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집은 5남매입니다.
위로 오빠 넷에 마지막에 낳은 딸이 저이지요...
그때만 해도 딸 낳으면 병원에서 담배만 뻑뻑 물고 있는 아버지가 많았던 시절
70년대에 그 귀했던 바나나, 파인애플을 딸 낳았다고 병원에 돌린 우리 아버지였습니다.
부족한 집은 아니었지만, 형제가 많다 보니 뭐든 내 원하는 대로, 페리스 힐튼 처럼 다 가질 순 없었지요.
바이올린도 하고 싶었고, 미대도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까지 하기엔 여유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고 3때는 철부지 마음에 원망도 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하~ 아들 셋 한꺼번에 대학 등록금 내려면, 우리 아버지 어떻게 하신걸까...
진짜 답이 안나옵디다..
게다가 아들래미들 장가가는 데도 돈 많이 들잖아요..
우리 아빠 정말 돈 많이 버셨지요?
그 돈... 우리 아빠 술마시면서 번 돈이었습니다.
영업직이다 보니 접대도 많이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술도 많이 자셨지요.
가끔은 집 앞 방천(?)에 빠져서 오빠들이 구출하러 가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아버지가.. 원치 않던 방식으로 퇴직을 하셨어요.
아버지가 계시던 회사가 대 기업에 합병이 되면서, 말하자면 좌천 후 명퇴가 되신 거지요.
그런 이후...
그냥 집에 계셨어요.
왜 아빠는 취미 생활이 없냐? 어린 마음에 아빠한테 제발 나가서 운동도 하고 친구도 만나라고..
그랬었습니다.
밖에 나가면 다 돈이니까...
그 돈 자기 좋자고 쓰기가 아까워서..
자식새끼들 시집, 장가 보낼 돈이라고...
그래서 안쓰셨어요.
그러다가... 자꾸 자꾸 우리 아빠가... 정신을 놓으시는 겁니다.
처음엔, 아빠가 왜 자꾸 저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지?
나이가 드시니 괴팍해 지는 건가? 했어요.
그게 병인 줄 몰랐습니다.
그러기엔 너무 젊은 나이니까요.
그런데, 그 병은.. 차도가 있는 병이 아니잖아요.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낫는 병이 아니잖아요.
저, 결혼 할 때... 아버지께 물어봤어요.
아빠.. 나랑 팔짱끼고 예식장 들어가실 수 있겠어?
아빠가 그까짓 것 못할 까봐... 하시더이다.
그날은 우리 아빠 정말 맑은 정신이셨어요.
주례 선생님 말씀까지 다 기억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들어 많이 악화 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얼마 전 요양원에 들어가셨어요.
엄마가 자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한다고...
저 사람 살릴라면 내가 들어가야 한다고...
맑은 정신이실 때 그러더래요.
하진이랑 같이 만나뵈러 갔었는데..
생각보다 시설이 좋아서 안심은 했다만.. 그래도.. 가슴 한 켠이 싸... 합니다.
아버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 말이 입안에 맴도는데
내가 그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면 더 안좋아지실까봐..
괜히 예쁜 할머니랑 바람피우면 안된다는 둥.. 여기 밥이 엄마가 해준 밥보다 훨씬 맛있겠다는 둥
흰 소리만 하고 왔습니다.
아버지..
나 아버지 덕분에 고생도 안하고 잘 컸어요.
부모한테 받는게 당연한 건줄 알았는데,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그게 다 엄마, 아빠가 제 살깎아서 자식 먹이는 거더라구.
엄마, 아빠한테 받은 거... 나도 내 자식 한테 주면서 살 게요.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 죄송하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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