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의 몇 세기 동안을 중세라고 부른데요.
아주, 새삼스럽네요.
혼란이 계속된 세상에서(강력한 국가의 틀이 없던 시기) 마르틴 루터가 살던 무렵에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이 강한 군대를 갖추며 나라로서 서게 되요. 백성들은 외세의 침략에 대해 안심해도 되는
그런 시기가 찾아온거죠.
그나저나, 저희집 크리스마스트리 장착했어요.
12월이 오는데 마음이 삭막하잖아요.
최소한의 불만켜고 트리의 불빛을 밝히고 카펜터스의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노래를 틀었어요.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미움도 받았었다던 카펜터스.
오히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죠. 이게 무슨 소용이죠.
고흐도 나중에 인정을 받고.
베토벤도 그렇고.
노무현도 그렇고.
그리고 현 대통령 사태까지.
그러고도 저는 방관자에요.
독립운동은 남이 해주면 좋겠죠.
나는 그저 평안하게 살길 바랄 뿐이죠.
부끄럽지만, 이렇게 부끄러운게 저네요.
옳은 소리 하는게, 목소리내는게 가장 힘들다는 것을 빌미삼아
저는 오늘도 내일도 뒤에 있을건가봐요.
부끄럽습니다.
음,"backspace"앞에 두고 궂이 부끄러움을 밝혀봅니다.
그래서 역사공부 시작했어요.
부모로서 무엇을 물려줘야하나 해서요.
아이가 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바르게 행동할 수 있게
부모로서 조금의 길라잡이가 되어보자해서요.
몰라도 잘먹고 잘살고 있는 것이 부끄러버서요
르네상스시대에 살던 사람들도, 책을 번역하고, 출판해내고, 글을 깨우치게 되면서
또 전세계를 탐험하게 되면서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죠.
생각이라는 것을 새롭게 하게 되죠.
모든 것을 교회가 가르치는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눈과 머리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저도 르네상스 인인거죠. ^^
신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인간도 신이 창조하셨으니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가 핵심이었군요. 사물을, 세상을 유심히 관찰한 후에 그것을
바탕으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과학적인 방법. 그것이 르네상스랍니다.
세상을 가장 크게 바꾸어 놓은 것은 인쇄술이랍니다! 지금같이 흔해빠진 책은 상상도 못한답니다.
중국와 장사하던 상인들이 중국으로부터 인쇄술을 배웠지요.
우리나라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만들어 다보탑? 석가탑에 넣어둔게 800년대 였는데,14세기가
들어서 인쇄술이라니요. 억울합니다만 그것에 그쳐야겠지요. 그래도 알립시다. 우리가 최초야!
아유, 직접 가서 봤었지요. 경주 불국사 경내에 자그맣게 펼쳐서 유리관에 들어 있어요.
박물관에 없고, 불국사안에 있어요. 때론 박물관이 편리하기도 하지만,
유물들의 숨결을 끊어서 엄마잃은 고아들인마냥 주루룩 한집에 모아 놓은 것이
아쉬울 때도 있어요. 엄마곁에 있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훨씬 행복해 보였어요.
구텐베르그의 지구력으로 포도즙을 짜는 데 쓰는 기계가 인쇄기로 변신합니다.
20명의 수도사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90년 동안 써야했던 450권의 성경을
단 1년만에 찍어 냈답니다.
그 첫 책이 성경이었죠.
그리고 체스두는 법을 설명한 책이 있었는데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학습서였답니다.
당시 대학이 있었다면 우리는 체스 두는 법을 공부해야했을 거에요. 하하.
책값이 싸졌고, 구전되던, 와전 되던 소수의 지식들이 증폭되어 축적됩니다.
과학자들은 지난 시대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알 수 있었으며, 각국의 기독교도들은
각자가 자기 나라의 언어로 씌여진 성경책을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
학교에서 배우던 것과는 초점이 사뭇다릅니다.
아이도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는데 선생님의 설명을 좋아하는 아이가 아주 아쉬워 합니다.
빨리 배워야해서 자세히 알 수가 없다고.
그래서 책이구나를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인쇄기를 통해 외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성직자이다! 가톨릭 교회는 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다. 엉? 이것은 인쇄술이 너무너무 발달한 요즘의 교회도 들어야하는
말이 아닌가요? 이렇게 책이 넘쳐나는 시대에 책을 안읽는 인간들이 문제인가요?
아님, 너무 많은 책이 출판되는게 문제인가요?
가톨릭에 반해 나온 사람들을 프로테스탄트라고 부르고 루터 교, 침례교, 장로교, 성공회,
감리교, 성결교 등등이 당시에 가톨릭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온 사람들의 교회랍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시대에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이 널리 퍼졌던 데에는 정치적인 영향도
있었답니다.
정치는 속세의 지배자가 그 나라를 다스리는 방식인데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의
종교적 논쟁이 내전 뿐 아니라 국가간의 전쟁도 일어나게 했데요.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후 28년이 자나 교황이 공의회를 소집해서 논의를 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라는 종교회의였죠. 가톨릭을 재 정비하는 것이었죠. 이미 갈라질
대로 갈라진 거였군요. 글런데 그 회의가 18년이 걸렸데요.
그리고 가톨릭의 공식적인 교리가 되었답니다, 그것이.
여태까지의 가르침은 다 진실이었는데 신부와 주교들이 그릇된 행동을 한 적은 더러 있었다는 것은
인정했데요. 중세 말엽에 이르러서는 교회가 국왕이나 황제보다도 더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주교들과 신부들이 사람들의 영적인 삶을 인도하는 ㅇ리에만 몰두하지 않았다는 증거래요. 수잔 아줌마 멋져요. 엄지 척!
그들은 뉘우쳤어요. 누구도 돈을 주고 주교직을 살 수 없고 성직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신학교에 들어가서 가톨릭의 교리를 공부하고 수련해야 한다구요. 그럼, 여태
주교도 돈만 있으면 되었었나봐요. 그러나 평화가 오지는 않았데요. 가톨릭국가의 국왕은
프로테스탄트들을 죽이고, 반대의 국가는 가톨릭 신잗드을 체포하고 사형에 처하고 했데요.
이런, 가야합니다.
구두가 벗겨졌네요.
왕자님 같은 사위가 챙겨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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