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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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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가 있어야

  • 홍박샘
  • |
  • 2013-12-26
8

아이 발에 박힌 티눈을 떼내느라 아침 저녁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긴 다리를 엄마한테 쭉 뻗어놓고 떼달라고 드러눕습니다.

굳은 살을 떼고 약을 바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

 

제 오른손 엄지 손톱 밑에 큰 티눈이 있었어요.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겠는데 한창 멋 부리고 요란 떨 때 있었습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꽤 크고 아팠고 검은 점도 같이 올라오면서

갈라지고 부스러지면 흉하기까지 했어요.

손톱깍기고 자르거나 약도 좀 바르거나 하면서 그냥 함께 살았네요.

 

학교에 흠모하던 써클 선배가 있었어요. 요즘은 동아리라고 하더군요.

미남인지라 나 뿐 아니라 써클 여학생의 관심을 온 몸에 받던 남자.

어느 날 그 선배와 밥을 먹었는데.

아마 내가 물을 건네줬거나 수저를 집어줬거나 했을 겁니다.

아, 그 남자가 내 티눈을 본 겁니다.

눈을 휘둥그레, 아주 흉한 걸 봤다는 표정으로, 내 손가락을 잡으며,

"이게 뭐야? 아유, 빼 버려!"

 

밥을 무신 정신으로 퍼 먹었는지. 치부를 들킨 심정이랄까?

그날부터 저는 티눈 제거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초강력 티눈테이프를 사다 붙이고 떼며, 불은 살을 잘라냈지요.

그게 생살과 맞다은 데까지 가면 피가 나기도 합니다.

반창고로 엄지를 꽁꽁 싸매고 다니기를 거의 한 달.

드디어 지겹던 티눈이 사라지고 고운 새살이 났습니다.

 

계기가 필요해요. 독한 마음 먹고 뭔가에 몰두해 성취하려면 말이죠.

흠모하던 선배의 한 마디 덕분에 집요하게 붙어있던 티눈을 싹 빼린 것처럼.

오늘도 어제 같고, 내일도 또 오늘 같으면 변화가 없고 변화가 없으면 목적도 못 이루죠.

 

우리집 티눈 단 녀석은 휘황찬란한 성적표도 달고 왔어요.

저는 한번도 본 적 없는 성적에 가슴이 벌렁벌렁했네요.

아주 이쁜 아가씨가 나타나서 제 아들놈한테

"아유, 넌 왜 그렇게 공부를 못하니?" 한 마디 해주면 정신이 번쩍 들텐데, 쩝...

그 녀석 계기가 필요한데.

 

참, 그 미남 선배는요.... 요즘도 동창 모임에서 가끔 보는데

이마 선을 시작으로 정수리를 향해 약 5센티 부분까지

그 찰랑찰랑 하던 머리카락이 없고요,

날렵하게 쭈욱 뻗었던 하체 시작 부분에 손잡이가 뺑 둘러앉아서

단추 사이 사이로 와이셔츠가 마름모로 입이 벌어집니다.

 

옆구리 살을 붙잡으며 "이게 뭐예요? 아유, 빼세요!" 한 마디 할까보다.

그래도 그 선배 다이어트에 계기는 못 줄겁니다.

왜냐? 그가 나를 티눈 만큼도 흠모하지 아니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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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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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사랑
  • |
  • 2013-12-27 16:39
답댓글

푸하하~~마름모 ㅋㅋ

박사님 글을 무조건 읽고싶어하던 이유가  '위트'였음을 오늘에서야 알았어요.

누리주리님의 댓글을 보고요.

 

요즘은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어라 주문하고 사는데

박사님글보고 정신이 퍼뜩들엇어요.

목적을 이루려면 변화가 있어야한다는것!

플래너에 꼭꼭적었습니다.하루하루 변하기라고요.

 

독한맘 먹고 뭔가를 성취하려면 게기가 잇어야한다는것!

목표를 이루려면 변화가 잇어야하는것은 제 숙제인고

계기 마련은 울 애들요~

'박사님 뵙게하면 계기가 되려나~'하는 즐건 상상도 해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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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박샘
  • |
  • 2013-12-27 23:18
물론 한결 같은 게 가장 큰 축복이어요. 일상사 가족사가 한결 같은 게 중요하지.
목표를 달성할 때 한결 같은 속도로 꾸준히 한다면 뭘 더 바라겠어요.
그건 도인들이나 그렇고 우리 같은 사람은 계기가 있어야 이를 악물게 되니 하는 소리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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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리주리
  • |
  • 2013-12-27 09:30
답댓글

박사님 글 늘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이 묻어납니다.

삶의 연륜과 지혜, 위트가 담겨있다고 해야 하나...

계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 가슴에 팍 와닿네요.

전환점이 필요한 저도, 아이에게도 해당되는 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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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박샘
  • |
  • 2013-12-27 10:04
어떤 글은 제가 쓰고도 재미있을 때가 있어요.
그런 글은 대체로 쉽사리 술술 풀리게 쓴 글이어요.
어떤 건 고민스럽게 시간을 들여 썼는데 억지스럽고요.
쓴 사람이 소박하게 진의를 가지고 써야 읽는 사람이 재미있는 거 같아요.
글 쓰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내 글을 무조건 잘 읽을 거라고 착각을 많이 합니다.
자기가 이렇게 많이 안다는 걸 보여주려고 애쓰면서 쓰기도 하고요.
그런 글은 재미가 없고 누가 읽다 말거나 읽고 그냥 팽개칩니다.
남이 읽지 않을 글을 쓰는 건 내 말을 들을 사람 없는 곳에서 외치는 것과 같아요.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기뻐요. 보람있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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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celyn72
  • |
  • 2013-12-27 09:14
답댓글

마지막 부분의 반전이 넘 흥미로워요~~ 박사님~^^


계기... 그렇네요...

제가 며칠 그 계기가 절실하게 필요한 작은놈(조카) 덕분에 완전 맨붕 입니다...ㅜㅜ


학습적 문제라면...제가 욕심을 버리면 될일이라 오히려 쉬운데...

(사실.. 학습적인 문제는 나무랄데가 없네요.. 영어 일취월장...게으름 부리지 않고.

  최근... 여기식 대형 콘서트홀에서 3시간 이상.. 열린 졸업식(?)에서..

  각 학년에서..가장 발전이 큰 아이로 무대에 올라 6학년 대표로 상까지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오랜 시간... 잘못들여진 습관들을 고치는것에 대해...

제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것은 아닌지...  어렵네요...ㅜㅜ


가장 중요한 생활습관과 가치관에 관련된 일이다보니...

포기할 수 없어.. 마음이 볶이는 것이지요...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하는건 분명한데...

그 계기를 제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것을 1년 동안 절감했습니다...ㅜㅜ


맘이 어지러워 들어왔는데....

박사님 글에 웃고 나가려다... 푸념만 늘어놓고 가네요~~

그래도 얼마간 속이 후련한게... 힐링 맞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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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박샘
  • |
  • 2013-12-27 09:21
성적 보다 그 점이 더 중요하지요.
그게 하루 이틀의 잔소리로, 단 기간의 훈련으로 되지 않으니 기다리는 수 밖에요.
제 자신에게 있어 전에 중요하다고 느꼈던 것이 지금 아무 것도 아닌 걸 보면
세월이 가면서 태도와 가치관은 변한다고 봅니다.
아직 애기들이어요. 듣기 좋은 잔소리 하면서 기다리는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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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celyn72
  • |
  • 2013-12-27 09:51
전에 없었던 습관을 좋게 만들어 가기는 오히려 쉬운데...
이미 나쁘게 들어버린 습관을 바로잡는데는 지나간 시간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네요...

듣기좋은 잔소리 하면서 기다리는 거..최선 이네요..
근데...기다리는건 해볼 수 있겠는데.... '듣기좋은 잔소리'는 솔직히 자신이 없어요...ㅜㅜ

애들키우며...
일방적 짝사랑도 모자라... 밀당에..끝없는 기다림에...
사랑중 최고로 어려운 사랑을 하는것이 부모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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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박샘
  • |
  • 2013-12-27 09:59
아이가 기분이 좋을 때 슬쩍,
그 애랑 비슷한 습관을 가진 어떤 인물의 현재 모습의 문제점 언급,
나의 결점, 실수를 말하면서 그 점에 대해 의견/조언을 구하면서..
스리슬쩍 비위 맞추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겁니다.
제 아들녀석은 맛난 거 해주며 말시키면 "응, 응" 하는데 조카는 그거 안 통하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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