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우스운 사진 속의 주인공은 제 은사님입니다.
모교에서 12년 전 은퇴하신 저의 지도교수님이죠.
교포이셔서 댁이 미국인데 최근 한국에 오셨길래 경주에 모시고 갔어요.
다리와 어깨가 아파 가방을 못 드시는 사모님을 대신해 가방을 매신 게
어찌나 웃긴지 제가 뒤에서 찍었습니다.

자꾸 칭찬을 받으면 공부하고 싶어진다는 경험을 이 분과의 수업에서 했습니다.
저더러 자꾸 영어 잘한다고 칭찬해주시니 아, 공부가 점점 재밌두먼요.
수업 중에는 당신이 살아온 드라마 같은 얘기를 종종 하셨습니다.
고아 보다 더 어려운 생활이었던 것이,일찍부터 소년가장이셨어요.
자기 한 몸 더하기,술에 쩔어사는 편부와 동생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지요.
초, 중은 다녀보지도 못하고 검정고시에 붙어 야간 상고를 다니셨어요.
낮에는 공사장이나 미군부대를 돌면서 막일을 하고
학교 수위로 지내는 친구의 수위실서 쪽잠을 얻어잤답니다.
공부는 잘 했으나 하도 가난해서 대학 원서 살 돈이 없어 S대 원서를 못 냈답니다.
사연을 아는 친구가 K대 원서를 사다줘서 그 길로 시험을 봐서 수석입학을 합니다.
입학만 하면 뭐합니까, 돈이 원수인데.
특수 고등학교 영어선생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니 결석을 밥먹듯 하며 대학을 마칩니다.
결석이 많아서 차석으로 졸업을 했다네요.
못 배운 한은 장학금으로 풉니다.
그 이후 권위 있는 미국 장학금 East West Center와 Fulbright를 모두 거머쥡니다.
아이비리그 대학인 C***에서 박사를 하고 미 국방부 산하 The Defense Language Institute 교수가 되지요.
미 국방부는 자국 군인의 외국어 교육을 위해 언어교육이 굉장히 발달해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파병이 잦아 무척 좋은 일자리였지요.
70년대 한국은 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당시 미국서 자리를 잡으면 누구나 귀국하지 않습니다.
촌스런 내 은사님은 한국이 너무 그리워 제가 입학한 모교에 오십니다.
미국에서 의사로 자리 잡은 사모님은 남으니 그야말로 기러기 가족의 원조가 됩니다.
그 즈음 저는 가정형편이 아주 힘든 때에 대학을 갔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가계가 쪼그라들었을 때입니다.
나름 고등학교에서 학생회장하면서 당당함을 떨치며 생활했는데
갑자기 살기가 힘들어져 부모님은 간신히 등록금 마련해 저를 진학시켰어요.
대학생활, 참으로 재미없읍디다.
자존심이 뭉그러져서 공연히 마음이 삐딱해지고
무언가 매달리고픈 목표도 없고 세상 잔일이 다 귀찮아 보이던 시절에 은사님을 만났습니다.
교수님도 그 때 막 부임하셔서 집에 두고 온 가족 때문에 외로웠기에 학생들을 자식처럼 돌보셨어요.
마음 속으로 시큰둥한 대학생활이지만 천성이 명랑하고 활달한 저를 보고
당신 딸과 영락 닮았다면서 특히나 귀여워하셨지요.
평생 이 분의 조언을 잊지 않는답니다.
"급한 심정일지라도 항상 10년 앞을 보고 계획을 세워라."
대학원 진학, 박사 공부, 유학, 모두 이 분의 조언으로 정했고
살아가면서 힘든 때, 위기인 때 모두 은사님 가족과 함께 했습니다.
두 분 모두 은퇴하시고 몸이 아프다고 하셔서 걱정입니다.
1년에 한 번 한국에 오시면 저를 보러 부산에 오시는데 언제까지 계속될 지 모르겠습니다.
내년이면 일흔아홉이신 은사님, 건강하셔서 100살까지 현주보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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