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 아이들의 겨울방학이 다가오고 있다. 어떤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의 시간을 보람 있게 만들어 줄까 엄마들의 고민이 슬슬 시작되는 때이고 거기에 박물관 견학이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이전과 다르리라.’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어디선가에서 읽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글귀이다.
전공이 프랑스 문학이다 보니 우리 것보다는 프랑스 문화알기에 더 열심이고 우리역사 보다는 남의 것에 더 밝은 게 아닌 가하는 자책감이 없지 않았는데 어쩌다 기회가 닿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동안 문화란 서로 다른 것이지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라고 배워왔었다. 그럼에도 우린 늘 서양이나 가까운 중국, 일본과 견주며 문화적 사대주의를, 혹은 상대적 우월감을 느껴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강의를 듣는 동안 ‘현대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 저 천 년 전 우리 조상들의 미적 감각, 그 섬세함과 세련됨이 가슴 벅차게 다가왔고 무엇보다 우리에겐 스케일 큰 유물이 왜 그리도 귀할까 애석해 했던 마음을 단번에 쓸어 내주는 최고 수준의 작품들을 만나 위로를 받았다. 돌조차도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썩는다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어찌 살아남을 수 있었으랴. 애정을 갖게 되니 새록새록 우리 것이 눈에, 마음에 들어왔다.
내친 김에 휴가지로 경주를 정하고 신라의 유산을 둘러보았던 지난 여름일이 생각난다. 도시 전체가 담 없는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경주를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 후 처음 가려하니 자못 설레기까지 했었다. 또한 경주 어디를 가나 사람이 많다는 것은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라 여겨져 무척 고무적인 일로 느껴졌다.
그런데 박물관이 시장바닥 같은 것은 정말 유감이었다. 전시관 유리는 어린아이들의 손자국으로 얼룩덜룩했고 전시물에 전혀 관심이 없는 학생들은 큰소리로 떠들며 학교 밖으로 그냥 놀러(?)나온 기분을 즐기고 있었다. 비까지 오니 바닥이 젖어 분위기는 더욱 어수선했다. 공부거리로 다가오는 역사와 문화라는 주제가 그들에게 지루함을 느끼게 한 것일까.
하긴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인솔자 한두 명을 따라 한 바퀴 휙 돌아보는 박물관 관람이 다리만 아팠지 무슨 재미가 있었으랴. 책장에 하나 가득 꽂힌 전집류들의 제목만 보면 지겨운 것처럼, 뭔지도 모른 채 엄마 손에 이끌려서, 아니면 점수에 반영된다 하여 억지로 따라 나선 역사 견학은 질리기 딱 좋아 보였다. 아이들 탓만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욕심을 버리고 가벼운 내용부터 미리 알고 난 후 여러 차례에 걸쳐 관람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하루에 하나의 주제만 제대로 보아도 아이들에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물관 나들이가 연중행사여서는 아이들이 알고 즐길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면서 또 생각했다. 옛날 이야기꾼으로 훈련 받은 역사 선생님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소규모의 현장학습을 진행하며 조상이야기를 재미나게 해 주는 역사문화 교육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진지하게 그러나 흥미롭게 들으며 훌륭한 우리 조상에 대해 경외심을 갖는 어린 학생들을 꿈꾸는 나는 몽상가일까?
그래도 나는 꿈을 꾸고 싶다. 우리 아이들을,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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