다. 다만 우리는 문명 사회를 유지해 온 경험치로 취학 연령을 구분해 놓았습니다. 주요한 뇌발달 시기와 대충 일치합니다만... (A)가 선천적으로 현재 교과과정이 요구하는 지식 습득에 취약할 경우 대중 교육 라인을 그대로 따라갈 경우 아이는 필요한 자극을 받지 못해 자기가 선천적으로 우세한 부분을 키우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그 취약한 뇌를 조기 교육으로 어떻게 좋게 만들어 볼까... 아니면 다른 가능성을 모색할까... 하는 선택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부모 잘 만났냐 잘 못 만났냐에 달려 있습니다. 흑-
셋째, 자극이 넘쳐 스트레스가 되면 이것이 뇌용량을 감소시킵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는 오히려 뇌가 자극을 처리하는 양이 적은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판단인 모양입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큰 아이의 뇌는 검은 구멍이 숭숭 뚤려 있다네요. 스트레스 뇌파가 기억력 -- 전체 암기할 수 있는 지식의 양을 좌우하는 해마에 블랙홀을 만든다고 하니 유아기 조기 교육은 자극의 질은 +로 양은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에 최선을 다 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게 어렵습니다만 ^^;;)
(3) 음성 정보 수신 기록 과정
인간의 뇌발달은 선처리가 아니라 망처리입니다. 그래서 딱 어느 시기에 뭐가 끝나고 뭐가 시작된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또한 평균치에서 개인차가 어느 정도의 거리로 늘어서는지 역시 알 수 없습니다. 천재와 장애... 정도가 한계점은 될까요?
그걸 전제로 하고요. 보통 육하원칙이라고 불리는 여섯 단어는 언어 발달과 인지 발달의 선후 관계를 추적하는데 좋은 이정표가 됩니다. 아이가 처음에 머릿속에 갖는 의문점은 Where? 그 다음은 What? 입니다. 위치 정보는 아이의 시공간 지각력에 따라 좌우되는데 운동능력이 제한된 돌 전 아가에게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후에 등장하는 의문은 자신을 둘러싼 사물과 상황 정보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인지 발달이 이 수준에 이르면 어휘 발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고 대개 이 때를 18개월로 봅니다.
18개월을 경계로 그 전에는 아이의 운동 능력상 세상에 무제한으로 열려 있는 오감은 청각 뿐입니다. 자연히 아이의 에너지는 청각 정보를 해석하기 위해 쏠리게 되는데, 생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무시, 선택 청취가 가능해집니다. 여기서 [의문점 1] 이 제기됩니다. a 생후 돌 미만의 아기는 자기가 의식하는 청각 정보만을 저장하게 될까요, 아니면 b 주변의 모든 정보를 다 저장하게 될까요, 그것도 아니면 c 익숙한 패턴은 버리고 새로운 패턴만 골라 저장하게 될까요?
저는 여기서 a와 c를 선택하고 가겠습니다. 자기가 의식하는 청각 정보 중 익숙한 패턴은 버리고 새로운 패턴만 골라 저장한다.
생후 10개월 경 아기는 모국어에 쓰이지 않는 음운은 구별해 버린다고 합니다. 이후 특별히 귀를 기울여 듣지 않으면 아이들은 유성 파열음 (영어 /d/와 /g/ 음 같은 것) /r/과/l/ 등 우리말엔 없는 낯선 음운을 변별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거나, 쉽게 모국어에 있는 음운으로 대치하여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몇 년의 노출에 쉽게 교정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노출 시기가 늦으면 교정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18개월 이전 전 기간을 통해 아기는 청각 정보를 수신을 통해 언어의 음운, 억양, 강세 등의 외적인 부분을 파악하고, 옹알이를 하면서 조음 기관의 어느 기관에서 어느 소리가 나는지 훈련합니다. 들은 소리를 바로 흉내내는 것은 이 시기 아이만이 갖는 귀한 능력이지요. (성인이 흉내낼 때는 모국어에 있는 음운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뜻도 모르고 줄창 흘려 듣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고 말씀하시기도 하는데, 위와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1년에서 18개월 정도의 시간에 주의를 집중해서 하루에 4-5시간 정도의 흘려듣기를 하면, 외국어의 음운, 억양, 강세를 흉내낼 수 있습니다. 성인이 가장 배우기 힘든 부분이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다 자란 성인은 외국어에 그만큼 에너지를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을 주요한 한계로 지적하겠습니다. 아가들은 발달 단계상 자연히 인간의 음성에 주의가 가게 마련입니다. 생존 본능이죠.
아이는 귀에 수신된 청각 정보를 음절을 단위로 패턴화해서 뇌의 어딘가에 저장해 놓을 것입니다. 청각 정보만 저장되는 곳이 있을 것이고 거기에 붙어서 주렁주렁, 시공간 정보도 같이 어딘가에 저장이 될 것입니다. '사과'와 함께 색, 맛, 과수원의 풍경 등이 같이 떠오르는 이유는, 사과라는 청각 정보가 수신되는 과정에 점층적으로 시공간 정보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망의 매듭에, 반복되는 패턴 - 기능어라고 하는 것이 위치할 것입니다.
cat and dog 라는 무의미한 청각 정보와 apple and cookies라고 하는 무의미한 청각 정보 중 아기의 귀는 자연적으로 공통적으로 들리는 and 라는 단어의 패턴만 추출해 매듭을 형성할 것입니다. 이것은 뇌에 문법을 생성해 넣는데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그러나 TV만으로 말을 배우지는 못한다는 연구 결과는 이것이 소리 노출만으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님을 알게 합니다.
이제 나가야 할 시간이네요. 이슬이 데리러... 소리 패턴은 주파수 패턴을 의미합니다.
분명히 저장소가 따로 있을 거에요.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하는 아이들은 이 주파수 패턴을 저장하는 부분의 용적이 단일어 사용자보다 배는 크게 발달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문제죠. 흠...
(4) 범주화
아이가 처음 엄마를 '엄마'라고 부른 순간... 그 감동을 이루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빠도 엄마라고 하고, 이모도 엄마라고 하고... 보이는 사람은 다 엄마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니 뭐 이건 괜찮습니다. 어느날 옆집 아저씨한테,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혹감... ㅋㅋ
개를 보고 멍멍이라는 말을 배운 아기는 고양이라는 말을 새로 배우기 전에는 개와 비슷한 네 발 동물을 멍멍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자기가 배운 말을 지칭하는 대상을 확대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 본 과일에는 멍멍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 과잉 일반화는 처음 말문이 트인 순간부터, 대개 돌 전후라고 하더랍니다만 만3세까지는 정상범위라더군요, 문법을 형성해 나가는 전 기간을 거쳐 진행되는데, 단어를 인지한다는 것은 사물을 인지한다는 의미이고, 그 과정에 저차원적이지만 자신이 파악한 사물의 특성을 종류별로 분류하게 됩니다. 이것은 망구조에 덧씌워져 계층 구조가 형성되는 것인데... [의문점 2] 계층 구조가 뇌에 물리적으로 형성되는지, 시냅스 강화의 방법으로 처리 순서에 선순위 정보를 입력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 Help!!)
어쨌든 인지된 단어를 차곡 차곡 저장하면서 단어의 의미를 망으로 연결하고, 사이사이 매듭에 기능어를 위치시키고, 인지발달과 더불어 자연히 진행되는 계층화를 통해 단어의 범주를 정하고, 품사를 파악해 나갑니다. 즉, 단어와 단어와의 관계를 계층화를 통해 규정짓게 되지요. (내재 문법 형성 과정입니다.) 이 기술은 언어 발달에 있어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며, 인간 이외의 동물에게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의문점 3] 도대체 인간은 어떻게 이 형질을 획득할 수 있게 된 것일까요? 정말 궁금하네요. 음~
이 과정이 대략 만3세경까지 지속되어 만 4세 경이면 완료가 됩니다. 순서는 아이가 언제 무엇을 물어보느냐, 무엇을 궁금해 하느냐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대개 다음과 같습니다.
where: 까꿍 놀이를 즐기는 시기이지요. 물건을 떨어뜨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공간 개념을 파악합니다.
엄마를 찾아 우는 울음은 엄마의 위치 정보를 알고자 하는 행위입니다. 거리감을 표현하는 단어 - 여기/저기 (here/there) 이거/저거 (this/that) 위/아래 (up/down) 등의 습득이 가능합니다.
who/what: 말은 못할지 모르지만 아이는 눈에 보이는 것들의 이름을 알고 싶어하죠. 사람, 사물의 이름, 상황에 대한 설명.
상당수의 명사, 동사, 현재 진행형, 과거 분사형, 구체적인 의미의 형용사, 분사 구문 등을 습득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주어와 술어의 위치를 파악하게 됩니다. 2어문을 사용하는 시기가 곧 도래하게 되지요.
한동안 아이는 이름을 묻고 다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말을 반복하고 엄마 조르는 재미에 새로운 질문을 쉬이 던지지 않습니다.
같은 패턴의 문형을 반복하면서 아이는 현재 상황에서 관찰 가능한 사물과 동작, 상태를 설명하는 표현, 대명사, 전치사구 따위를 익혀 가다가, 어느날 갑자기 번개에 맞은 듯,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하죠.
why/how: 만3세 경이면 아이는 '왜? '어떻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 않나요? 어느 순간 뇌는 시간 개념을 발달 시키기 시작해서 아이는 원인과 결과에 흥미를 갖게 되지요. 이 무렵 시제 표현을 마스터하고 접속사를 그럴 듯하게 씁니다. 단순한 사물인지, 관찰에서 벗어나 스토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when: 만4세 경이 되면 어제, 내일 정도는 확실하게 구분하고 5세 경이 가까워지면 일주일과 한 달, 나이 먹음의 의미를 파악하지 않던가요? 시간 정보를 구체적으로 궁금해 하는 시기도 자기가 시간을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현재 완료와 과거 완료를 마스터할 수 있고, 가정법도 쓸 수 있습니다. (가정을 위해 과거 시제를 사용하는 형식말이죠.) 하지만 아직 미세한 시간 개념을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간단한 문장이지만 '몇 시야?' 따위의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5살짜리 (만3-4세죠) 아이에게 초등학생용 코스북으로 영어를 가르치던 어떤 엄마가, 아이가 반복을 통해 외웠음에도 불구하고 What time is it? 같은 쉬운 질문에 대답을 못하더라고 속상해 하더라는 슬픈 일화가 있습니다.
- 죄송한 얘기지만 우리말은 문법을 공부한 일이 없어 용어를 잘 모르겠더군요. (저는 문법을 배우지 않은 세대예요. 흑흑-) 그래서 같은 기능을 가진 문법적인 부분, 일테면 과거를 표현하는 '었/았' 같은 말을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는거 있죠. 그래서 걍 뺐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ㅠ_ㅠ
아이가 문법을 순서적으로 습득한다는 말은 전 글에서 에너지 쏠림에 대해 말씀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 인지 부분이 발달할 시기에는 다른 부분에 해당하는 문법 사항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만2세 아이가 분사를 쓰는 일은 아주 쉽게 목격이 됩니다. 떨어졌어, 찢어졌어. 굉장히 쓰기 쉬운 말이거든요. 그런데 주어와 분사 사이에 be 동사는 종종 생략되거나 제 형태를 거의 갖추지 못합니다. be 동사는 항상 같이 붙어 다님에도 불구하고, 시제를 판별해서 be 동사를 형태에 맞게 분류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만5세 아이는 스토리 - 사건의 발생, 진행, 결과 등에 강한 매력을 갖기 때문에 단순한 사실을 설명하는 이야기에는 지루함을 느낍니다. 사물 인지, 자연 관찰 시기가 지나서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단순한 정보만을 나타내는 전치사 같은 것도 습득이 어렵습니다. on인가? in인가를 고민할 사이에 우리말을 써 버리면 끝이거든요.
그러면 청각 정보는 어떻게 해서 내재 문법으로 치환되는 것일까요?
글 (2)에서 아이가 단어를 주파수 패턴으로 저장을 할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무수한 패턴 중에서 자주 반복되는 특정 패턴에 아이가 주의를 집중하기 시작하면 그 전후 단어 사이의 관계가 궁금해 질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능어의 의미를 알아 나가는 것도 있고, 전후 단어를 먼저 알던 상태라 쉽게 파악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요. 반드시 어느 경우만 해당된다고는 말하기 힘듭니다.
패턴 중에는 단어 단위가 아니라 관용어구, 문장이 뭉뚱그려져 저장되는 것도 있습니다. 상황 정보가 누적되면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기능어들의 의미는 강해집니다. 누구한테는 to, 행위의 목적을 표현할 때도 to, 동사의 목적어로 to... 물론 문법 용어는 모르지만 아이들은 타고난 능력으로 기능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기능어의 배열은 단어에 연결된 다른 정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유가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고소한 하얀 액체입니다. 그리고 차가운 우유가 목을 타고 내려가는 청량감이지요. 우유에 대한 감각이 욕구를 불러 옵니다. 그 상태에서 단어가 배열되는 것입니다. 우리말이라면 막바로 우유가...가 먼저 나오지만 '마시고 싶다'는 이미 욕구가 생긴 시점에서 떠 올라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은 술어부에 말이 막히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영어는 I want...를 먼저 놓습니다. 아, 이게 먼저지? 가 아니라 욕구가 생기면 그 욕구를 표현하는 말을 찾아가게 됩니다. 어쩌면 전후를 느끼기 힘들 정도로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감각과 욕구와 기분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경우라는 것이죠. 이런 경우에도 차분히 생각해서 어떤 표현을 불러 들여야 할지 감각과 욕구와 기분에 연결된 단어를 잘 추척하다보면 문장이 배열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패턴 정보가 쌓여 한 언어가 거의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 때, [의문점 4] 무슨 매카니즘으로 시작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이는 말장난을 시작합니다. 스스로 구축한 친밀한 체계를 교란시키는 행위를 하는 것이지요. 말의 순서를 거꾸로 하거나, 엉뚱하게 갖다 붙이거나 하면서 언어 유희에 지대한 관심을 갖습니다. 낯설게 하기를 즐기는 창조적인 면모는 이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본능일까요?
(5) 두 언어 정보의 동시 습득과 시간차 습득
아이가 어느 언어를 먼저 습득하게 되든 두 언어를 같은 양으로 동시에 들려주지 않는 이상은 시간차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아이가 단어 a를 청각 정보로 수신하여 청각 정보가 저장되는 창고 안에, 아이가 파악한 범주 아래 잘 놓는다고 합시다. 거기에 같은 의미 (혹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다른 언어로 된 단어 b를 수신할 경우, 이 단어는 새로운 범주 정보가 연결되어 a의 근처에 저장이 되거나 거리상으로 가깝지는 않더라도 아주 강한 시냅스를 형성하여 접근성이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이가 우유라는 말을 배웁니다. 엄마가 컵에 하얀 액체를 따라 주며 우유라고 했습니다. 같은 상황에 엄마가 milk라고 하며 우유를 준다면 우유와 milk는 음성 정보만 다를 뿐 같은 의미를 갖고 저장됩니다. 엄마가 따라 주는 고소하고 하얀 물 같은 것...으로 생각하겠지요. 그런데 영어 그림책을 보다가 동사 milk라는 단어를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품사 정보를 갖게 되는데 이 때의 milk에는 미국식 농장에 흑백 점박이 젖소의 젖을 양동이에 짜는 장면이 저장되게 됩니다. 그러면 아이는 우유와 milk를 하얀 액체로 연결하고 다시 milk는 젖소의 젖짜는 장면과 연결하게 됩니다. 아이가 아직 우유를 '짠다'는 표현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제 이 아이는 '우유'라는 말을 들으면 단어가 연결된 망에 따라 milk와 젖소의 젖짜는 장면을 같이 떠올리게 됩니다.
이후에 우유와 milk를 계속 접하면서 덧붙여지는 시공간 정보도 있을 것이고, 공통적으로 겹쳐 강화되는 정보도 있을 것입니다. 겹쳐지는 정보가 최종적으로 아이가 갖게 되는 단어의 뜻이 되고, 나머지는 얇은 끈으로 연결되어 시공간 정보 창고에 저장됩니다. 이후에 아이가 젖짜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면 우유에 자동으로 젖소 장면이 떠오르는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어쩌다가 가끔 생각을 날지 모릅니다. 자주 접근하지 않아서 점차 서로 연결된 끊이 약해지면, 특히 빈도가 낮은 부분은 무의식 부분에 분류가 되는 모양입니다. 인간의 뇌는 7년에 한 번씩 완전히 새로운 세포로 바뀐다고 하니, 그 과정에 유실이나 왜곡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모국어가 형성된 이후에 영어를 배울 경우에는 이미 저장된 단어와 시공간 정보의 연결 - 배경지식을 활용해서 빠르게 끼워넣을 수 있습니다. 모국어 3년 걸려 습득한 양에 해당하는 영어를 이후 1년에 습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말에는 없는 단어의 정보가 기록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두 언어는 양적으로 팽창합니다.
문법 생성 시기에 단어 인지를 병행하면서 영어에 노출되어 왔다면 문법이 자연스럽게 습득이 되었을 텐데, 이 시기를 지나면 문법을 익히는 과정이 조금 달라집니다. 일단 순서가 제멋대로입니다. 차곡 차곡 저장되는 느낌이 아니라, 무작위적으로 마구 집어넣는 기분이 들 겁니다. 괜찮을까요? 괜찮을 겁니다. ㅎㅎㅎ
(6) 유창성
이 문제는 굉장히 예민합니다. 평생가기 때문이죠.
모국어인 한국어조차 유창하게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글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럴진대, 영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도 유창하지 못한 사람이 있고, 글도 못 쓰는 사람이 있고... 두 언어를 용케 다 습득했다고는 하지만 두 언어에 유창성을 갖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언어에 유창해지지 못하는 이유를 심리적인 문제 외에, 언어적인 부분만 따져 보겠습니다.
전체 어휘 수의 빈곤 -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합니다.
어휘의 개념이 약할 때 - 단어를 종종 혼동합니다. 자의적으로 단어의 의미를 정의하거나 잘못된 뜻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곤란을 겪게 됩니다. 추상적인 단어를 습득할 시기에 책을 많이 안 읽으면 딱 걸립니다. ^^;;
단어 사이에 시냅스가 약할 때 - 말을 많이 안 해서 단어와 단어 사이의 끊이 얇아지면, 그리로 잘 안 가려고 합니다. 책도 많이 읽어 아는 것은 굉장히 많지만, 그걸 뱉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말로 하려면 버벅거리는 경우지요. 뭐였더라? 말이 생각이 잘 안 납니다. 심한 경우에는 실어증에 가까운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책을 벗하여 여러 종류 골고루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 보면서 큰다면, 즐거운 언어 생활을 향해 장밋빛 낙관을 펼쳐 보아도 될 것 같네요.
대신 조금이라도 미적거린다면!! 한 언어만 죽어라고 판 인간들에게 금방 욕을 먹습니다.
쟤는 어휘가 딸리고 개념이 약해... 버벅대... 라고 말이죠.
(실제로 바이링구얼을 그래 욕하는 사람을 몇 봤습니다.)
참, 그래서 결론.
왜 읽기는 말하기로 연결되지 않는 걸까?
소리 정보 없이 영상으로 저장되는 단어는 특별한 저장소가 없다...는 게 제 가설입니다.
혹은 영상은 계층적으로 저장되지 않는다...라고 해도 되겠네요. 영상이 저들끼리 문법을 이룬다는게 상상이 되세요? 영상은 3차원적으로 저장이 될 뿐 계층 구조는 가지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즉 단어 학습 (의미 파악) - 문법 학습 - 눈으로 읽기로 진행되던 기존의 학습은,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지요. 단어의 의미가 바로 뇌에 저장된 시공간 정보를 불러오는 시냅스를 형성하지 못했던 거죠. 영어 단어가 우리말 뜻과 연결되긴 하지만 내재 문법이 생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국어 어순으로 영어 단어가 배열은 되어도 절대 영어 어순으로 떠오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 재빨리 머리속에서 번역을 하든가 통으로 외운 것을 써먹어야 하죠.
하지만 이후에도 자주 쓰면 신경망이 생기는 모양이어요. 일단 어떤 표현이 내재 문법으로 뇌 안에 생성되면 기존에 외웠던 단어들을 불러다 쓰는데 제약이 없어집니다. 품사는 확실이 잘 구분이 되어 있더군요.
(Let's go가 익숙해지면 Let's 다음에 동사 아닌 것이 막바로 나오는 일은 없어요. 안 그런가요?)
다만 내재 문법이 생기는 속도는 유아기 때보다 느린 것 같습니다. 인지 발달 단계를 지나서 그런 것 같아요. 이미 만들어진 문법을 활용하기도 하기 때문에 어순이 같은 언어를 배우는 것은 훨~~씬 효율적입니다. 그치만 영어나 중국어는? 유아기가 아무래도 유리할 것 같아요. 완전 낯선 언어인 중국어를 함 해 보니까, 확실히 귀보다 눈이 먼저 가더군요. 눈이 한자를 이리 저리 옮기면서 우리말로 해석하게 되는 거 있죠. 소리는 흘려 들으면서...ㅎㅎㅎ 좀 집중해서 들어 보려 해도... 자꾸 저녁 뭐 먹지, 애들 뭐 하지가 떠오르더이다. 우훗~
집중듣기 실패~~
아, 아제 끝났습니다. 생각이 정리되어 기쁩니다.
이상이 제가 엄마표 영어 2년 하면서, 언어학, 아동 발달 서적 들척이면서 겪은 산전수전의 전모였습니다.
이제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줘야 할지 가닥이 잡힙니다. ^______^
길어서 죄송해요. 즐육하세요.
- 쑥쑥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어느 기관보다 앞선 단계의 영어 교육이 논의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이만 이슬이 데리러 나가겠습니다. 우후후~ (1)에서 (6)까지 쓰는 시간이 좀 걸렸기 때문에 주제가 좀... 제목하고 안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진 없이 글만으로 스크롤바를 저만하게 만들다니... 저도 참, 므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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