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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조사 #1 - [부산에서]

  • 해운여사
  • |
  • 2012-01-16
39

쑥쑥 블로그에 써놨던 글 업뎃해서 호구조사에 철처히 응합니다.

(해운여사: 홍박   노인네: 그 남편)
 ------------------

생면부지의 땅에 보따리 하나, 아니 보따리 한 트럭 싣고 내려온 게 어언 20년이다.

내 기필코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결심을 하고 앞 만 보고 살았다.

--만주에 독립운동하러 간 얘기가 아니고,

처음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 내려와 살기 시작하던 때 일이다.

조개 따고 미역 잡은 얘기도 아니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지금은 광안대교가 멋지고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지만

당시에는 집은 전부 낡았는데 상가마다 수입품 가게만 즐비한 요상한 동네였다.

 

기차역과 공항만 보면 신물난다.

지금처럼 KTX가 씽씽 달리는 것도 아니고 서울을 드나들려면

새마을호를 타고 하염없이 달리거나 일이 좀 급하면 뱅기를 타야했으니.

내가 박사과정을 막 입학한 뒤여서 처음에는 남편만 부산으로 갔다.

작은 아파트에 살 길을 마련해주고 나는 친정으로 짐 싸서 들어가는 생이별을 했다.

 기차역에서 헤어지면서 울면서 돌아섰다는 전설이......

(남편하고 일주일 헤어진다고 울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코메디 중의 코메디.)

 

1년후 나도 완전 부산으로 내려왔다.

박사과정 한 학기 남기고 기다리던 아기가 생겼는데 그 때부터 험난한 공부여정이 시작.

너무 오래 기다렸던 임신인지라 서울을 드나드는 건 무리였다.

할 수 없이 휴학하고 출산 후 남은 공부를 하는데, 에효, 기억조차 싫다.

논문, 시험, 발표....서울로 미국으로 애기를 매달고 싸돌아다녔다.

지금은 도저히 못 부린다, 그 극성.

 

미국 얘기. 박사후과정을 할 때 아이가 1학년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 깨워 아침 먹여 학교에 실어다주고

나는 시간 아끼려 일찍 장을 봐 장거리를 들고 일하는 초등학교로 갔다.

그 곳 냉장고에 장 본 물건을 넣어두고 5시간 일을 했다.  

퇴근하면서 장 본 물건 들고, 아이 학교에 들러 데리고 나왔다. 

저녁을 먹기 전 아이를 데리고 수영, 피아노, 축구, 농구....교실로.

그 다음 나는 수업 준비를 했다.

4일 가르치고, 하루는 내 수업을 들었으니 어떤 날은 가르치는 수업, 어떤 날은 내 숙제.

자주 밤을 샜다. 그 와중에 개인적으로 미국 교사시험 준비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아침에 간단히 토스트 한 조각 먹일 걸. 

점심도 시원찮게 먹는다는 생각에 저녁에 미리 준비해놓은 아침밥을 꼭 먹였다. 

그냥 스쿨버스를 태워보낼 걸.

그러려면 아이가 한 20분은 일찍 일어나야 된다.  좀 더 재우려고 그랬다.

음악이다 운동이다 소질이 하나도 없는데 그런 데 시간과 돈 낭비말 걸.

누가 그럴 줄 알았나? 뭐래도 하나는 건질(?) 줄 알았지.

 

이렇게 사는 과정이 추억인가보다.

이를 통해 내가 목표했던 것을 이루었느냐? 대답은 '글쎄요'다.

왜냐면 지금도 끊임 없이 잘 안될 일을 계산하고 실망하고

그러니 목표가 이루어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목표를 이루면 만족스러워야 되는 거 아닌가? 

내 자신에 관한 족쇄는 좀 벗었다. 이 나이까지 못 이루었으면 관두자는 생각이다. 

그런데 아이에 관해서는 여전히 엉토당토 않을 걸 기대했다 속상해 하는 우행을 계속한다.

 

얘기가 옆으로 한 참 샜는데, 난 이제 서울도 미국도 싫다.

광안리 떠나 해운대 온지도 벌써 13 여년.

대체로 미국과 서울에 있었지만 어쨋든 주소지 부산 20년.

 -그 사이 해외 이사를 세 번이나 했으니...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귀여운 사투리가 난무하는 부산 해운대가 좋다.

맘만 먹으면 바다 보면 차 마시고, 심심하면 노인네랑 수영강변 산책하고,

더 심심하면 노인네랑 장산에 올라간다.

백화점 걸어서 5분 - 노인네 식사 해결에 아무 문제가 없다.

은퇴하고도 서울 안 갈란다. 생면부지 부산에서 늙어 죽을란다.

 

부산 예찬, 해운대 예찬 끝

-----

 

다음 바톤은 제이맘.

당신은 어쩌다가 그 곳에서 살게 되셨나요?

그대 쓰시고 릴레이 바톤 딴 사람에게 넘기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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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ushkar
  • |
  • 2012-02-01 09:09
답댓글

호구조사 글들을 읽으며 많은 것을 느낍니다.

박사님의 글들도 늘 읽었지만 이렇게 댓글이나 표현을 하는 것은 처음이네요.

테솔 강의도 너무 듣고 싶지만, 둘째가 15개월이고 봐줄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어서 이번에는 도전을 못하지만, 꼭 한 번은 도전하고 싶습니다.

올 하반기나 내년쯤은 박사님을 뵙게 되겠지요? (써 놓아야 꼭 하게 된다는..)

 

고향이 부산이라 더욱 끌리는 글입니다.^^

 

호구조사를 보며, 엄마들 정말 대단하고 늘 시간적으로든 경제적이든 넉넉하셔서 하실 수 있나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가봐요. 다들 힘든 상황에서 최대한 아이들을 위해 해주시나봐요.

저도 힘을 좀 내어 봐야 겠네요..

 

주변에 많은 경제적 여건을 교육에 투자하는 분들이많아서 걱정하고 위축만 되어있네요. 나는 어떻게 내 아이를 해줄 수 있을지.. 나도 영어유치원보내고 싶고 이것저것 시키고 싶다는 욕심이 앞서고.  무엇보다 엄마의 관심과 노력이 더 중요하겠지요?

다른 사이트 다 접고, 쑥쑥에서 해답을 찾아보렵니다........

 

좋은 글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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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연지우맘
  • |
  • 2012-01-21 09:23
답댓글

ㅎㅎ 이제사 돌아왔답니다...

박사님의 열정이 지금도 느껴져요...

아이키우면서 공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 힘든 공부 다해내시고 그저 존경스러워요 ㅎㅎ

지금은 쑥쑥에 열정을 쏟고 계시고 ㅎㅎ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박사님 만날걸 큰 복으로 아는 사람입니다~~

저두 박사님만큼은 못하겠지만 욜심히 살아보려구요...

뭐 살다보면 어찌 되것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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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박샘
  • |
  • 2012-01-21 09:47
페이지 뒤로 넘어갔는데 찾아서 읽었수?
자꾸 아프대서 걱정이네.
공부 줄이고 운동해야지. 나도 참 운동이 귀찮어.
올해는 우리 둘이 일주일에 세번 걷기 캠페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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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은맘
  • |
  • 2012-01-19 12:30
답댓글

호구조사 글들 하나씩 읽고 있어요.

홍박샘 글은 언제 읽어도 가슴이 몽글거려요..

이미 앞서 길을 걸어가신 분이기에 해주시는 말씀이 오롯이 가슴에 남아요.

저도 훗날 나의 '노인네'^^; 와 함께 차마시고 산착하는 그런 날을 꿈꿔요.

그 날이 될때까지 상처 안줘야할텐데..

저 힘들다고 원망한적 있었습니다.

얼마전 오카리나 연수를 하는 데 '사랑하는 이에게'라는 곡을 우선 노래로 불러보자 하더군요.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이 살포시 맺혔어요.

나의 미래 '노인네'와 연애 적에 차 안에서 들으며 좋다~ 하던 곡이거덩요.

미안했습니다.

내가 무척 좋아해서 함께 걷고자 택한 사람인데..

 

^^;

다음 호구조사 글 제이맘님 글 읽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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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박샘
  • |
  • 2012-01-19 13:39
호구조사 하는데 보니까 인천사람이 또 있던걸요.
'사랑하는 이에게'? 나도 모르고 울 노인네도 모르네.
우리는 뭐 하고 산 사람들인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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