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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여자, 좋은 여자

  • 수경샘
  • |
  • 2014-12-31
10

착한여자, 좋은 여자는 행복하기 어렵다.

기억에 남는 글귀입니다.

 

모든 엄마들은 누구나 엄마가 되기 이전, 부모의 슬하에서 귀한 딸로만 지내던 시절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홀가분했던 시절이지요. 그저 나 하나만 잘 챙기면 만사 오케이였으니까요. 그런데 한 남자와 결혼을 하면서 여러 역할들이 종합선물세트가 되어 지체 없이 자동 배달됩니다. 아내이며, 주부이고, 며느리가 되었다는 것이죠.

현실은 막연한 예측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새록새록 느끼게 됩니다. 그래도 순응하며 맡은 바 소임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사랑과 책임감이 뒷받침하기 때문입니다.

착한여자, 좋은 여자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새로운 관계 속에서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몸도 마음도 바빠집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모든 일을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건 당연하죠. 때로는 부담스럽고 힘에 부치기도 합니다. 일부 짐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기도 하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직장이라도 다닌다면 내 어깨에 올려진 짐의 무게가 더욱 무거운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직장을 다닌다고 해서 아내, 주부, 며느리의 본분과 역할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갓 결혼해서 새댁이던 시절, 종갓집이던 시댁의 어른 한 분이 하신 말씀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것은 질부 사정이고, 시집에 오면 며느리라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해.’

종갓집 며느리의 역할과 책임을 상기시키시는 말씀이었습니다. 한편 서운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내 자신이 내 한 몸이 아님을 알려주는 정신이 버쩍 드는 말이기도 했지요.

‘아, 그렇구나. 난 결혼을 했구나.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이런 거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한 첫 제사였습니다. 이후 수많은 제사와 생신, 명절까지 잦은 시집 행사에 단 한 번도 ‘직장’ 때문에 라는 변명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후, 아이가 생기면서 또 하나의 역할이 추가되었습니다. ‘엄마’가 된 것이죠. 직장 때문에 아이의 육아를 소홀히 할 수 없음은 물론이요 그 어떤 변명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할 수조차 없습니다. 내 아이이니까요.

새벽마다 아이가 하루 종일 먹을 이유식을 만들고 그릇마다 아이에게 먹일 시간을 적어 붙여 두고 출근을 했습니다. 직장을 다닌다는 핑계로 병에 든 인스턴트 이유식을 먹이기 싫었으니까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주말이면 과자에 케이크에 일주간의 간식을 미리 만들어 준비했습니다. 비록 몸은 힘들어도 ‘에미가 직장을 다니니 아이가 뭘 얻어먹겠어? 에미가 직장을 다니니 애가 오죽하겠어~’라는 말은 죽어도 듣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그 알량한 자존심이 오늘의 나를 지켜왔다고 생각하니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엄마들은 누구나 다 같은 짐을 떠안고 살아갑니다. 다만 자신의 짐을 어떻게 느끼고 내려놓는가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착한 여자, 좋은 여자는 행복하기 어렵다네요. 자신이 착해야 한다는,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굴레를 스스로에게 씌우고 자신이 채운 족쇄에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내가 지금 너무나 힘에 겹다면, 혹시 착한여자, 좋은 여자의 신드롬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요?

때로는 생긴대로, 내키는대로 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고 지고 떠안고 힘에 부쳐 불행하기 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한계를 깨닫고 홀가분하게 일부를 내려놓는 것 또한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착한여자, 좋은 여자. 꽤 괜찮은 말이고 듣기에도 좋지만, 내가 행복해야 가족들도 행복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도 능력이 다 출중할 수도 없습니다. 어느 정도는 허점이 낙낙해야 여유도 있고, 멋도 있고 사람냄새도 나지 않을까요?

마치 김장배추를 고를 때 속이 꽉 찬 배추보다는 어느 정도는 속이 할랑한 배추가 훨씬 더 맛이 있듯이요^^ 시간이 흐르면서 양념도 골고루 배어들고 발효도 잘 되니 깊은 맛이 우러납니다.

완벽해서 빡빡한 여자보다는 할랑해서 사랑받고 행복할 수 있는,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좋은 여자가 되고 싶습니다. 내가 왜 살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 지도 저만큼 내다보면서요.

 

2014년도 마지막 날입니다.

할랑해서 행복한, 자유로운 영혼에 여지가 있어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주부, 며느리로서도 행복할 수 있는 2015년도가 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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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kcarrot
  • |
  • 2015-01-02 14:42
답댓글

대단하세요~!

이런 분이시기에 멋있고 공감가는글을 써주시는거 아니겠어요~

전 그냥 아이 가지면서부터 직장때려치우고 전업주부되었는데 자꾸만 나태해지고 있는데....

반성하게되는 글입니다

올해도 멋지게 모든것을 열심히 하실것으로 생각이되시네요~ 그래도 여러가지일을 완벽히 하시려하다 건강해치지 않게 하시구요~ 모두 잘 해내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복 많이 받으시고 활기찬 한해되세요~! 화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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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경샘
  • |
  • 2015-01-02 16:32
저는 완벽! 아니네요 ㅋ
구멍이 여기저기... 그래서 여러가지 하다보면 어느 것 하나 똑 부러지게 하는게 없다고 늘 얘기합니다 ㅜ.ㅜ
그래도 마음을 비우려는 노력을 하려고요.
할랑하게 적당껏 해야 할 것 같아요.
백세시대라는데 체력도 딸리고, 점점 기억력도 깜빡깜빡!
2015년도에는 우리 모두 행복한 여자가 됩시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들도 행복하고,
내가 많이 웃어야 가족들도 마음이 편해지겠지요?
dkcarrot님의 행복도 기원할게요~^^
행복한 여자되소서~(ㅎㅎ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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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갑다영어야
  • |
  • 2015-01-01 12:58
답댓글

헐... 뜨끔했습니다.

맞아요.. 직장에 다니는 건 제 사정이죠 ㅠㅠ

 

학창시절엔... 착하다 순하다 소리 듣고 살았는데...

제 성격이 지극히 개인적이었습니다. 절대 남에게 피해도 주지 말고 살고 나도 피해받고 싶지 않고...

그래도 싫다는 소리, 거절하는 것은 잘 못하고 살았어요.

 

결혼하고 10년이 지나고 아들 둘 있는 엄마가 된 지금...

너무 이기적입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잘 웃고 순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가족들에게... 너무 이기적입니다. ㅠㅠ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첫 아이 낳고인 거 같네요

머리로는 엄마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전 준비가 덜 된 엄마였어요 너무 힘들었지요.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행복해야 아이에게도 웃음을 줄 여유가 생긴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야 제가 살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 제 중심적으로 모든 것을 생각했던 거 같네요

무조건 내 마음 편하고 내가 행복한 기분이 들도록....

 

가족들을 위해 희생적인 엄마들의 모습이 그려진 글들을 대할 때마다 뜨끔거리고 우리 가족들에게 미안해지고...

그렇지만... 저는 올해도 변하지 않을 거 같네요

제가 행복해야 그 에너지를 가족들에게 쏟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울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이런 아내와 엄마를 만난 것은... 자기들 복입니다. 그냥 받아들여야지요 ㅍㅎㅎ~~

 

수경샘 작년에도 이어 올해도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수경샘 글 앞에선 자꾸 고해성사를 하게 됩니다 ㅋㅋ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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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경샘
  • |
  • 2015-01-02 16:27
반영님, 일찌감치 깨닫고 행복한 여자의 길로...ㅋ
부럽습니다.
엄마의 희생이 항상 최선은 아니에요.
오히려 가족들이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으니까요.
다 함께 행복으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을거라 믿어요.
2015년도에는 그걸 꼭 찾아보도록 하죠.
다함께 행복!
저도 노력해볼 작정입니다.
지난 겨울 결심! 했어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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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사랑
  • |
  • 2015-01-01 04:13
답댓글
예전에 착한여자 콤플랙스란 말이 있었죠..
제가 그런거 같아요..
여지껏 시부모님께 no란 말 못 하고 거절 못 하고..
착한여자가 좋은게 아닌데..
알면서도 잘 안되네요..
좀 더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 또한 어럽네요..
수경샘님~ 소통글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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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경샘
  • |
  • 2015-01-02 16:21
꼭 권하고 싶어요.
착한여자 듣기 좋고, 욕심도 나지만,
내가 편안하고 행복하지 않다면 결국 자신에겐 착한여자가 아닌거죠.
이슬사랑님 자신에게도 착한여자가 되어 보도록 하세요.
조금씩 조금씩 짐을 내려 놓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행복한여자가 될 수있도록요~
2015년도엔 조금 더 행복한 여자가 될 수 있기를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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