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4시반 닭이 운다.
저노무 닭 모가지 언젠가 비틀어 버릴거라 마음먹으며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고 반쯤 울며 이불속을 나온다.
어제 하루종일 이래저래 밭일에 부엌일에 쫓아 다녔더니 다리가 너무 아프다.
발을 내딛을때 마다 차가운 방기운은 다리를 더 아려 오게 했다.
인어공주가 사람다리를 가지고 첫발을 내딛었을때도
이런 아픔이었을거야 . 그래 나도 어여쁜 인어공주라 생각하자'
코골며 자고 있는 남편이 야속하다.
주섬주섬 챙겨입고 곱게 화장까지 했다.
새벽녘이고 어디 나가는것도 아닌데싶어 화장을 안했다가
시댁의 큰어머니께 된통 혼이 난적이 있는지라 화장을 곱게 하고
집안이라 양말을 신지 않고 다녔다가 애가 얼마나 게으르면 양말도 하나
안챙겨 신고 내려 오냐고 진즉에 혼이 난적이 있어 양말도 챙겨신고
어르신들 깰까봐 조심조심 1층 부엌으로 내려 갔다.
아들이 귀한 집안에 복잡한 사정에 더해
여자의 남편이 장손이었기에 여자는 큰집과 시댁 작은집
이렇게 세집에 며느리 노릇을 해야 했고
그만큼 어른들의 간섭과 관심이 많았기에 시골의 시댁에 갈 때마다
여자는 행동 거지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했다.
아침 상을차리고 나니 어머님이 " 밥했나" 하고 들어 오신다
조금뒤 놉( 시골서 그날 하루 일도와 주러 오시는 분) 들이 왔다
다같이 식사가 끝난후 커피를 드시고 밭으로 일하러 다들 가신다.
어머님은 그제서야 여자를 불러
" 얼른 밥 먹고 치우고 9시까지 새참 해서 저 위에 사과 밭으로 오니라 "
하고 말씀하신다.
" 네 어머니 ~~" 하고 여자는 밝게 대답하고 인사를 드리고 들어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상을 보니... 생선은 머리만 남아 있다
못 먹고 사는것도 아니고 생선을 좋아하는것도 아니면서
시골만 가면 그놈의 머리만 남은 생선 때문에 서글퍼 졌다.
이거저거 주워 먹을 정신도 없이 대충 물에 말아서 떼우고 새참 준비를 하니 9시다
새참은 호박지짐... 오늘은 놉이 적어 10명이다.
들고 가려니 무겁다. 밭에있는 남편에게 좀 데리러 오라 말하고 싶지만
바쁜때라 그것도 눈치 보인다 .
부른배가 땡겨 터덜터덜 걷고 싶지만 그랬다간 늦었다고 타박 들을까 빨리 걸었다.
사과밭이다.. 시댁의 밭중 여자가 제일 이뻐하는 밭이다.
그냥 그 밭에만 가면 즐거웠다. 빨갛게 익은 사과가 이뻤고
이슬을 머금고 햇볕에 반짝이는 나뭇잎도 이뻤다.
" 새참왔어요 ~~~~" 여자가 큰소리로 외친다.
"어~~~이" 하는 대답이 들리며 일하던 어른들이 하나둘 모이신다.
새참을 드시는 동안 여자는 사과나무 앞에가서 자리를 잡고 사과를 따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일을해야 부엌일을 안 시킬거 같았다.
여자 나름대로 머리를 썼지만 어머님은 이내 말씀 하신다
" 사과 따다가 때되면 내려 가서 점심준비하면 된다 "
" 네어머니~~ " 여자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열심히 사과를 따고, 따서 모은 사과 상자를 열심히 날랐다.
뱃속의 아기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냥 했다.
다들 나이 많은 어르신이라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하며 일하시는게
안쓰럽기도 했고 여자를 보곤 " 옛날에는 애 낳고 밭에 가서 바로 일했다"
하고 늘똑같은 말씀을 하시기에 그말이 듣기 싫어 그냥 일했다.
임신한 여자의 특권 따위 생각할수도 없었다.
앉아서 쉴라 치면 다른 일을 시킬까봐 겁이나서 눈도 돌리지 않고 주구 장창
사과만 땄다. 결혼한지 2년이 넘었지만 살림이 익숙치 않은 여자에겐 부엌일보다
밭일이 편했다.
아침과 똑같이 점심과 저녁을 보내고 하루를 마무리 한다..
저녁10시..발목이 시큰거리고 배가 뭉쳤다
이래저래 뱃속의 아기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땐 그저 고생하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안쓰러웠다.
그들도 그렇게 살아왔기에
어쩔수 없이 여자에게 그리 한다 생각하고 이해하고 넘어갔다.
내일은 집에 가는길에 친정에 들를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일철에는 매주마다 시댁와서 도와야 하기에
아니, 식구가 많은만큼 행사도 많고 챙겨야 할것도 많은 시댁이기에
친정엔 따로 시간내어 가 본적이 없었다.
시댁과 여자의 집 중간길에 있는 친정이기에 늘상 시댁갔다가 내려오는길에
또는 시댁 올라 가는길에 잠깐 들르기만 했었다.
시골서는 힘든줄 모르고 피곤한 내색 한번 않고 일해 놓고선
친정만가면 긴장이 풀려서인지 널부러졌다.
손도 까딱 않고 쇼파에 누워만 있다가 피곤으로 입맛이 없어
엄마가 해주는 밥도 먹지않고 돌아왔다.
친정 부모님들이 이거저거 싸주면 온 팔다리가 아파죽겠는데 무겁게 싸준다고
싫다고 짜증을 내며 돌아왔다.
무엇보다 시댁서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 열심을 다하면서 친정서는
손하나 까딱 않고 있다 오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싫어
여자는 못났게도 엄마 아빠에게 짜증을 냈다...
그렇게 10여년을 보내고 ...
작년에 시어머니가 아프셨다. 여자는 두 아이들을 친정에 맡겨놓고
시어머니 병간호에 매달렸다.
듣던 테솔 수업도 접었다. 아이들은 친정에, 여자는 시골 시댁에
남편은 회사때문에 집에..
온가족이 그렇게 뿔뿔히 흩어져 있는 생활을 1년여 하며
노력했지만 어머님은 돌아가셨다... 여자는 슬피 울었다.
저 집 며느리는 어찌 저리 슬피 울까 라며 동네사람들이 안쓰러워 할 정도로 울었다.
그뒤...1년도 되지않아
여자의 친정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시다.
어른들께 잘하면 복이 온다 했는데...
시어른들께 그렇게 잘하려고 노력 했는데.. 순 개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무심했다. 내가, 내가 너무 등신같이 살아서 벌을 주는구나 싶었다.
발견당시 암세포는 아빠의 온몸을 점령해 있었고 뇌까지 번져 아버지의
그 맑은 성정을 한번씩 오락가락 하게 했다. 어떤 치료도 의미가 없다고 했다.
엄마 아빠 모시고 다같이 여행 한번 가자고 친정 동생들이 말할때
여자는 그럴 여유가 없다며 다음에 다음에 미뤘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여자에겐 두동생이 있다. 두동생들은 나름 엄마 아빠의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맏이인 여자는 그렇지 못했다.
동생들에게 혹여나 주눅들거나 자신 모습을 속상해 할까봐
여자의 아빠는 늘 " 우리 딸 어른들께 정말 잘해서
아빠가 정말 자랑스럽다" 라고 말씀 하시곤 했다.
얼마뒤 진통제도 듣지 않을 정도의 통증이 아빠를 약하게 만들어 갔다.
아빠는 기력이 있을때 주변 정리를 하고 싶다며 말씀하셨다.
"아빠가 엄마몰래 모은돈이 조금 있는데.... 이건 너거 누나 ,언니 줄게.....
아빠가 우리 큰딸한테 해준게 없어서...
아빠가 우리큰딸이 눈에 밟혀서.... 해준게 없어서
너무 미안해서.. .우리 손주들 대학 등록금 하라고 이 돈은 우리 큰딸 줄게.."
라며 여자의 아들둘을 안고 우셨다.
늘 강한 아버지였다 아파도 아프다 내색 않고
그렇게 삼남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강하게 살아온 아빠의 모습이 무너 지고 있었다.
여자는 어머니때와 달리 친정엄마에게 아빠의 병간호를 맡겼다.
여자가 생각해도 자신이 하는게 기가 찬 모습이었지만
상황이 어쩔수 없다고 속으로 변명했다...
그리고........6개월 남았다던 여자의 아버지는 4개월 만에 가족의 곁을 떠나셨다.
여자는 시어머니때와 달리 울지 않았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울 자격이 없는것 같았다..... 천하의 불효 자식이었다.
여자는 아버지 정으로 컸었다 어린시절 두동생이 엄마의 양손을 잡으면
여자는 뒷짐지고 걷는 아빠의 두손에 까치발을 하고 매달려 다녔다.
우리딸 어른들께 잘해서 자랑스럽다는 말이 여자의 가슴을 후벼팠다.
니가 고생해서 너무 안쓰럽다는 말인걸 알면서도
아둥바둥 살며 힘든티를 냈었던게
한스러웠다.. 마지막까지 큰딸 걱정만 하고 간 아빠에게 너무 미안했다
언젠가,,친정부모님께도 잘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여자의 형편이 풀리면.. 일이좀 줄어들면 잘할거라 생각은 했었다
천년만년 곁에 계실줄 알았다...
여자는 아빠가 떠나고 목이 메였고 ,혀가 아렸지만 울지 못했다.
아버지 상을 치르고 발인을 하자마자 다음날 여자는 뒷정리도 않은채
부산집으로 혼자 돌아왔다.
다음날이 테솔 마지막 수업날이었고 발표날 이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 상치르느라 작년에 완주 하지 못하여 올해 다시듣기 시작한
테솔을 다 완주 해야 할것 같았다.
그래야 아빠에게 뭐라도 하는 딸이라는걸 보여 주는거 같았고
여자가 다시 뭔가를 하게끔 도와주신 분들에 대한 예의인거 같았다.
덤덤하게 마지막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한달뒤......
집으로 테솔 수료증이 왔다.
여자는 드디어 울었다 ... 수료증을 붙들고 펑펑 울었다...
그리워도... 목이 메이고 혀가 아려도 울지도 못하고
잠이 오지 않아 멍하게 보내던 시간을 다 토해 내듯 울었다.
집안의 어른 두분을 보내는 힘든 시간을 같이한 수료증이었고
아버지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2학기 수업도 시작 되었기에 들어야 하나
중간에 또 그만둬야 하나 고민을 하며 듣기 시작한 수업이었다..
아버지와 보낸 마지막 꿈같던 4개월의 시간이 담겨있었고...
2년여에 걸친 힘든 시간을 다 담고 있는 수료증이었다.
여자의 힘들었던 시간을 위로해주는 사람들을 만난 곳에서 보내준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가 커가는 쑥쑥 속에서
덜자란 어른이었던 여자는 또한번 커가고 어른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글이 길지요.... 징징 거린다고 느끼실수도 있으시고..
인생의 순리...좀 빨리 찾아왔지만 저만 겪는 일도 아닐것인데…
유난 떤다고 느끼실지도 모르고 개인적인 일을 온 동네 방네 뭘이리 소문을내나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업 열심히 들으면 되는걸 뭐그리 대단한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시겠지만
저에겐.. 남달랐습니다
저희가 테솔 마지막 기수 라고 하네요.
무엇보다 잊지 않고 수업다시 들으라고 불러서 기회를 주신 박사님께도 감사드리고 ...
다독이며 열심히 같이 수업들은 동기분들께도 감사드리고 ...
그리고 눈팅의 세월을 벗어나 저의 첫 게시글 이후
1년여의 쑥끈이 생활에서 많은 좋은 분들을 알게되고
만나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오늘.. 전화를 들어 양가 어른들께 안부 전화를
드려 보세요.. 서운 하셨던일 상처 받았던일 잠시 접어두시고
그냥 보고 싶어서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 했다고 해보시길 바랍니다....
아이가 부모를 그리워 하는것보다 부모가 자식을 더 그리워 하고
안타까워 한다는건 다들 아시잖아요 ~~~~
이상 부산에서 고준희 였습니다 ~~~(고준희 말고 황정음으로 바꿀까봐요 ㅋㅋㅋ)
( 하루저녁 지나고 나면 내가 왜 이걸 썼을까 이불킥 할지도....
실은 몇번 썼다 지웠다 했어용 ㅎㅎ)ㅋㅋㅋㅋ
그나저나 테솔자격검정 시험을 아직 안쳐서..일주일
남았는디.... 빨리 해야 되는디 구시렁 구시렁 ㅎㅎ


쑥쑥몰
체험이벤트
















완주 숙제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