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디서 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ㅎㅎ
갑자기 제 인생사를 쭉.. 쓰려니 난감하네요.
글이나 수필을 읽기만 했지.. 요렇게 정리해 보려니 새로운 느낌도 들고.. 난감하기도 해요.
그래도 제 짧은 생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좋네요.
이런 생각 해 주신 원영사랑님~ 그리고 박사님.. 감사드려요.
먼저.. 저는 부산에서 태어나긴 했는데 중학생이 될 때까지는 부산에서 살지 않았어요.
아빠가 군인이시라서 일 이년만에 이사 다니기를 반복하면서 서울과 경기도 여러곳, 경상북도를 거쳐
다시 부산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지요.
그야말로 전국구 인생~~ 제가 전라도 쪽은 거의 못 가 봤지만
서울부터 부산까지는 쭉~ 거치면서 살았지요. ㅎㅎ
그러다 보니 제 인생의 변화가 참 많았어요.
초등학교 때만 4번 전학.. 담임 선생님만 모두 10분.. ㅎㅎ
중학교 때도 두번 전학.. 그나마 고등학교 때는 엄마가 아빠와 주말 부부 하시면서도 이사를 하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감사한 일인데 그때는 그걸.. 몰랐어요. ㅎㅎ
제가 어릴때는 정말 소극적이고 조용한 아이였는데
점점 활달하고 친구들과 노는걸 좋아하는 성격으로 바뀌게 되었어요.
초등 4학년 때는 이사 간 곳에서 제일 조용한 아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책만 들고 다닌 아이가..
초증 5학년 때 전학을 기점으로..
그 동네 왈가닥이자 여자 짱으로 등극하지요. ㅎㅎ
그때 아마 제가 터득했던 것 같아요.
일년 동안 조용히.. 책만 보면서 혼자 있다보니 이건 아니다..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혼자 책 읽는 시간도 좋았겠지만 너무 외로웠던 것 같아요.
이사를 가면 일단 보는게 그 친구의 성적과 성격이지요.
일단 성적을 좋게 받고 그 반의 짱으로 군림하는 남자 아이를 꺽어라~~~
요런 생각으로 인해 제 초등 5, 6학년의 생활은 왈가닥에 사고뭉치로 점철 됩니다. ㅎㅎㅎ
남자들을 이겨야 된다는 강박관념도 이때부터 생깁니다.
어릴 때부터 하도 여러 곳을 이사 다니다 보니 새로운 곳에 가서 적응하고
친구도 만들고.. 그 주변 지역 탐색하고 좋은 곳 찾아다니는 것이 제게는 너무 익숙하고 쉬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이사 다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장을 옮기거나
인생에 있어 뭔가 변화를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도 너무 너무 익숙하게 친하게 그 분위기에 흡수 되는 능력??을 갖게 되었지요.
그러다 여자 중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이상하게 여자 아이들은 제가 지켜 줘야 한다는 슈퍼우먼 정신이 투철했던 저이기에
싸울 대상이 없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매진하게 된게 공부.. ㅋㅋ
누가 들으면 서울대라도 나온 줄 알겠지만
나름.. 중학교에서 전교 순위 안에 들고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관심을 받게 되지요.
하지만 왈가닥 기질은 풀 상대가 없었으므로 고등학교 때까지는 정~~말 여성적인 모드로 지나갑니다.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진짜여요~~)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지만 체력적인 한계도 있었고..
제가 고등학교 때 참 많~이 아팠어요.
신경성 장염을 중학교 때부터 쭉~ 달고 살고 비염에... 좋은 곳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도 공부 한다고 고집부리고 앉아서 맨날 아프면서도 공부한다고 버티는 미련퉁이가 저였더랬습니다.
학교 다닐 때 보면 이런 학생들 꼭.. 있지요? ㅎㅎ
그렇게 공부를 했으니 수능 시험일날.. 컨디션이 좋을리 만무하고..
삼년 내내 고생한 값에는 절대적으로 못 미치는 성적을 받게 됩니다.
서울대에는 갈 실력이 되는 모의고사 성적을 받았던 제가 말도 안되는 점수 받아들고
얼마나 망연자실햇던지.. 재수를 생각하기에는 연년생 동생 때문에 엄마가 너무 힘드실 것 같고..
심각한 고민을 하는 와중에 부산에 있는 대학의 공대에 일단 지원을 했는데
희한하게 이 대학에서 장학금을 주며 오랍니다. ㅎㅎㅎ
그래서 등록금도 안 드니 혼자 공부하면 되겠다.. 생각하고 입학 절차를 밟았는데
공부만 하던 미련퉁이의 눈에 대학 생활은 너~~무 자유롭고 할 것이 많았어요.
한 두달 대학 생활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 저는 다시 공부할 생각을 접고.. 열심히 놉니다. ㅎㅎ
일년동안 cc도 하고... 열심히 놀고 즐기다가 (학점만 관리 했지요.. )
정신 차려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때 학교 장학금을 지원 받아 가게된 미국 어학 연수..
두달 코스에 학점 인정도 되었고 등록금부터 체류비용까지 전액 지원 받아 간거라서
엄마 아빠한테 손 벌리지 않고 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요.
그 두달이 제게는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
문법만 외우고 공부하던 영어가 아니라 살아있는 영어를 만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요.
그때 영어의 묘미를 알게 되었고 미국 대학의 수업은 우리나라의 일방적인 수업방식과 다르다는 것,.
그 수업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그 생활이 너무 즐거웠기에 두달동안 향수병도 걸리지 않고
그곳 문화에 푹~~ 빠져 있다 다시 돌아왔어요.
그때 영어의 맛을 제대로 느끼고 나도 영어를 잘하고 싶어.. 라는 단순한 열망을 가지고
영어 학원도 다니고 나름 열심히 공부를 했지요.
이때 전과를 하거나 해외 대학에 인턴쉽을 신청하든지.. 뭔가 일을 냈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제 시야가 너무 좁았어요.
그냥 4년 열심히 수업 듣고 졸업하고.. 그 사이 사이 영어 공부 열심히 하는 수준이었지요.
제 인생에 제일 후회가 되는 시기입니다.
좀 더.. 긴 안목으로 주변에서 정보나 조언을 구할 것을.. 그리고 도전해 보았어야 하는데
그저 내 눈앞에 시험과 해결해야 할 일에만 충실 했던 것..
이게 지금의 어정쩡한 모습을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이 시기에 대학 선배라는 한 사람을 알게 됩니다.
모두들 무서워하고 곁에 가지 않으려는데 희한하게.. 저는 그 선배가 귀여웠어요.
키도 크고 덩치도 큰데다 자기 주장이나 고집이 워낙 강한 선배인데다
누가 옆에서 뭔가 잘못을 하면 엄청 무섭게 군기 잡는 선배..
근데 왜 저는 그게 무섭지도 않았고 제가 이해가 되는 말을 하면 네.. 하고 수긍을 했지요.
투덜 투덜 내 뱉는 말들도 그냥 귀여운 투정 정도로 보여 달래주게 되고
모범생 스타일의 저와는 정 반대인 농땡이 10단의 이 선배를 인간 좀 만들어 보자..
뭐 이런 이상한 생각으로 입학하고 한번도 도서관에 가 본적이 없던 이 선배를
도서관에 하루종일 앉혀 놓고 공부 시키고..
꾸질꾸질한 옷 대충 입고 다니던 복학생 선배를 데리고 쇼핑몰에 가서
예쁘게 단장해서 데리고 오기도 하고..
그 동아리에서 이 선배에게 뭔가 말을 하고 듣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저 밖에 없어서
선배들이 전부 신기하다.. 그랬어요.
그때는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선배가 제게 흑심을 품고 제 말을 다 들어준거더라구요.
종알 종알 하루종일 뭔가 말하고 웃고 떠드는 모습이 귀여웠고
무엇을 하든 제 기운이 다 빠지도록 하는게 안쓰러웠데요.
지켜주고 싶었다고.. 나중에 고백하더이다..
대학교 입학해서 사귀었던 첫 남자친구는 세상 모든 것을 제게 다 가져다 줄 것 처럼
제 기분과 마음을 잘 맞추어 주었어요.
제가 지갑을 잊어 버려 울고 있을 때 절 달래 놓고 바로 뛰어가서
새 지갑을 사서 그 안에 돈까지 넣어서 들고 오기도 햇고
제가 어학연수 가 있는 동안 수십통의 편지와 여러가지 선물도 챙겨주는 세심한 친구였어요.
그런데.. 그때는 제가 많이 어렸나 봅니다.
그런 남자친구가 만만해 보이기도 하고 너무 저한테 다 맞춰 주는게 재미없었지요. ㅎㅎ
그런 남자친구와 사귀다가...
정말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고 하고 제 기분은 맞춰 줄 줄도 모르고..
어떻게 하면 여자 친구가 기분이 좋을지... 전~~~혀 모르는 이 선배와 사귀게 되지요.
하나 하나 다 말해줘야 아는 이 미련퉁이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서운해서 울고 속상해서 울고.. 진작 헤어졌어야 하는데 ...
자기가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모르고 고민할 때...
제가 살아갈 이유가 되었다고.. 고백을 하더이다.
한 사람이 살아갈 이유가 된다는건.. 참.. 부담스럽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말이었어요.
그렇게 오랜.. 구애가 지속되었고 전 어느새 이 선배와 지내는 일상이 익숙해져 버렸지요.
그렇게.. 어찌 어찌 발목 잡힌것이 지금 울 신랑입니다.
아직도 여자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울 신랑은 하나 하나 다 말해 줘야 알지만
세상에서 제일 무뚝뚝한 신랑이지만...
제가 힘들 때 토닥여주고 절 지켜 줄 것 같은 든든함을 느끼게 해 주는고마운 사람이네요.
제가 느낄 수 있던 그 사람의 마음이 너무 순수해서 거기에 퐁당~~ 빠져서
지금까지 지지고 볶고 사나봅니다.
호구 조사인데 러브스토리가 줄줄~~ ㅎㅎㅎ
암튼 이 선배가 서울로 직장을 가지게 되었고 졸업하고 부산에서 연구직 쪽으로 직장을 잡았던 저는
과감히 제 직장을 버리고.. 전혀 새로운 업종으로 이직을 하게 됩니다.
선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첫 직장이 자동차 회사 연구직이다 보니
여자에게는 너무 힘든 업무가 많고 나중에 애도 못 낳을 정도의 위협이 되는 화합물도
많이 다뤄야 하는 직업이었지요.
그게 싫어서.. 그리고 앉아서 연구만 하는건 제 적성에 맞지 않아서
해외 무역을 하는 업체로 이직을 감행합니다.
처음에는 서류 업무부터 배우고 해외 바이어들에게 교신하는 업무를 맡게 되고
독일이나 유럽 바이어들이 회사에 왔을 때 영어를 좀 잘하는 직원으로 분류 되어서
해외 영업 업무를 맡게 됩니다.
저만 교신하는 바이어도 여러군데 되었고 전담 영업도 했으니..
나름 안정적인 자리를 가지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서울 와 있던 울 신랑과 결혼을 하게 되고 예쁜 아이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나서 두달만에.. 심하게 아토피 증상을 보였어요.
처음에는 뾰루지처럼 올라오더니 태열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점점 온 몸으로 벌겋게 달아 오르고 아이가 간지러워 긁기 시작하고
정말 심했을 때는 얼굴에 진물이 나더라구요.
정말.. 울고 또 울었답니다.
저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괜히 제 전공과 이년정도 몸 담았던 직장 때문인가..
아니면 임신하고 매운걸 먹어서 그런가..
별 생각을 다하면서 제 잘못이라 자책했어요.
차라리 제가 아픈게 낫지 아이가 그런걸 보는건 너무 힘들었어요.
뉴질랜드로 이민을 갈까.. 시골에 들어가 황토집을 짓고 살까.. 별 고민을 다하다가
그 때 제가 할 수 있는건 시골에 계신 시댁으로 들어가는 일있어요.
신랑은 회사를 다녀야 하니 서울에 있고 저는 회사에 사표를 쓰고
바로 시댁으로 짐 싸서 들어갔어요.
아이 낳고 출산 휴가 쓰고 아이가 4개월 됐을 때 복귀 했다 5개월 째에 바로 사표를 던지는 무모한 직원.. ㅎㅎ
제가 사장이어도 바로 사표 쓰라 할텐데..
다행히 팀장님이 저를 무척 예뻐 하셔서 3달간 휴가로 처리해 주셨지요.
그렇게 울 아들은 엄마와 시골에서 지내게 됩니다.
그때 제 머리에는 아이 아토피 치료 밖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시어머니가 직접 기른 유기농 야채와 된장만 먹고
인스턴트 식품도 다 끊고.. 신랑도 없이 시댁에서 오직 아이만 보면서 지냈지요.
시어른들도 약초 구해 오셔서 말리고 그걸 또 다려서 약물 만들어 목욕 시켜 주시고
아이 보습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해 주셨어요.
직장 다니느라 암것도 제대로 못하는 며느리 수발도 들어주신 고마운 분들이지요.
그렇게 공을 들인 덕분인지.. 아니면 제가 나을 때가 되어 나았는지..
9개월 정도 되면서 거짓말처럼 스르륵.. 나았어요.
그 후에는 여름이나 겨울에 조금씩 아토피 증상 보이는 것 빼고는 심하게 일어나지 않더라구요.
정말.. 정말 다행이고.. 하늘이 도우셨다.. 생각하며 감사하게 생각한답니다.
처음 가지는 아이라 너무 소중하고 예뻤지만 그렇게 저를 봐 주신 팀장님게 죄송스럽기도 하고..
또 일을 계속하고 싶은 제 욕심에
부산 친정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주 5일은 서울에.. 주말에는 부산으로 오가며 윤성이를 키웠어요.
아토피 때문에 분유 수유를 할 수 없었으므로 모유만을 고집해가며 미련스러운 그 생활을 이어 나갔지요.
참.. 미련스럽지요? ㅎㅎ 제가 생각해도 그때 저는 미련퉁이랍니다.
그렇게 일년을 더 회사를 다니다.. 친정 엄마 건강이 나빠지시고
엄마가 더이상 못 보겠다.. 선언 하시기 전.. 18개월에 제가 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왔어요.
그때까지는 정말.. 몰랐어요.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돌봐 달라는 것이 얼마나 불효인지를..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말이지요.
막상 제가 데리고 와서 키우려니.. 아고.. 진짜 힘들데요~~
그냥 회사 다니는게 풜~~씬 낫다는 생각이 팍팍 들었어요.
아이 재우고 제가 하는 일은 육아 서적 보기와 인터넷 정보 찾기..
아이 밥 해 먹이는 것 부터 씻기고 재우는 법까지.. 정말 많은 육아서를 보고
내 아이에게 맞는 것을 찾아 공부하고 배웠어요.
그렇게 첫 아이를 키우면서 쑥쑥에 발을 담그게 됩니다.
갓난쟁이 때부터 책을 좋아한 울 아들.. 엄마가 놀아주는 방법을 몰라 헤메일 때
책만 읽어주면 너무 즐겁게 아이와 놀 수 있었어요.
잘 자라고 책을 읽어주면 더 ~더~를 외치면서 눈이 말똥 말똥해지는 녀석 덕분에
새벽 두세시까지 책을 읽고 또 읽어야 했어요.
그렇게 영어 그림책과 인연을 맺고 제가 영어 그림책 사랑에 푹~ 빠지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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