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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쇼핑 할매

  • 홍박샘
  • |
  • 2010-10-26
11

제 엄마, 방년 일흔여섯이십니다.

삼십대 중반에 연립주택을 50채씩 지었던 여장부시죠.

그에 반해 초등학교 선생이셨던 제 아빠는 샌님입니다.

신사임당과 임꺽정의 조합, 참 괜찮죠잉?

문제는 아버지가 신씨고 엄마가 임씨입니다.

 

저희들 공부하는 동안 울 엄마는 가락지 하나 못 끼셨습니다.

가락지 하나면 참고서가 몇 권인데 그런 걸 사느냐고요.

집을 척척 지으시니까 늘 신사옥(?)에서는 살았는데

보일러 기름 아끼느라 보일러 스위치 올렸다 바로 꺼서

전 한국의 겨울이 매섭다는 걸 잘 압니다.

 

아, 징그러운 절약 정신.

인사동에 수예점을 운영하신 적이 있었는데

퇴근하고 오시면 아무리 늦어도 집에 와서 저녁을 드셔요.

혼자서 식당밥을 드시는 건 상상도 못 하죠.

저만 그랬나요? 김밥은 소풍 때만, 자장면은 생일에만.

 

종종 늦으셨어요.

늦어도 안 오시는 엄마를 기다려 버스 정류장에 나가면

구척장신 중년여성이 무언가에 골몰한 표정을 짓고 버스에서 내리다

저와 동생을 보고 한 번 슬쩍 웃으십니다. (제가 엄마 닮아서 큽니다.)

골몰한 이유는 어떻게 돈을 벌 것이냐에 관한 겁니다.

 

제 엄마는 원래 거부장자의 자손이셨어요.

외할아버지가 구한 말 마지막 정승 중 한분이시고

할아버지는 XX도 큰 사업가로 여성 교육에도 일찍 눈을 뜨셔서

여학교를 지으신 분이어요.

구한 말 양반/부자들의 생활상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시대극에 나오는 생활 묘사를 보시면 '저거 다 틀렸다'고 하십니다.

 

그런 여자가 어쩌다 임꺽순이 되었을꼬?

6.25 동란이 원인입니다.

거기까지만 말씀드리죠. 비극사가 있으니까요.

여차여차해서 초등선생이 된 엄마가 거기서 사임당과 눈이 맞습니다.

오빠 낳고 선생을 관두고부터 돈벌이에 혈안이 되십니다.

 

중간의 삶 생략

 

이 할매가 요즘 일이 없으십니다.

자식들 다 독립하고 아둥바둥 안 사셔도 됩니다.

제목 기억나시죠? 홈쇼핑 할매가 바로 임꺽정입니다.

몸이 아프셔서, 특히 겨울에는 밖에 못 나가셔요.

부모님 댁의 모든 것은 그래서 TV에서 나옵니다.

냉장고, 소파에서부터 두 켤레 얼마하는 신발, 젊은 사람이나 들 가방,

게다가 갈비, 조기 다 갖다줍니다.

 

화면이 커서 멸치는 조기로, 잔 새우는 가재로 확대됩니다.

쇼호트스라는 여자들의 언변은 기가 막히지요.

그거 틀어놓으면 심심하지 않으시대요.

어디나 전화만 걸어도 '아무개씨시죠?"하면 반색한다네요.

우리 식구들은 그런 할매를 신기해합니다.

그렇게 돈 안 쓰고, 재미란 모르던 사람이

쇼핑에 재미를 붙이셨으니 말이죠.

 

그러니까 젊을 때의 고생을 참고 참으면

편안한 노후가 오나봅니다.

그런데 몸이 아프니 이제사 즐거운 세상이 되는 건 아닙니다. 

안 돌아다녀도 필요한(?) 물건 구입하고

눈과 귀를 심심치 않게 하는 홈쇼핑이 전 요즘 고맙네요.

이번 주에는 또 뭘 사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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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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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은맘
  • |
  • 2010-10-27 11:47
답댓글

박사님 글 올라오시면 반가워서 언릉 클릭 !!

재미와 감동으로 읽구요...

 

짧은 댓글, 말없는 시은맘 이만 글만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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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자나무
  • |
  • 2010-10-27 09:16
답댓글

넘 멋지신데요....

전 아직 홈쇼핑 주문 할 줄 몰라서....

(이상하게 ARS에서 뭐 눌러라 이거 눌러라 하면 정신이 아득해지는

병이 있는지라... ㅋㅋ)

홈쇼핑은 걍 TV로만 물건을 보고 감탄하는데....

박사님 어머님은 정말 대단하신대요...!

넘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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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연지우맘
  • |
  • 2010-10-27 05:52
답댓글

박사님 어머님은 멋지십니다...

연세에 홈쇼핑이라니요... ㅎㅎ

울 엄마는 어디 전화해 그런거 못하십니다...

그저 자식들 전화번호 누르는 것도 감지덕지죠...

아직 일흔도 안되셨는디...

원체 절약정신이 배다 못해 어떨땐 답답하기만 한 울 엄마지만...

엄마가 그리 사셨기에 그나마 자식들이 사람구실 하나 싶어 맘 한 구석이 아려옵니다...

이제 저도 엄마가 되고보니... 결코 쉽지 않은 삶이란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 그런가 봅니다...

이제 일 좀 놓고 쉬시면 좋으련만... 아직 막내가 남았다며... 저리 버티고 계시니... 답답하기도 하고 ㅎㅎ

울 엄마두 할 일 없어지믄 홈쇼핑 요런것두 하실 수 있을라는지.. ㅎㅎ

박사님의 훤칠한 키의 원천이 어머님인거 부럽습니다...

뭐 울 엄마마 키에 저정도믄 성공 한거지만 ㅋㅋ (울엄마 키가 좀 작으시거든요... )

오늘도 박사님 글에 힘도 얻고 기분 좋은 웃음을 머금고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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