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사랑님 글에 이어 윤동주 시인 흔적 뒤지기.
여차여차한 사연으로 교토 토시샤대학에 정기(?) 출입을 한 지 10년.
10년 전 업무 보던 남편을 기다리다 교정 구석에서 발견한 시비가 있었으니
윤동주 시인과 정지용시인의 시비입니다.

그 분이 여기서 공부하셨구나. 여기서 잡혀가 투옥되셨구나... 싶어 가슴이 먹먹.
그것도 몰랐어요. 교토 관광만 했지 그 옛날 이 구석에서 고뇌했던 시인이 계셨는지 몰랐어요.
부끄럽고 죄송하고 가슴이 아프더군요. 그 후로 쭉 참배하는 마음으로 이 시비를 보러 갑니다.
많은 분들이 다녀가시는지 사진, 꽃 때로는 담배 한갑도 놓여있더군요.
윤동주는 평양에서 나고 연희전문 다니다 일본 유학에 올랐는데
창씨개명 후 수속을 밟아야 했다네요. 그게 수치스러웠답니다.
우리 말로 쓸 수 없는 시를 몰래 쓰다 투옥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
비밀 군사 실험 마루타였다고 합니다.
그 분의 유골함을 안고 귀국하신 이가 당숙 윤영춘교수인데 그의 자제분이
우리가 잘 아는 가수 윤형주씨입니다. 6촌형인 셈이지요.
6촌은 무척 가까운 겁니다. 내 자식과 내 사촌의 자식 사이니까요.
1942년 사진입니다. 뒷줄 오른쪽 분이 윤동주시인 앞줄 왼쪽 분이 윤영춘교수 동생이래요.

저는 지금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떠올리면 눈물이 고입니다.
특히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는 가슴이 저려요.
우리는 윤동주시인 같은 고귀한 분들의 희생으로 좋은 세상에 사는 겁니다.
일제강점기, 한국동란, 5 18 민주항쟁, 6 10 민주항쟁 ....
고대사, 중세사가 아니라 내 부모 살아 생전, 내 생애 동안 벌어진 현대사,
아직도 피 흘리는 사실의 역사입니다.
이 비극에 자발적으로 희생하신 분들 덕에 저는 '오늘은 뭘 먹을까' 심한 고민 속에 삽니다.
수 많은 윤동주들께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는 동안 내내 그런 마음일 겁니다.
추신: 토시샤대 윤동주 시비 옆에 정지용 시비도 있어요.
일본유학시절 자료 http://yoondongju.yonsei.ac.kr/poet/life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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