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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의 영상

  • 수경샘
  • |
  • 2014-12-24
7

크리스마스입니다.

빨간 옷에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배불뚝이 산타할아버지가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지요^^

 

때가 되면 할머니를 따라 도봉산에 있는 도선사라는 절에 열심히 다녔던 어린 시절, 산타가 뭔지 크리스마스가 뭔지 잘 알지 못했지만 흰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1년간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형제간에 싸우지 않은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할아버지가 있다고 들었고 그렇게 믿었지요. 어느 해 겨울 늦은 밤, 엄마 아버지께서 황금빛 포장지에 싸인 커다란 상자를 사들고 들어오셨는데 선잠에서 깨어나 얼핏 본 기억이 있습니다. 다음 날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서는 크리스마스 행사가 열리고 산타할아버지가 나타나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일일이 칭찬도 해 주었지요. 어제 밤 잠결에 얼핏 보았던 황금빛 상자가 빨간 주머니에서 나왔고, 내가 아닌 다른 친구의 이름이 불리자 나도 모르게 ‘그건 제건데요!’라고 소리쳤습니다.

당황한 산타할아버지는 이름을 다시 확인하고는 내게 그 선물상자를 내어 주었고, 이렇게 내가 품었던 산타할아버지의 환상은 얼결에 깨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산타는 몇 살 때까지 살아있었을까요?

영혼이 맑은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가상의 존재를 들먹이며 꿈도 주고 겁도 주고 희망도 줍니다. 산타할아버지는 아이들이 1년간 부모님 말씀에 복종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야 하는 이유이며, 망태할아버지는 엄마 말 잘 듣고 떼쓰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도깨비의 존재는 신비의 세계를 선사하며 권선징악의 교훈을 심어주지요.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이렇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까지도 총 동원됩니다. 옛날 얘기며 동화책과 공상과학소설 그리고 무협지에 이르기까지. 그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육아양념들입니다. 때로는 엄마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에 결정적 역할을 발휘하는 숨은 공로자들이니 고맙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옛날 얘기가 왜 그리도 재미있었는지 틈만 나면 할머니, 일하는 언니 가리지 않고 졸라대던 기억이 납니다. 얘기 하나 듣자고 심부름도 하고 조신하게 혼자 놀며 기다리기도 했지요. 옛날 얘기의 주인공과 배경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스토리는 마치 영화처럼 전개되니 느낌 또한 생생합니다. 상상력이나 이미지의 형상화 아마 이런 것들은 이야기를 들으며 머릿속에 그리는 나만의 소중한 세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도 누군가의 얘기를 들을 때면 머릿속으로 장면을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그 시절에 만들어진 습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눈앞에 바로 들이대 주는 TV 화면 보다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라디오 방송이 더욱 매력있게 느껴지는 까닭이기도 하지요.

 

초등학교 6학년, 일본의 한 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으며 붓글씨로 써 보냈던 족자의 글귀가 떠오릅니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 한간 지어내니,

반간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월이라

강산은 드릴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시조 한 편을 족자로 완성하느라 얼굴이 붓도록 엎드려 쓰고 또 쓰고 했던 글입니다. 비록 세월은 흘렀어도 그 때의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군요. 글귀 또한 여전히 생생한 것은 아마도 시조의 내용이 한편의 영상으로 머릿속에 남아있기 때문이겠지요.

눈을 감으면 그 모습이,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옵니다.

 

10년을 열심히 일하여 작은 초가집 한 칸을 마련하였으니

집의 반 칸에는 맑은 바람이 불어 들고 나머지 반 칸에는 밝은 달이 비추어 드네

강산은 들여 놓을 곳이 없으니 그저 둘러두고 보겠다 라는 내용의 시조입니다.

 

초등학생이었지만 눈앞에 그려지는 초가집과 맑은 바람, 밝은 달빛 그리고 초가를 에워 싼 강과 산이 너무나도 호젓하고 평안해서 가슴에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가끔은 빡빡한 일상에서 벗어나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편안한 세상 속에 잠시나마 침잠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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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014-12-24 15:28
답댓글
우리집 산타 할아버지는 올해 아빠의 폭로로 사라졌어요!ㅋㅋㅋ
이미 눈치 채고 있는 아이들이였지만
그래도 아빠가 폭로하고 나니 저는 서운하네요 ^^;
둘째는 그래도 아직 마음속이 반반이였거든요 ㅎㅎㅎ
친구들 얘기에 엄마 아빠가 산타라고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마음이였지요~~
아빠의 폭로후에 아들이
"작년에 4번 깼을때까지 선물이 없어서 걱정하고 잠들었는데
 5번 깨보니까 있었다면서 언제 왔다가셨는지 신기했다고요~~"
그러면서 그러면 엄마 아빠는 이브날 늦게늦게 주무신거예요?
라는 질문도 함께 해주시네요~~^^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산타할아버지는 추억이 되겠어요..
그래도 크고 나서 수경샘님처럼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으면 좋겠어요~^^
수경샘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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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경샘
  • |
  • 2014-12-24 17:01
언젠가는 자연스레 알게 되는 산타의 존재이지만,
너무 일찍은 슬프죠?
아이들이 갑작스레 커버린 것 같아서요.
그저 어리숙하게 눈망울 초롱거리며 바라보는 아이들이 그리워져요.
이제는 아빠 산타를 기다릴 아이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군요.
RinBin님의 따뜻하고 달콤한 크리스마스를 기원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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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정
  • |
  • 2014-12-24 14:15
답댓글

저는 어릴때 크리스마스가 그냥 하루 쉬는 날인줄 알았어요~^^
엄마가 절에 다니시기도했고, 딱히 크리스마스라고 챙겨주셨던은 없었던것 같네요^^

저희딸은 유천때 산타할아버지가 안아주셔서 무서워 울어버린 아이였는데, 지금은 쿠키구워놓고 카드 써놓고 할아버지 오시길 기다리고있으니 언제까지 왔다가실건지 궁금하네요^^

뜨신 방바닥에 배깔고 누워 엄마랑 아빠랑 귤이나 까먹고 있었던 그때의 크리스마스에 비하면

저녁에 지희 좋아하는 까페에가서 와플을 대접하신다는 신랑덕에 분위기 내겠습니다~^^

그리고 이따가는 집에 와서 모두 배깔고 누워서 귤까먹어야 겠어요. 그 옛날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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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경샘
  • |
  • 2014-12-24 16:57
와우, 혜정님,
좋으시겠어요.
자상한 신랑님과 쿠기굽는 딸내미와
고소한 냄새가 폴폴~ 풍기는 크리스마스가 되겠네요.
사는 게 뭐 있나요?
배깔고 귤까먹는 행복, 이거이 최고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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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정
  • |
  • 2014-12-24 21:07
수경쌤! 언제나 도움되는 말씀 감사드려요~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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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박샘
  • |
  • 2014-12-24 13:41
답댓글

아우 크리스마스 이야기인데 우리 고전을 읽은 느낌입니다.

산타할아버지가 훈육에 참 오랫동안 관여한 집이 저희 집입니다.

중학교 때까지 오셨으니 참 복 받은 아이가 제 아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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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경샘
  • |
  • 2014-12-24 16:55
헉, 듣던 중 최고령 산타둥이네요^^
그만큼 맑은 동심이 쭈~ㄱ 계속되었다는 야그죠?
누구의 영향이었을까요?
하여간 행복한 아들바라기 홍박샘,
올 겨울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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