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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컨텐츠

야채를 얼렸어요

  • 홍박샘
  • |
  • 2013-01-21
13

어느날 하루는 맘 먹고 찬 준비를 합니다.

매일 매일 반찬을 새로 해먹을 수는 없으니 미리 뭔가 여러 번 해먹을 것을

마련해놓으면 부엌 노동을 줄이니까요.

 

어제는 냉채를 해먹을 준비를 해놨어요.

겨자소스만 새콤 달콤 해놓으면 그때 그때 이것저것 섞어먹으면 됩니다.

(연겨자 1큰술, 간장 2큰술, 식초4큰술, 설탕3큰술, 레몬즙1큰술, 마늘 1큰술, 소금1작은술,

하루 전 만들어 놔야 마늘의 매운 맛이 죽습니다)

오이, 당근, 미나리, 피망 때로는 머리 따서 데쳐놓은 콩나물 등 준비내놉니다.

여기에 오징어나 새우를 데쳐 섞어 먹든가,

아니면 믿기지 않겠지만 돼지고기 수육이랑 이 야채랑 냉채소스에 먹어도 좋습니다.

양파채, 깻잎채, 피망채, 그때 그때 눈에 띄는 재료랑 드세요.

 

저는 야채 준비 잘 해놓고 어쨋는 줄 아세요? 냉동실에 집어넣어 꽁꽁 얼렸더군요.

얼었다 녹은 채소를 어찌 먹습니까? 애쓰고 칼질해서 다 버렸네요.

깜박 잊는 증세가 극에 달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는 통장 새로 만들면 안 쓰는 가방에서 나오고,

양말을 신고 한번 더 신어야지 벗어논 채 새걸 꺼내서 수북히 양말이 쌓입니다.

비슷한 옷이 있는데 또 사서 검정색 터틀넥이 3벌. 심지어 같은 상표도 있네요.

여기저기에 이멜 보낼 일이 있는데 안 보낸 줄 알고 놀래서 열어보니 이미 보냈습니다.

또 썼으면 어쩔 뻔 했나.....

 

이제는 받아들여야죠. 내 머리가 한계에 달해 기능이 쇠한 걸 탓해 무엇 하리.

타이머에 의존에서 다 스케줄 저장해놨습니다.

재택이 늘어서 집에서 인터넷 접속해 처리하는 일이 많아서 잊기가 더 쉽습니다.

가스렌지 대신 전기 렌지로 부억일 합니다. 시간 되면 알아서 꺼지도록 해놨어요.

자꾸 자기 자신을 탓하면 뭐합니까? 실수 덜 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해야지.

노안이 심해져서 가까운 게 잘 안 보입니다. 눈이 무척 피로한데 그려러니 합니다.

받아들이는 일을 연습 중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싫지가 않네요. 늙는 게 싫지가 않다고요.

왜냐면 젊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일들이 괜찮아요.

시간 약속에 늦는 사람, 꾸물 거리는 아들녀석, 교활한 짓 하는 인간.

젊어서는 이런 걸 못 견뎌서 기필코 찾아 응징하고 관계를 끊었어요.

이제는 그럴 수도 있지, 그랬을 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네요.

그래서 뭘 자꾸 잊고, 눈이 불편하고, 몸의 일부를 잘 못 쓰는 노구가 되었는데

괜찮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야채를 냉동실에 넣으면 비명이 울리는 그런 가전제품을 사야겠어요.

자기를 제 자리에 안 놓으면 쌍욕을 하는 전화기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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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시보
  • |
  • 2013-01-24 11:30
답댓글

휘슬러 냄비 시커멓게 태워 먹은 사람 여기 있네요!

AS보내니 닦을 수 없다고 ㅠㅜ

불 안 난 것을 감사하고 살아야죠.

저는 전기렌지는 답답하더라구요.

정신 차라는 것 보다 전기렌지에 길들여지는 것이 빠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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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혁이맘
  • |
  • 2013-01-23 09:36
답댓글

늙는 게 싫지가 않다는 말씀이 저는 살짝 공감이 되네요.^^

전 제가 부족해서 다행이다.....하는 생각을 해요.

제 성격상 제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난체를 하고 살았을까 싶어서요.^^;

또 나이가 들어 조금씩 철이 드니 또 얼마나 다행인가 하기도 하구요.

어제 오래간만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었어요.

20대엔 서른이 되면 뭔가 삶의 실마리도 보이고 조금은 안정적이지 않을까 꿈꾸던 생각이 났어요.

작가가 누군진 지금 생각이 나지 않지만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글도 생각났어요.

서른이 되고도 불안한 삶에 또 한참을 방황했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가 나혁이를 낳고 그냥 아이만 보고 달려가자고 생각했는데 이제 곧 마흔이예요.

이제보니 마흔도 별거 아니예요.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죽을때까지 방황할거 같아요.^^;

늘 부족하고, 늘 모자란다는것만 알아간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인생이어요.

그래도 늘 부족하다고 채찍질해주는 신랑 만난걸 복으로 알고 살아야겠어요.

글구 야채를 얼려도 대수롭지않을만큼 박사님은 멋지게 세월을 보내시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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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록사과
  • |
  • 2013-01-22 23:16
답댓글

ㅎㅎ 저는 그날 샘 강연 ,, 그 생각만 하다가 둘째 유치원가방을 현관문에 놔두고 제 가방만 챙겨 나왔답니다..

셔틀은 오는데 애 등짝 텅 비어선 .. 

평소 같으면 제가 갖다주는데 그날은 저도 시간이 없어 염치불구하고 기다리게 했답니다.ㅠㅠ

 

강연 정말 잘 들었어요 ^^ 감사합니다.  글 재주가 없어 여기 살며시 끼워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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