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잘못해 부모께 꾸지람을 들은 일이야 숱하게 많습니다.
그런데 엄청나게 잘 못하고도 그닥 혼나지 않은 일이 있으니 컨닝 사건입니다.
기억도 생생한 고2 어느 모의고사 시간.
전국 모의고사가 아니라 학교에서 실시한 주요과목 시험으로 성적표에 기재되지 않는 연습용,
혹은 아이들 옥죄기용 시험이었어요.
교사들의 감독도 헐렁해서 더러는 무감독 비슷하게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무슨 암기과목 시간에 우리반의 말썽꾼 1등짜리 XX가,
-설명이 필요한데 반에서 1등을 하면서 소위 '노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희한한 학생-
선생님이 반에서 나가시자 장난스레 컨닝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소리내어 답을 가르쳐주고 물어보고 하면서 웃음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진행이 되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재미있어졌지요.
저도 딱 한 문제, 정말 고백합니다, 딱 한 문제 누구에게 답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사건은 종례시간에 터졌습니다.
우리반에서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독불장군 학생 하나가 벌떡 일어나더니,
"선생님, 우리 반에서 컨닝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심지어 반장까지 동참했습니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아, 그 반장이 저올시다.
졸지에 모든 사건의 책임을 제가 뒤집어썼습니다.
그런 사태가 생겼을 때 저지했어야 할 사람이 동참해서 희희낙낙한 죄지요.
당황한 선생님 어쩔 줄 모르시면서 방과후 저더러 남으라고 하시대요.
"갸가 조용히 와서 일렀으믄 대강 넘어갔을 수도 있으나 공론화되었기에 어쩔 수 없다.
내일 어머님 모시고 오너라."
옴마나, 울엄마가 울매나 무서운데요.
눈 내리깔고 목소리 낮추고 조근조근 말하다 회초리로 한방 내리치시면
악 소리도 못하고 맞아야 합니다.
난 죽은 겁니다. 아마 학교도 다니지 말라실 겁니다.
워쩌겠습니까? 인생 그만 종말을 고하는 심정으로 엄마께 말씀 드렸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제 모친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여지껏 너의 행동으로 보아 네가 네 성적 올릴라고 점수 얻어 답쓴 건 아니라고 본다.
어려서 한 번, 기분에 휩쓸려 실수한 것으로 본다.
엄마가 학교 가서 사과할 일은 아니며 네가 가서 처리해라.
엄마가 오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면 전학이라도 시켜주마.
잘못은 했다만 이번 일로 같은 짓은 안 할 것으로 본다. 난 내 딸을 믿는다."
죽어도 잊혀지지 않는 용서입니다.
제 엄마는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인사만 똑바로 안 해도 불호령을 치는 분입니다.
선생님께 학교에서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가서 빌라하지 않으시대요.
힘을 얻은 저는 선생님께 버티었습니다.
여러 명이 연루된 대규모 사태에다, 그 XX가 주도했다고 일러바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희생자가 필요한데 마치 그 사건을 단지 반장이라고
내가 주도한 것으로 몰리는 그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지요.
선생님도 곤혹스러워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학교 본부로 일을 가져가야는데 저는 무슨 전교 감투도 쓰고 있었거든요.
반 학생들 앞에서 저는 '반장으로서는 잘못하였으므로 반장직은 사임한다.
그러나 이 사태의 총책임자로 사과할 마음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그 순간 일을 벌였던 그 XX 무리들은 어떤 심정이었을 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앙큼한 것들. 아닌척 하고 앉아있던 야비한 것들....
저는 고마운 선생님의 배려로 일이 더 커지지 않아 전학도 가지않고 2학년 잘 마무리했고
게다가 이듬해 전교회장이 되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슴다. ㅋㅋ
지금 생각하면 잘못했지요.
어쨋든 금지된 일을 했고 책임감도 없는 인간이었지요.
절대적으로 배운 것은 한 문제를 가르쳐주었든, 10문제를 받아 적었든 똑같이 범죄자란 겁니다.
일이 생기면 네가 했네, 내가 했네 싸우는 건 의미가 없더군요.
모두 똑같은 것들입니다.
지나간 얘기가 주마등처럼 스치고 간 이유는
꾸지람만 해대는, 잔소리만 해대는 부모가 되지 말자는 뜻에서입니다.
잘못을 알고 있는 아이에게, 이미 그 일로 공포심을 겪고 있는 아이를 나무라지 마십시오.
그 순간 안아주는 것이 백만번 효과가 큽니다.
저는 심리학자도 아동학자도 아닙니다만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자녀양육에 관해 아는 척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자못 대단한 엄마인 척 하는 제가 갑자기 가증스럽습니다.
저도 아이가 죽어라고 울도록 때려준 적도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가를 벌 준적도 있는 어리석은 애미입니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또 하나 제 엄마께 존경의 마음도 바칩니다.
오늘이 그 양반 일흔여섯번째 생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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