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학원 상담을 할 때 학부모님께 꼭 여쭤보는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학생이 우리말로 된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입니다.
영어도 결국엔 언어입니다. 그리고 언어의 1차 목적은 당연히 의사소통이구요. ^^
정확한 의사전달은 언어 학습의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 어떤 언어를 학습하느냐를 넘어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잘 표현하는 아이, 상대방의 의사를 잘 전달받는 아이는 어떤 언어를 학습하든 숙달할 자질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 자질의 기본은 ‘읽기’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말을 습득하든, 외국어를 배우든 처음 언어를 접할 때는 일상속 가벼운 대화로 시작하겠지만, 그 단계를 넘는 것은 ‘읽기’를 하면서부터입니다.
또한 읽기는 시험과 직결되기도 하지요.
그 예로 2014년 수능 영어 문제 하나와 해석을 가져왔습니다.
2014년도 대학 수능영어수능 영어 35번 문제 (오답률 84.6%)
원문
35. Mathematics will attract those it can attract, but it will do nothing to overcome resistance to science. Science is universal in principle but in practice it speaks to very few. Mathematics may be considered a communication skill of the highest type, frictionless so to speak; and at the opposite pole from mathematics, the fruits of science show the practical benefits of science without the use of words. But those fruits are ambivalent. Science as science does not speak; ideally, all scientific concepts are mathematized when scientists communicate with one another, and when science displays its products to non-scientists it need not, and indeed is not able to, resort to salesmanship. When science speaks to others, it is no longer science, and the scientist becomes or has to hire a publicist who dilutes the exactness of mathematics. In doing so, the scientist reverses his drive toward mathematical exactness in favor of rhetorical vagueness and ****phor, thus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점]
① degrading his ability to use the scientific language needed for good salesmanship
② surmounting the barrier to science by associating science with mathematics
③ inevitably making others who are unskillful in mathematics hostile to science
④ neglecting his duty of bridging the gap between science and the public
⑤ violating the code of intellectual conduct that defines him as a scientist
해석
35. 수학은 그것이 매료시킬 수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것이지만, 과학에 대한 저항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과학은 원리에 있어서는 보편적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극히 소수의 사람에게만 전달된다. 수학은 이른바 마찰이 없는 가장 고차원적인 유형의 소통 기술로 간주될 수 있는데, 수학과는 정반대 편에서 과학의 성과들은 말을 사용하지 않고 그 실제적 이득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러한 성과들은 양면적 성격을 갖는다. 과학으로서의 과학은 말로 전달되지 않는데,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과학자들이 서로 의사소통할 때 모든 과학의 개념들은 수학화되는 것이고, 과학이 과학적 산물을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나타낼 때 과학은 상술(설득력)에 의지할 필요도 없고 사실 의지할 수도 없다. 과학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전달되면 그것은 더 이상 과학이 아닌 것이며, 그러한 과학자는 수학의 정확성을 약화시키는 선동자가 되거나 그런 일을 하는 선동자를 고용해야 한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과학자는 화려하면서 애매모호한 표현과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서 수학적 정확성을 추구하는 자신의 욕구를 뒤집게 되고, 그리하여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① 좋은 판매기술에 필요한 과학적 언어사용 능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② 과학과 수학을 연계시킴으로써 과학에 대한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
③ 필연적으로 수학에 서툰 사람들을 과학에 적대적으로 만든다.
④ 과학과 대중들의 간극을 메꾸는 의무를 게을리하게 된다.
⑤ 자신에게 과학자라는 자격을 부여하는 지적인 행위의 규약을 어기게 된다.
어떠신가요. 영어는 둘째 치고 우리말로 된 해석을 보고 쉽게 답을 찾으실 수 있나요? 학원에서 수능 영어를 가르치다 보면 이런 해석만으로도 부족한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이럴 때는 선생님이 먼저 지문을 읽고 내용을 파악한 뒤 좀 더 쉬운 말로 아이들에게 다시 설명합니다. 그러면 그때서야 아이들은 “아~ 그 말이었어요?”라고 하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수능 영어에서 소위 말하는 고난이도 문제는 고차원적인 영문법이나 듣도보도 못한 단어, 어려운 어휘로 구성된 문제가 아닙니다.
영어가 어려운 게 아니라 말의 뜻이 어려운 거지요.
이런 문제는 아무리 해석을 잘해도 말 자체가 어렵습니다. 원어민조차 풀기 어려워 할 정도니까요. 사실 당연합니다. 이런 문제는 영어 실력을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 문제가 테스트하는 것은 글에 내포된 의미와 글쓴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얼마나 잘 파악하느냐입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이러한 능력은 읽기, 그것도 우리말 읽기가 뒷받침되어야 하지요.
유아기에서 초등학교 1~2학년까지는 우리말로 된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영어는 그 다음입니다. 물론 파닉스 같은 발음을 잡는 학습은 어린 나이에 해도 무관합니다. 다만, 많은 영어 듣기, 읽기에 노출시키기 이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바로 ‘우리말’입니다.
독서량이 많다는 것은 어휘가 풍부하고 이해력이 좋다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는 강점을 가지게 되지요. 리딩이란 것이 결국에는 글 쓴 사람이 하고자 하는 말을 잘 알아듣는 것이니까요. 우리말 실력이 부족하면 아무리 영어책을 술술 읽는다더라도 행간이 전하는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말에 능숙하고 한글책을 잘 읽는 아이라면 영어책도 술술 읽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지금은 영어를 잘 못하고 성적이 안 좋아도 많은 양을 독서를 해왔다면 영어 실력 키우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을 가지고 문법과 어휘를 차근차근 공부하면 금방 실력이 오를 것입니다. ^^
(참고로 위 수능 기출 문제의 정답은 5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