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학가고 싶어하는 아들을 눈치채고 자세히 물어보니, 전학이더군요....
1학년인 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어휘력을 발휘합니다.
소풍기라 말하면 선풍기였고, 김밥은 귀밥이었고, 그러더니 양면색종이는 양념색종이가 되었습니다. 첫째가 이랬으면 큰일이다 싶었을텐데, 둘째가 이러니 왜이렇게 귀여운건지...
친구가 자꾸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서 학교에 가기 싫다며 견학을 요구하는 이 아이말을 정도와 깊이를 몰라 오늘, 학교에 보냈습니다만, 학교폭력과 꽤병사이를 저울질하는 중이라 좀더 두고보겠습니다.
자, 7권 시작합니다.
용선생은 한번 읽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2학기중에 한번더 읽던지 방학중에 한번더 읽던지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머리속에 담아놓고 싶어서요.^^
책이 집에 있으니 너무 편합니다. 나머지도 차차 구매해야겠지요.
6권부터 조선왕조가 시작되어 7권으로 넘어갑니다.
이순신장군의 활약이 나오는데요.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나라에 판옥선이 발명된 이유는? 우리가 왜군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중에는, 왜군의 배가 단지 운송수단으로 쓰였던 형태였기때문에 전쟁에 능하지 않아서였던 면도 있습니다. 아니, 큰 부분이었습니다. 전쟁을 도발하려는 일본은 왜 겨우 그렇게 배를 만들어서 대포도 잘 못싣고, 정작 전쟁에 그닥 관심이 없어보였던 우리나라는 정말 어마어마한 전투력과 바다위에서의 방향전향이 휙휙~쉬운 판옥선을 개발한 것일까요? 단순히 머리가 좋아서 였을까요? 혹, 우리나라도 전쟁을, 침략을 했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나라의 침략은 없었던 걸까요? 뇌이년에게 물어봤는데...그런 내용이 없네요. 판옥선 발명의 배경과 우리나라의 침략에 관해서는 멀리 삼국시대에 관해서만 나오네요. 음...역사는 기록한 자의 것이잖아요. 우리도 혹 남의나라를 아프게 한 적은 없는지, 특히 조선시대들어서 말입니다.
귀무덤.
임진왜란당시 조선인 12만 6천여 명의 귀나 코를 전리품으로 베어 와 묻어놨다는 일본의 교토, 귀무덤. 숫자를 부풀리기위해 산사람의 코도 베어갔다하여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라는 말이 그 때 생겨났다고 합니다. 전쟁이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는 걸까요?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던 걸까요?
전쟁 후 이렇게 귀와 코만 일본에 실려간게 아니랍니다. 수많은 도공과 학자들도 끌려갔지요. 일본에서 떠받드는 막사발도 우리에겐 하찮은 그릇이었는데, 당시 기술이 떨어졌던 일본에서는 굉장한 작품으로, 지금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답니다.
어느 도공의 말을 인용해 봅니다. "개가 멀리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많아서 놀란 적이 있는데, 이렇게 세월을 거슬러거슬러 역사가 오래되었다니요. 나라가 약하니 그 밑에서 백성들의 고충이 끝이 없는것 같습니다
명나라와 후금사이에서 헤매던 조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결국 인조왕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찧으며 절을 세번 했습니다. 삼전도비까지 세우며 청나라에 백기를 들었습니다.
이때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으니 청나라로 끌려간 소현세자입니다. 인조의 두 아들 중 첫째인데요. 500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청나라에서 새로 지어준 숙소에 머물게 됩니다. 여러변화를 거쳐 소현세자는 조선의 뛰어난 농사기술로 농산품을 생산해 청나라에서 돈을 많이 벌게 됩니다. 이렇게 번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조선으로 돌아올 때 남아있게 된 백성에게 하사했다고 합니다.명나라를 정복하며 안정된 청나라는 볼모였던 소현세자(동생도 함께)일행을 8년만에 조선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소현세자는 8년 동안, 청나라의 문물과 과학기술을 배우며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야한다고 생각하고, 청나라 왕족, 관리들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조선에서는 원수인 청나라와 가깝게 지내는 소현세자를 못마땅히 여기는 세력이 있었고, 결국 두어달만에 소현세자는 죽게 됩니다. 학질에 걸려 죽었다고는 하나, 시신에서 여러 이상한 점들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소현세자가 왕위를 끝까지 지켜냈다면, 역사지도가 조금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지나고보니 여러번 도약의 기회가 있었는데, 세계무대로의 갈 길은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촤라라락~이것은 책 넘기는 연기입니당~!
130페이지에 멈춥니다. 송시열의 초상화가 나왔구요 그 밑의 각주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노론의 중심이었는데 왕들조차 송시열의 눈치를 보았다고 합니다. 벗뜨! 소론이나 남인들은 송시열을 너무 싫어해서 자기들이 키우는 개 이름을 '시열이'라고 짓는 게 유행이었다고 하네요.
용선생을 읽으며 역사의 흐름을 알게되는 것,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 잡아주는 것도 좋지만, 사실 이런 자잘한-사설 이 더 재미납니다. ㅋㅋ정치인들이 이랬다잖아요. ㅋㅋ뭔가 근엄하게 살았을 것 같은 그들도...똑같은 사람이라 잖아요. 자, 우리도 이름을 지어봅시다. 안키우는 개도 끌고 나와서 자 불러 봅시다. 무슨 이름으로 부르실건가요? 하하
세상을 고루 비추는 달빛이 되고하 했던 정조왕을 만나봅시다.
사림이니, 노론이니 서론이니, 북인, 남인....뭐...갈래갈래 좀 외워두고 유식한 척 할랬더니 자꾸 갈라지고 싸워대서 계속 붕당정치 했구나~라고 휘휘 말아서 마셔버렸습니다. 이부분은 저에게 묻지 마세요.
이런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정조왕은 탕평책을 내놓습니다. 잠깐,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신하들 앞에서 했던 말을 불러봅니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했던 신하들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정조의 단단한 성격과 각오가 아주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벽파신하들 가만있지 않았겠지요? 자객을 보내서 정조의 죽음을 꾀하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벽파 신하들 수십 명이 잡혀 처형을 당했습니다.
어~탕평책 다시 찾아보니 정조의 할아버지 영조가 내놓은 작품이었네요. 청포묵무침 요리가 이 당시에 올라왔었는데 이때 탕평채란 이름을 하사 받게 되었답니다.
다시 정조로 돌아오면, 새로운 정치를 위해 수도를 수원으로 옮기려 화성을 짓습니다. 개혁하면 정조라 할 수 있을정도로 정조왕은 민생의 삶이나 정치나 여러 방면에 개혁을 실천한 왕입니다. 개혁의 끝은 수원화성이었는데 만든지 4년만에 정조왕은 종기를 앓다가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제목은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수원화성행차 등의 유명한 어린이용 그림책이 있으니 반드시 살펴주세요. 그림책입니다만 성인이 봐도 좋을 정도이구요, 글밥이 작고 많습니다.
조선후기에 들어온 서양 물건들 중 안경이 돋보입니다. 고종황제가 처음 쓴 줄 알았던 이 물건은 이미 수원화성을 지을 때 활약이 컸던 정약용도 썼고 정조도 썼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렌즈를 어떻게 반들반들하게 만들었는지...혹..멋으로 테만? 아니었겠지요?
정조왕이 죽자 다시 권력을 잡은 노론 세력은 정약용이 천주교 신자였다는 이유로 꼬투리를 잡아 18년의 유배생활을 겪게 합니다. 정약용에 관한 만화책이 있으니 이 엮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목이 목민심서였는지, 정약용이었는지 가물가물 합니다. 자꾸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남발하다니....저는 기독교신자입니다. 저를 제주도에 유배시켜 주세요~. 그 만화책을 읽으면 구구절절이 긴 유배생활이 마음에 아픔을 울려줍니다. 그러나 그가 힘들게 보낸 세월덕에 후손인 우리에게는 500권에 달하는 책이 남겨지게 됩니다.
마무리는 신윤복의 월하정인도가 좋겠습니다.
왜, 좌측에는 집이 자리하고 있고 그 모퉁이를 따라 쓰개치마를 둘러 쓴 여인과 그 옆에 초롱을 든 남성그림 있잖아요. 이런 말이 써있데요. " 달이 기울어 밤이 깊었는데, 두 사람 마음은 둘만이 알리라"고 화가의 글씨가 있다는데, 뭔가 직접적이지 않고도 참 고급스럽게 음흉스럽죠? 신윤복. 저와 유머코드가 맞는 사람같습니다. 느무느무 능청스러워서 느무느무 반갑습니다.
요즘 대세인 니글니글이 갑자기 떠오르는데요. 요즘 그들, 너무 당돌하고 재미나지 않나요? 마무리는 니글니글로 해야할 것 같습니다.
니글니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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