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표를 긁어 모으면서 자기가 가난했노라고 하잖습니까?
그게 뭐 대단한 훈장이나 되는 듯 말하고,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 편이라고 하죠.
저도 가난한 어린 시절 얘기를 즐겨 말하는데
저로서는 그 기억이 싫지 않습니다.
왠고하니 제가 우리집이 가난한 줄 몰랐기 때문이어요.
가난하지만 그런 줄 몰랐던 추석에 대한 추억 긁어모읍니다.
예남매맘의 은근한 압력 때문에. (끄응, 쥐어짜는 소리)
기다림.
명절은 거의 유일하게 엄마가 너그러워 지는 때입니다.
그 즈음 거짓말로 학용품을 사도, 값을 더 불러도 따지지 않고 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그 때 돈을 뭉텅이로 쓰기 때문에
감각이 없어지셔서 쓰는 김에 쓰셨던게 아닌가 합니다.
저도 명절에는 대책 없이 돈이 들어가니까 가감법을 잊어서
조카들에게 용돈을 마구 마구 주거든요.
기다려질 밖에요.
한가함.
차례를 큰집서 지내니 음식과 돈 장만하여 아버지가 내려가시고.
교통 피크를 넘겨서 돌아오시면 비로소 우리 추석이 됐지요.
왜 그런지 엄마의 미소를 본 기억은 없습니다.
형제 많은 시댁에 명절 인사 치르기가 버거워서 그랬겠지요.
차례 지내러 온 식구가 가지 못한 이유를 나중 들어보니
차비 들여 가야 시골집에 잘 방도 마땅치 않았답니다.
큰댁이 농가라 무척 컸으나 그래도 수십명이 모이니까요.
차비 등으로 들 경비 그냥 봉투로 보내셨다고요.
옷.
한벌 얻어 입었습니다. 메이커가 뭡니까?
시장통에 가셔서 아래 위 짝 맞춰 한벌이라고 주시는 거죠.
저는 딸내미라고 좀 특혜를 누려서 간혹 신식 옷가게 '양품점'에서 사주셨어요.
옷 입혀놓고 아래 위로 돌려세워보시고 시익 ~ 한번 웃으시는 엄마.
제가 날씬하니 뽀얬답니다. ㅋㅋ 머리까지 노래서 별명이 튀기....
엄마가 이 별명을 너무 싫어해서 참 이상하더라고요.
'양년' 처럼 생겨 그런다고 무척 싫어하셔서 그게 큰 흉인 줄 알았습니다.
음식.
저는 콩만 쿡쿡 박은 송편은 싫습니다.
달지도 않고 고소하지도 않아 맛을 모르겠어요.
깨나 녹두 속은 부자 송편이고 우리집은 콩이나,
어쩌다 콩을 쪄서 빻은 속 정도였어요.
엄마가 늘 바쁘셔서 화려한 음식상은 없었어요.
구운 생선이라 몇 마리 올라오면 젓가락질 바쁜 남자형제들 때문에
저는 별반 집어 보지도 못하고 뼈 드러난 생선 시신 속 부서진 살 몇점.
자라서 보니.
참말로 우리는 가난했던 거더라고요.
부모가 자식들을 호텔에 버려두고 여행 가서 즐거웠다는 애도 있고요.
(명절에 사람 없는 호텔에서 하루 종일 밥 먹고 수영하고 놀면 되었답니다.)
해외에 살면서 재료 없어 송편 해먹느라 고생 한 애도 있어요.
영국에서 아빠가 버버리 상표 옷을 사다 주셨다는 애.
기가 막혀서.
젊은 아낙일 때.
그 때는 책 넘기며 해야할 숙제가 산더미인데,
애 녀석 빽빽 울어 그 달래기도 힘든데,
상부러지게 음식 차리는 시댁 명절이 괴로웠어요.
차례 음식 더하기 손님 치를 음식까지 충격적인 노동판이더군요.
이제는 숙제도 없고, 우는 애도 없고, 시댁의 손님도 줄었습니다.
젊음이 가면서 명절이 살짝 쓸쓸해집니다.
감사.
저는 참으로 편안한 명절을 보내는 것이두먼요.
기껏 하는 일은 녹두전 부치는 정도입니다. (지금 녹두 불리는 중).
번거롭기는 하지만 일 년에 2번.
뜨끈뜨끈할 때 먹으면서 식구들이 쏟아내는 찬사가 좋아요.
그 찬사 소리가 점점 줄어듭니다.
사람들이 떠나고 있습니다.
불안하고 바쁘고 심란한 건 젊기 때문입니다.
힘겨운 명절은
젊기 때문이니, 젊어서 그런 것이니 그리 아십쇼.
해피 추석임다, 쑥쑥여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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