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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수다로 풀자-중에서 남녀평등에 관해

  • 준영맘
  • |
  • 2000-12-13
0

그래, 수다로 풀자. -오숙희- * 군인 뒤에는 줄을 서지 않는 이유 ........ 수다떠는 군인과 수다떠는 여자의 공통점이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일방통행식으로 전해지는 말을 들으며 사는 것이라면 분명 수다라는 것은 억압된 현실의 응어리가 분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자가 수다의 대명사가 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많은 억압을 경험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 너 이빨에 고춧가루 꼈다. ........ 남자들은 왜 여자들이 말 잘하는 걸 싫어할까? 의 대사에도 나온다. 남자들은 말ㄹ 많은 걸 싫어해. 수다쟁이 여자는 딱 질색이야...... 남자들은 여자다운 여자를 좋아한다는 데 이럴 적의 여자다움의 필수 요소는 얌전함, 곧 말수가 적은 것이다. 순종적인 여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 여자....... 여자를 깔보고 무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인간적인 자존심을 가진 여자라면 불만을 얘기하고 자기 주장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남자들은 수다쟁이라는 말로 입막음을 하는 것이다. 따지고 요구하고 주장하는 게 싫은 것이다. 어른들이 아이들 말 많은 걸 싫어하는 것과 같다. 독재자가 국민들이 말 많은 걸 싫어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한다고 해서 여자답지 못한 것으로 몰리더라도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 * 우리 이모는 김상희를 닮았어요. ......... 이발사가 땅 속에 묻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은 어떻게 되었던가?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갔다. 그리고 그 이발사는 '국가 원수 모독죄'로 잡혀갔겠지. 그러나 국민들은 다 알았다. 그 이발사의 죄목이 '국가기밀누설죄'였다는 것을. 유언비어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말하고 싶은 욕구가 억제될 때 생긴다. 나만 해도 외숙모에게 누구 닮았다는 말을 하면 왜 안되는 지 모르는 채로 무조건 입을 다물 것을 강요당했기에 말하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해졌던 것이다. 정부에 대한 비판도 그렇다. 국가 원수에 대한 비판도 그렇다. 옛날에도 안 듣는 데선 나라님 욕도 한댔다. 어떤 유언비어가 하나 유포되면 거기에다 다른 내용이 더해진다. 돈은 돌수록 줄어들지만 말은 돌수록 커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왜 그럴까? 말하고픈 욕구가 억제된 사람들이 자기의 불만을 덧보태기 때문이다.민주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각종 억측이 다 나오는 것이다. 광주 항쟁 때를 봐도 그렇다. 함구가 강요되니 더 끔직한 말들이 나돌았다. * 남 앞에 서는 연습 ........ 자기 아이가 남들 앞에서 자기 예기를 쉽게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부모들이 있다면 먼저, 아이가 하는 말을 잘하든 못하든 평가하지 말고 가끔 고개를 끄덕이며 또 소리없이 웃으며 그냥 들어주는 것이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 잃어버린 시간 ........ "옛날에 어떤 어부가 숭어를 잡았는데 숭어가 눈물을 흘려 놓아주었대. 그런데 며칠 후에 그 숭어가 용왕의 아들이라며 생명을 구해준 은혜로 용궁을 구경시켜준다고 데려갔어. 용궁에서 사흘을 보내고 나왔는데 육지에 와서 보니 몇십 년이 흘러서 세상이 다 변했더란다. 시간이란 그런 거란다. 신선 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옛말이 다 그런 데서 나오는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절대로 등교길에 한눈을 팔지 않았다. 시간에게 다시는 속지 않겠다는 오기 때문이었지만, 이때부터 시간이라는 것은 잡을 수 없는 것이며 참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누구도 내게 지각한 이유를 추궁하거나 반성을 요구하지 않았다. 만약에 선생님이나 부모님께서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꾸짖고 어디서 뭘하다가 학교에 늦었느냐고 다그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놓고 깊이 생각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어른들에게 해명하느라고 어쩌면 거짓말을 늘어놓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학교 가는 길에는 한눈 팔면 안 된다는 억압에 대한 반발로 한눈 팔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한두 번의 시행착오를 허용하는 어른들의 태도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잘못은 자기 스스로 깨달을 때에만 되풀이되지 않기 때문이다. * 오발탄 오빠의 추억 (부자간의 갈등) ........ 아버지 스스로 오빠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아버지와 오빠의 관계는 어떤 만화 속의 부자관계와 닮았다. - 한 유망한 좌완 투수가 있었다. 전성기를 눈앞에 두고 불의의 사고로 야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낙심한 그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 술로 세월을 원망하며 점차 폐인이 되어간다. 그러다 새로 태어난 아들을 보면서 그 아들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뤄보려는 야망을 품는다. 몸도 약해졌고 가진 것도 없는 아버지는 자연히 마음이 급해졌고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독한 강훈련을 시키는 가운데 부자사이의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아이는 야구가 싫어 도망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이미 아버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딸들에게는 그토록 자상한 아버지가 오빠를 칭찬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잘하면 당연한 것이고 못하면 큰일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오빠에게 공부를 가르칠 때 늘 가죽 허리띠를 옆에 놓고 하셨다. 아버지의 성에 차지 않거나 잘못하면 사정없이 매를 대셨다. 어느새 오빠는 성적표를 숨기고 거짓말을 하고 그러다 들통나면 매 맞고, 그게 무서워서 집을 피하고, 밖으로 돌다보면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책을 팔고 학비를 축내고 .... 악순환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오빠 또한 부모 세대의 상처 때문에 자신의 생을 자기 것으로 누리지 못한 피해자라고 생각된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도 오빠에게는 여전히 충동적이고 의존적인 구석이 남아 있다. 맏이로서 또 외아들로서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충동적인 성격으로 굳어졌고, 맏이였기 때문에 어른들로부터 많은 보호와 지원을 받은 데서 의존적인 태도가 배어 버린 것 같다. 높은 데서 떨어지면 더 아픈 것처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가끔 조카애를 대하는 오빠가 아버지와 닮아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그런 아버지를 그다지도 못 견뎌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 닮아가고 있음은 희한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오빠에게 말하고 싶다. 아버지의 그런 태도가 결국 오빠를 이렇게 만든 거라고. 그러니까 오빠는 조카애를 감싸주고 오빠의 경험을 헤아리면서 아이를 다독거리라고. 내가 진행하는 라디오 인생 상담 시간에 자식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의 전화가 걸려온 날 밤이면 어머니는 꼭 이런 말씀을 하신다. "그때는 속이 타서 변을 봐도 염소똥처럼 까맣더라. 부모 맘이란 그런 거야. 다른 건 다 제 맘대로 돼도 자식만큼은 맘대로 안 되는 게 인생살이다. 부모들이 빨리 그걸 깨달아야 서로 편할 텐데. 그런데 젊어서는 그게 되나. 너도 애들한테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둬라." * 돈 내고 말한 효과 ........ 어느 심리학자의 보고에 따르면 남자들은 충격을 받으면 가장 먼저 남을 비난하고, 그 다음에 자책을 하고, 마지막에는 침묵을 하는 반면, 여자들은 가장 먼저 침묵한다고 한다. 아무리 작은 아픔일지라도, 누구나 작기의 아픔은 세상에서 제일 큰 아픔처럼 여겨진다. 하물며 세상에서 인정하는 아픔인 경우에야 오죽할까. 그때는 자기가 실제 느낀 것보다 아픔이 과장되어 느껴질수도 있다. 나의 사태를 전혀 대수롭지 않게 보는 의사 선생님은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서서히 내가 혹시 너무 엄살부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문제 앞에서 나는 놀랐다. 다른 사람들이 놀라는 것을 보고 나는 더 놀랐다. 내가 놀라니까 주변 사람들은 또 놀라고 이렇게 놀람의 탑 쌓기가 계속된 것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그게 뭐 그리 놀랄 일인가. 이 세상에는 그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 얼마나 많으며 또 이혼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내가 이혼을 죽을 병처럼 여긴 것은 나 스스로 이혼한 사람들을 중병 환자처럼 취급해왔다는 반증이 아닌가. 이혼에 대한 나의 편견. 그리고 그 편견이 나를 향한다고 했을 때 느끼는 자기 혐오감과 두려움이 내 고통의 실체였다. 이런 깨달음에 이르자 자기 혐오감은 타인에 대한 미안함으로, 두려움은 세상에 대한 겸손함으로 바뀌어 다가왔다. 그리하여 나는 비로소 내 꼬리에 매달린 방울을 좇는 일을 멈췄다. 그러자 침묵과 자아 비판.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하는 미련. 증오. 원망... 이런 것들이 엉켜서 반복되는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상처에 바람쏘이기 ...... 이런 경험을 나는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그 아픔을 이겨내게 하는 데에는 몇 단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 단계는 무조건 받아주는 것이다. 문지방에 걸려 상처받은 아이는 어머니가 '땟지'(문지방을 가리키며)라고 해주면 심리적으로 덜 아프다. 실제적인 아픔은 변함이 없지만 그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커지는 것이다. 누가 나의 아픔을 알아주고 함께 해준다는 것은 자신감을 준다. 우리의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우는 아이에게 '그래 그래','저런저런','우리 착한 아기한테 누가 그러냐'하고 호령하는 것도 일 단계에 속한다. 다음 단계는 현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곧 네가 넘어져서 아픈 것은 안됐지만 그러나 문지방은 원래 여기 있는 것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여기 봐라, 문을 받치느라고 이렇게 턱이 있지? 여기까지 오게 되면 다음 단계, 곧 자기 자신을 돌ㄹ아보는 단계에 이르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주변에서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아, 내가 좀더 조심했어야 되는 건데 그랬구나. 문지방은 전부터 여기 있었는데 그동안은 내가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걸려 넘어지지 않아 그걸 몰랐을 뿐이었어. 그래 이제는 알았으니까 조심해야지.' 충격이나 상처를 받으면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약해지고 약해진 마음은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로 단박에 회복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른이라고 해도, 아무리 강해 보이는 사람이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어린아이들이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자기의 아픔을 밖으로 즉시 표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가 그것을 우는 것으로 표현한다면 울 수 없는 어른은 말로써 풀어야 한다. 아픈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상처는 처음부터 붕대로 감아두면 바깥 바람을 쐬지 못해 곪기가 쉽듯이 마음의 상처 또한 밖으로 드러내어 위로받는 가운데 아물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말 못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존심, 수치심, 남의 이목, 이런 붕대를 당장 풀고 누군가에게 털어놓음으로써 상처에 바람을 쐬어주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곪지 않고 그 용기가 바로 상처를 치료하는 소독약이 되기 때문이다. * 따로들 품어온 공동체의 싹 ........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과 너무 깊은 정을 주면 상처를 받게 된다는, 부모님의 삶을 통해 전달받은 어찌보면 모순되는 두 개의 교훈은 성장하여 다양한 인간 관계를 맺게 되면서 한동안 마음 속에서 갈등을 일으켰다. 그러나 사람들과 사귀어 진실된 마음이 오가는 순간을 맛보면서 나는 '이게 사람으로 태어난 행복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상처를 받을 때 받더라도 그 전까지는 온전히 정을 주자는 쪽으로 정리했다. * 다양한 공동체의 탄생을 기다리며 ........ 공동체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경험을 토대로 도움이 될 만한 얘기를 몇 가지 하고자 한다. 왜 공동체로 살려는지에 대한 분명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 의지는 무엇인가. 사람은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공동체적 정서 회복을 위해 오랫동안 길들여진 자기 중심성과 싸워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곧 타인이 나를 자기 속에 넣어주기를 기대하기보다 타인을 나로 포섭하여 더 큰 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동체를 한다면 상처를 받기 쉽다. 어떤 독신 여성이 어떤 부부와 공동체적으로 살았는데 '이용만 당했다'고 표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우리'라는 표현에서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였는데 그 부부가 습관적으로 '우리'라는 말을 별생각 없이 썼을지라도 소외감을 느꼈던 것 같았다. 자신은 상대를 '우리'로 여기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으니까 손해보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느낌을 솔직히 털어놓고 서로 노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차라리 공동체를 하지 않는 게 낫다. 공동체를 하려면 상대에게 고정관념적인 가족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인간 관계의 하나로서 가족을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서로 되어 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서로들 의기가 투합되었다 할지라도 곧장 시작하기보다는 사전에 어느 정도의 '궁합 맞춰보기'가 있어야 한다. * 돈 버는 여자가 당당하다. ...... 여자가 돈을 벌게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건 이제 우리도 아버지나 남편, 아들에게 의존하는 삼종지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 18세가 법적으로 성년인 만큼 그 나이에 직업을 가졌다는 것은 겉과 속이 꼭 맞는 어른이 되었다는 겁니다. 스스로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당당해지세요. 그런 여러분을 존경합니다. * '미스오'시절의 지겨움 ....... 그때도 직장 구하기가 어려웠던 터라 나는 일자리를 구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었다. 출근 전쟁도 힙들기보단 뿌듯했고 모든 게 새롭고 재미있었다 '미스 오'라는 호칭도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아 우쭐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첫 월급은 수습이라고 해서 80%밖에 못 받았어도 가족들에게 자랑하고픈 마음에 집으로 뛰어가게 만들었고, 회사로 찾아온 친구들에게 점심을 사줄 때는 직장이라는 것이 정말 멋진 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만큼 정말 즐겁게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이런 기쁨과 활력은 채 일 년도 가지 못했다. 여자라고 해서 아침마다 청소를 도맡아야 하는 것도 화가 났고, 내가 맡은 일을 하다 말고 차 심부름을 해야 하니 오는 손님도 얄미웠다. 걸핏하면 '미스오, 물 한 잔만', '미스 오, 복사 한 장 부탁해','이 돈 은행에 좀 넣어줘'하는 직장 상사나 동료들에게도 좋은 감정이 유지되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난 승진될 수 없었고 결혼식 날이 퇴직하는 날이라는 것을 안 뒤로는 일하기도 싫어졌다. 나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는 곳에 내 젊은 날을 쏟아붓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과감히 사표를 냈다. 왜 그만두냐는 사람들에게 '지겨워서'라고 요약해서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지겨움 속에 들어 있는 직장 여성의 고충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직장에서는 '여자는 직업의식이 약하다'고 했고 집에서는 '철없다'고 했으니. 십 년이 지난 지금, 나의 후배 여자들은 여전히 지겨움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직장을 무조건 그만두는 것은 지겨움에게 지는 것이며 어떻게든 새로운 힘과 희망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처럼, 세상을 좀더 넓게 그리고 자기 인생을 좀더 멀리 보고 뛰어가는 자세를 가지라고 후배 여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 주부 퇴근제 ........ 이제 우리 주부들의 삶은 변화되어야 한다. 자신의 아내를 포함한 기혼 여성들이 책 한 줄안 읽고 자기 발전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기 때문에 대화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게 이유였다. 우리는 늘 시간이 없다는 막연한 억눌림 속에서 적극적으로 자기만의 시간 만들기를 포기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는 시간이 나기를 기다리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처음에는 방에 들어가서도 자꾸 바깥일이 신경쓰이는 아이들도 엄마가 왜 그러나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또 막상 방에 들어앉아서는 뭘해야 할지 막막하고 갑자기 허락된 나와의 대면이 두렵기도 했어요. 그런데 한 달쯤 지나니까 애들도 인정해주고 나 스스로도 평소에 읽고 싶은 책이나 정리할 것이 있으면 그때 해야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만을 위한 시간을 잠시라도 갖는 것이 생활에 자신감과 활력을 준다는 것을 깨달은 게 무엇보다 기뻐요. * 부엌은 내 꺼다? ........ 일종의 완벽주의라고 할 수 있는 이런 태도는 우선 주부 스스로를 괴롭힌다. "내가 없으면 우리 집은 엉망이 되기 때문에 잠시라도 집을 비울 수 없다"고 말하는 아내들, 또 한나절만 집을 떠나도 두세 시간마다 한 번씩 집에 전화를 걸어대는 어머니들은 어찌 보면 집에서 산다기보다 집에 갇힌 사람들이다. 결국 집안일을 충실히 하다 보니 주부들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고 바보 상자나 끼고 사는 존재로 몰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부의 완벽주의는 과연 가족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것일까. 완벽주의의 심리 속에는 자기 영역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심리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심리가 함께 들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어찌보면 독재자의 심리와도 닮았다. "외출했을 때 가족들이 잘 지내는 걸 알면 맘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괜히 서운하고 내 존재가 무의미한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흔히들 가족을 공동체의 최소 단위라고 한다. 공동체라는 것은 모든 것을 함께 나눈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그 중에는 일을 나누는 것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가정이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가족들이 나누어 맡음으로써 주부들은 자신만의 시간을 낼 수 있고, 가족들은 집안일에 참여함으로써 주부의 역할을 고맙게 여길 기회를 가지게 된다. 반복되는 일을 늘 완벽하게 하려고 그들이 노력을 조금이나마 자신의 내면 생활에, 또 사회 의식을 키우는 일에 돌려 쏟는다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고 잇몸이 나쁘면 잇몸약이 있는 세상에 고정적인 어떤 일에 매여 자신의 삶을 가꿀 시간을 못 낸다는 것은 게으른 변명이다. * 주부? ...... 말로는 주부야말로 신성한 직분이다. 그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다고들 하지만 세상에서 주부를 우습게 알죠? 돈 벌기보다는 쓰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있죠? 백 마디 항의가 다 필요없어요. 주부 파업 한 번 일어나봐야 정신들을 차리고 주부 대접 제대로 할 텐데. 그런데 주부 파업은 절대로 안 일어나요. 왜죠? 주부는 흩어져 있으니까요. 그래서 약한 사람들일수록 조직이 있어야 해요.강연 끝 무렵에 나는 늘 조직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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