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니체>입니다.
마흔, 왜 니체 철학인가? 시작하는 글에서 작가는 질문합니다.
우리의 나이대가 모두 다르기도 하지만,
어떤 나이대라고 하더라도 무의미한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질문은 의미있게 다가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당황스럽습니다.
익숙함과 결별하고 위험하게 살아라, 너의 오두막에 불을 질러라. 라고 얘기합니다.
(미션1) 이부분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셨는지요? 그냥 흘러가는 생각들도 좋습니다.
저는 이부분을 읽으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나는 진정 원하는 일인가?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들은 무엇일까?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니체의 운명애, 아모르파티는 내 운명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긍정과 능동의 운명애입니다. (미션2) 니체가 얘기하는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운명애는 무엇인가요?(65~69)
지난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니체편에서 읽은적이 있는 영원회귀 개념입니다.
“너는 이 삶을 다시 한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셀 수 없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살아야만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니체는 왜 이러한 극단적 허무주의 형태의 영원 회귀라는 삶을 우리에게 요구 했을까?
(미션3) 저자는 이 영원회귀에서 니체가 진정으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라고 했나요? (77)
그러면서 동일한 모습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사실이 저주가 되느냐 축복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라고 했습니다.
p.80 영원회귀사상은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되더라도 나는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 우리를 세운다.
따라서 “너는 이 삶을 다시 한 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이렇게 바꿀 수 있다. 고 했습니다.
(미션4)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무엇인가요?
이상입니다. 가볍지 많은 않은 철학책, 읽으면서 당장은 내 오두막에 불을 지를수는 없다 하더라도 자꾸 자꾸 생각해 보면서 조금씩 그 오두막에 균열을 만들어 보자.했습니다. 그리고 비발디의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이곡이 떠올랐습니다.
곡 가사중 ‘아픔이 없다면 세상에 참 평화없어라. 고뇌와 고통속에 편안한 영혼이 있으며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며 순결한 사랑이어라’ 함께 듣고 싶어 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