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글을 쓰고,
날 밝았을 때 읽으니, 올려야되나 말아야되나, 다시 쓸까, 오늘 하루종일 고민했어요..^^;
처음엔 유쾌하게 쓰려고 했는데, 거실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과 예쁜 밤 풍경이 저를
감상적으로 만들어버렸네요..^^;;
조금만 다듬어서 그냥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꽁이입니다. ^^*
우리 토깽이 28개월부터 쑥쑥에 발을 담궜는데..이제 토깽이가 7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유게에서 선배대접을 받네요..ㅋㅋㅋ
원영사랑님의 지목으로 윤성누리맘님에 이어 얼떨결에 글을 쓰게 되었는데...
글쓰는 게 참 쉽지가 않네요..잉~
저는 안양에서 5살부터 살았어요..
그냥 제가 살던 곳이었고, 결혼하고 인천으로 잠시 떠났었지만,
토깽이가 태어나고 엄마의 도움이 필요해서 다시 안양으로 돌아왔지요..
다른 분들처럼 사연이 있어서 머물게 된 곳이 아니라..
그저 제가 자란 곳이고 익숙한 곳이기에 아직까지 살고 있네요..
이런 이유로 그다지 쓸만한 이야기가 없기에,
신랑과의 연애이야기와 결혼이야기를 쓰려고 했더니,
이야기가 서로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어떤 이야기는 쓰고 어떤 이야기는 안 쓸 수가 없네요..
그래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자리로 만들기로 했네요..^^
이제 30대도 꺾어진 30대인데..
부끄러울 것도 없지요..^^*
저는 사춘기가 늦게 찾아왔어요..
고 2 후반 때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게 되시고,
저희 삼남매를 엄마가 혼자 키우게 되셨지요.
공부를 꽤 해서 명문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그 안에서도 꽤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고 3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찾아온 환경변화는 성적도 함께 떨어뜨리더라구요.
잠시 힘들어하다가 나름대로 무사히 고3을 마무리짓고 대학에 입학하지요.
본고사를 보았더라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을텐데,
그 땐 본고사 학원에 다닐 형편도, 하고자 할 의욕도 없었던 것 같아요..
한학기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입학했고, 학점관리를 잘 해서 그 뒤 4년내내 계속 장학금을 받았어요..
전액장학금도 2번이나 받았답니다..으흐흐흐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고, 동아리에서 한 학년 위의 선배를 만났어요.
저에게 잘 해주고 저도 싫지 않았던터라 친하게 지냈지요.
근데, 여름방학을 앞두고 제게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어요..
더 웃긴 건, 저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그렇게 여름방학을 보냈다는 사실이지요..^^
바빴거든요. 과외도 여러 건 뛰고, 다른 아르바이트도 하고,
엄마가 큰 수술을 받는 등, 시간적인 여유도 마음적인 여유도 없었어요..
그리고, 방학을 보내고 2학기 개강 얼마 후, 다른 친구를 통해서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되지요.
그 선배는 제 환경이 부담스러웠답니다.
뭐가요?? 제가 그 선배랑 결혼할 것도 아니고, 그 얘기를 듣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더군요.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도 아니었고,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이었을텐데..
그 선배의 한 마디가 제게 큰 상처를 준 것 같아요.
그 후, 제게 다가오는 선배, 후배, 동기들 모두 거절하게 되더라구요..
(나름대로 제가 쪼~~~~~~~옴 인기가 많았어요..으하하하..자랑질...^^*)
그렇게 1학년 때 잠시 만난 나쁜 사람 때문에 대학 4년내내 마음고생을 했어요..
그 선배는 그 후 군대에 가고, 휴가 나올 때마다 스토커처럼 저를 쫓아다녔지요..
그러면서 제게 한 말이 " 다시 시작하고 싶다 " 였어요..
제가 계속 무시하니, 그 선배가 나중에 저희 집으로 편지를 한 통 보냈어요.
" 결혼이 관여하지 않은 사랑만으로 만나고 싶다.."
저 이 편지 받고 피가 거꾸로 솟는 줄 알았어요..편지를 박박 찢고 딱 한 줄 답장을 보냈지요.
" 미친 XX, 다시 한번 나한테 연락하면 죽는다! "
대학 들어가고 처음 만난 사람이 이런 미친 X이었다니, 정말 황당하지요??
암튼, 그러는 사이, 저는 우리 신랑이랑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지요.
제가 대학교 3학년 때, 우리 신랑이 군대 제대 후, 2학년으로 복학을 했지요..
제가 클래식기타 동아리였는데, 보통은 2학년들이 참여하는 신입생 환영연주회에
2학년들 인원이 부족해서 함께 참여하게 되었답니다.
저는 처음 보는 사람이 있길래 신입생인 줄 알고, 우리 신랑을 계속 후배 취급..ㅋ
" 이름이 뭐야? 무슨 과야?? 앞으로 잘 해보자.." ㅋㅋㅋ
또, 우리 신랑은 저를 놀래키려고 계속 신입생인 척 했지요.
" 네..누나..." ㅋㅋ
그렇게 동아리에서는 처음 봤어요..^^
우리 신랑은 날라리 동아리 회원이라, 동아리 모임에는 거의 안 나왔거든요.
동아리 사람들은 다들 저희가 어떤 경로로 만났는지 궁금해하더라구요..
저희는 여기저기에서 우연히 자주 부딪쳤어요..^^
도서관에서 제 책상에 펼쳐진 문제집에 이렇게 써놓고 도망간 사람도 우리 신랑이었어요.
" 장난해?? 지금 다 틀리고 있어..!! 놀지말고 공부해라..- 일지매 "
일지매라니...유치하기는....ㅋㅋ
그렇게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문득 겁이 나더군요..
이 사람도 내 환경이 부담스러울까..하는...
그래서 어느 날 제가 먼저 말을 했답니다.
내 환경이 부담스러워서 언젠가 헤어질거라면, 지금 헤어지자..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옵니다.
우리 신랑도 같은 아픔이 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어머니는 새어머니라는...
그런 환경이 왜 부담이 되냐고 하더군요..
암튼, 그 날, 이후로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6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지요.
결혼 후, 시댁과 가까운 인천 부개동에 집을 구해 신혼생활을 시작했어요.
시아버지는 딸이 없으셔서, 딸을 무척 원하셨어요..
그래서 무뚝뚝한 형님보다 저를 딸처럼 아껴주셨지요.
아버지가 암 투병중이라 예정보다 결혼을 빨리 앞당겼고,
신혼초부터 시댁의 생활비며, 병원비를 함께 부담해야했어요..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겪을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아버지는 몸도 마음도 무척 약해지셨던 것 같아요..
가부장적인 분이셨고, 자존심도 무척 강하신 분이셨는데,
아무 것도 하실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드셨나봐요..
정말 많이 힘드셨던 것 같아요..
결국, 아버지는 삶을 스스로 포기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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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도 그 날 일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퇴근 길에 전화를 받았는데, 처음엔 아무도 제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어요..
시댁으로 부랴부랴 가고 있는 제게 오지 말라더군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서 있을 힘도 없어서 지하철에서 그냥 내려 주저 앉았어요..
이 일은 우리 가족들에게 정말 큰 아픔으로 남아있어요.
그래서 아직도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어합니다.
마지막에 정 떼시려고 그러셨는지, 가족들에게 심지어는 저한테까지도 안 좋은 소리하셨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그 때 기분나빠했던 게 그렇게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장례식 때에는 실감이 안 나서, 잘 몰랐는데, 화장터에서 기다리는 동안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주체할 수가 없더군요.
잘 해 드리고 싶었어요..딸 같은 며느리가 되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셨던 딸...제가 되어 드리고 싶었어요...
선산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아버지의 유골함을 꼭 껴안고 있던 우리 신랑의 모습...
큰아들로서 마음껏 울기조차도 힘들었을 시아주버님 모습...
마지막에 아버지에게 안 좋은 소리하셨다고 자책하시던 작은 아버지 모습...
7년 가까이 된 지금 생각해도 자꾸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아직도 저희에겐 너무나 아픈 상처로 남아계신 아버지이네요..ㅠㅠ
퇴근 후, 바로 출발했다는 둘째 며느리가 올 시간이 조금 넘었는데도 오지 않자
거실에서 서서 안절부절 못 하시며 제게 전화해보라고 자꾸 시어머니를 재촉하시던 아버지..
제가 집에 들어가니,
" 오느라 고생했다.." 라며 환하게 웃어주기만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
저는 이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요...
이 때 제가 임신 5개월이었는데,
만약에 그 때 우리 토깽이가 손녀라는 걸 알았다면,
아버지가 더 사시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간혹 하기도 합니다..
참, 예뻐해주셨을텐데..말이죠...
그리고 몇 개월 후, 우리 토깽이가 태어났어요..
임신 초기에 유산기, 임신 말기에 조산기로 병원에 한달내내 누워만 있었어요..
뱃 속에서 수신증 진단을 받은 토깽이는 최악의 상황엔
조기출산한 후, 바로 수술을 해야할지도 모른다고 했지요..
다행히, 조산기도 잘 넘기고, 수신증도 더 심해지지 않은 채,
2006년 2월 18일 무사히 토깽이가 태어났어요..

(태어난 지 2주된 토깽양)
토깽이가 시아버지 이마를 꼭 닮아서 다들 살아계셨으면
정말 좋아하셨을거라고 하셨지요...
토깽이가 태어나고, 저는 인천 부개에서의 신혼생활 2년을 접고,
다시 안양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1년 뒤, 제게 큰 일이 일어났지요..
토깽이 돌잔치를 앞두고,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던 저는 뇌수막염 판정을 받게 되었답니다.
보통의 뇌수막염과 달리 위험한 뇌수막염인 것 같다며,
이런저런 검사와, 뇌척수액 검사를 통해 결핵성 뇌수막염 의증 판결을 받았어요..
검사결과가 애매해서 정확히 결핵성 뇌수막염이라고 판정할 수는 없지만,
그 때 저희 회사에 폐결핵 판정을 받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성이 크다고 하시더라구요.
보통 건강한 사람은 폐결핵 환자와 접촉해도 큰 문제가 없고, 전염이 된다해도 폐결핵으로 전염이 되는데,
저는 폐는 깨끗한 걸 보니, 운 나쁘게 바로 뇌로 간 것 같다고 하더군요..
결국 그 독한 약을 1년 넘게 복용하게 되지요..
문제는 거기서 그친 게 아니라, 검사 중 뇌하수체에 혹이 있고 호르몬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서울의 3차병원으로 옮겨지게 되었어요..ㅠㅠ
혹시 말단비대증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거인증이라고도 하지요..최홍만처럼, 각 몸의 끝부분의 해당하는 골격이 커지는 증상이래요..
심할 경우에는 장기에 영향을 미치고 해서 생명도 위험하다는...ㅡ.ㅡ
근데요..저..작아요...ㅋㅋㅋㅋ
얼굴도 몸도 손발도 다 작아요..
3차병원의 담당선생님께서 제가 들어가니,
진료의뢰서를 보시고, 저를 보시더니...딱 한마디 하시더군요..
" 아닌 것 같은데??? " ㅡ.ㅡ
워낙에 오류가 많이 나오는 검사라 담당선생님도 자기 병원에서 한 결과도 이상소견이 2번 이상 나와야만 판정을 내린다고 하시면서 걱정말라고 안심시켜주셨어요..
다행히, 뇌하수체에 혹처럼 보이는 게 있지만, 호르몬 검사는 이상이 없었고,
1년간의 추적검사 뒤에도 혹이 커지지 않은 걸로 나와서, 안심하게 되었답니다.
우리 신랑은 이 때의 일로 엄청 놀랐었지요..
의사선생님께서 몇 개월간 잘 살펴보라고, 뇌수막염 후유증으로 어딘가 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 하셨다네요..ㅡ.ㅡ
그러나, 저 멀쩡합니다..^^*
여러가지 일들로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던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요...^^
뇌수막염 판정 이후로, 자주 찾아오던 두통도 작년부터는 덜 해졌어요..^^*
많이 건강해졌으니, 바램이 있다면, 토깽이 동생이 하나 생겨서..
우리 멍이 (신랑)랑 토깽이랑 토깽이 동생이랑 네 식구 행복하게 사는건데..쉽지가 않네요..^^

저는 지금 제가 어릴 때 뛰어놀던 안양천이 바로 보이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집 거실에서 보면, 초등학교 때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을 때
엄마랑 동생들이랑 함께 묻어준 그 곳이 보여요..물론 많이 변했지만요..
길 하나만 건너면 어릴 때 봄 되면 엄마랑 친구들이랑 쑥 캐고, 소 구경하러 가던 평촌이고요..^^
지금은 아파트 단지들로 가득찼지만요..
언제까지 제가 자란 안양에서 살게 될지는 모르지만..
저는 제 고향이나 다름없는 안양이 참 좋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입니다.

연애기간 6년, 결혼 후 8년, 참 오랜기간 붙어지낸 우리 멍이(신랑)랑
너무 착하고 예쁜 우리 토깽이..
이번 설연휴에 덕유산에서 찍은 따땃한 사진이예요..^^
(우리 멍이가 사진 올린 거 알면 난리날텐데..ㅋㅋ)
두서없이 써내려간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넘 감사하고요..
저도 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된 것 같네요..
다음 타자는 강원도에 계신 예남매맘님이세요~^^*
우리 토깽이랑 동갑인 예남매들~^^*
강원도 이야기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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