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와 함께 호주에 온 지 석달이 되었습니다.
이곳은 지난달부터 4학기가 시작되어 12월 중순에 끝이 납니다.
모든 아이들 관련 교육은 공교육의 학기에 맞추어져 있어서 10월에 짠 은이의 스케쥴은 12월 중순까지 고정적입니다.
덕분에 저도 스케쥴이 안정되니 많이 여유로워지고 편안하게 보낸 것 같습니다.
11월에 있었던 중요한 일은
1. 비자 연장 신청을 했습니다. 관광비자는 3개월간 호주에 체류할 수 있는 비자이기에 연장을 해야 했습니다. 평소 계획적이고 준비성이 있는 저였는데 호주여행은 정말 내 생에 처음으로 아무 생각없이 온 여행이기 때문에 비자연장이 이토록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루 이틀 정도 마음이 많이 힘들었지만 곧 툭툭 털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경험들을 해보려고 내가 호주에 온 게 아닐까 하구 말이에요. 이민성에 전화문의하고, 이메일 교환하고, 인터넷으로 비자연장신청하고, 지정된 병원에 전화로 검사 예약하고, 지정된 날짜에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 받고... 현재 저는 비자연장이 승인되었고 아이는 아직 결정이 안되었습니다. 어제 병원에서 받은 결과를 이민성에 오늘 등기로 보내면 제가 할 일은 다 끝난 셈입니다. 이제 또 추가 정보 요청을 받을지 아니면 승인 메일이 올 지 기다리는 일이 남았지요. 저는 이번 일을 경험하면서 두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는 사람은 살던 대로 살아야 한다. 즉 준비성 철저했던 저의 방식이 저에게는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생각을 바꾸면 마음이 편하다. 모든 일을 여행에서 일어나는 경험으로 생각하니 힘든 일이 힘들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이 두 가지를 경험하면서 11월의 두주를 보냈답니다.
2. 은이가 uni-college 수업과 숙제를 즐겁게 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처음 은이가 가지고 온 교재와 숙제의 양을 보고 저는 괜히 보냈다는 자책을 많이 했습니다. 은이의 수준에는 힘든 내용들과 양이었기 때문입니다. 평소 아이를 스스로 가르치면서 제 아이는 조금씩 조금씩 난이도를 높이고 자신의 실력보다 쉬운 교재들을 사용해서 자신감을 높여주는 방법을 택했고 그 방법이 아이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못 알고 있었나봅니다. 아이는 어렵지만 재미있다면서 수업과 숙제를 해냈습니다.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연산문제를 풀던(저는 연산은 초등학교 가서 해주려고 했기때문에 아이가 호주에서 첨 접해 보았습니다) 은이가 이제는 눈으로 보고 풀기 시작했습니다. 한 페이지에 40문제나 되는 연산문제를 빠르게 풀더니 자기가 이에 더하기 빼기 박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수업시간에도 좀 더 발표를 많이 하고 싶어서 손을 아주 높게 든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저는 또 하나의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는 가끔 세게 잡아 당겨 줄 필요도 있구나 하구요. 은이는 그 학원의 방학특강도 듣겠다고 하더군요. 2주간 진행되는데 미리 가서 교재를 보니 지금 배우는 내용보다 쉬워서 은이가 많이 힘들지 않을 것 같아 그러라고 했습니다.
3. 도서관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은이와 저는 한국에서 도서관에 거의 가본적이 없습니다. 바쁜 직장맘이기도 했고 은이는 도서관에서 별로 재미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숙제를 하느라 매일 다니다 보니 은이는 도서관을 제 집처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루에 3-4시간은 도서관에서 책보고, 공부하면서 지냅니다. 도서관이 쉬는 일요일에 무척 아쉬움을 느낄 정도이지요. 은이가 다른 도서관들도 보고 싶다고 해서 한달 정도는 시드니에 있는 기차로 갈 수 있는 50군데의 도서관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곳에서 책도 읽고 무료로 진행되는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그런 경험들을 기록해서 책으로 만들어 줄 예정입니다. 처음 이 제안을 한 사람은 남편입니다. 정말 좋은 생각이라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가뜩이나 바쁜 호주 생활을 더 바쁘게 만들것 같기는 합니다.
4. 은이가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은이가 요즘 푹 빠져 사는 책은 캡틴 언더팬츠입니다. uni-college에서 그 책을 읽고 novel study라는 교재를 푸는데 그 덕분에 은이가 처음으로 챕터북이라는 것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은이는 그림을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해저 컬러가 없는 책은 거들떠도 안보았습니다. 그래서 챕터북은 1-2년쯤 후에 가능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날이 좀 빨리 왔습니다. 그 책 속에서 주인공들은 책을 만들어서 파는데 은이는 자기도 책을 만들어서 팔겠다고 합니다. 그동안 영어로 그림책을 참 많이 만들었는데 이제는 본격적으로 글만 씁니다. 매일 1-2시간씩 집중해서 쓰는데 그림도 없이 글씨만 빽빽하게 벌써 챕터 9까지 썼습니다. 가끔 몰래 들여다 보니 지난 달에 영화관에서 up을 보고 감동은 받아 그 이야기를 적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아빠에게 2천원에 팔기로 했답니다. 아빠가 돈이 없으면 천원에 주겠다고 합니다. 예전에 작가가 되고 싶어했던 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5. 아이에게 고쳐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와 똑같은 모습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 물건을 가끔 잘 잃어버립니다. 우산이라던지 모자라던지 그런것을 자꾸만 잃어버리고 다닙니다. 그냥 저는 그런 저를 크게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아주 사소한 것들을 잊어버리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도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자기 물건을 잘 잊어버리고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특히 교재나 책을 자주 잃어버리고 아무 생각 없는 모습은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는 책이나 교재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 물건 챙기는 것도 힘든데 아이 물건까지 챙기려니 저도 좀 힘이 듭니다. 아이와 앞으로 더 물건을 잘 챙기기로 서로 노력하기로 했는데 정말 앞이 깜깜합니다.
6. 호주여행이 은이만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저도 함께 즐거운 여행이 되었습니다. 처음 호주에 올 때 그동안 직장맘으로서 못해준 엄마노릇을 할 생각으로 은이에게만 집중할 생각이었습니다. 처음 두발 반은 정말 은이를 위한 일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은이도 무척 행복해했구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은이와 함게 즐기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은이와 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읽고 호주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한국에 가서 차용할 부분을 메모하고 계획하면서 이제 저를 위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견문을 넓히는 것이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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