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하루는 맘 먹고 찬 준비를 합니다.
매일 매일 반찬을 새로 해먹을 수는 없으니 미리 뭔가 여러 번 해먹을 것을
마련해놓으면 부엌 노동을 줄이니까요.
어제는 냉채를 해먹을 준비를 해놨어요.
겨자소스만 새콤 달콤 해놓으면 그때 그때 이것저것 섞어먹으면 됩니다.
(연겨자 1큰술, 간장 2큰술, 식초4큰술, 설탕3큰술, 레몬즙1큰술, 마늘 1큰술, 소금1작은술,
하루 전 만들어 놔야 마늘의 매운 맛이 죽습니다)
오이, 당근, 미나리, 피망 때로는 머리 따서 데쳐놓은 콩나물 등 준비내놉니다.
여기에 오징어나 새우를 데쳐 섞어 먹든가,
아니면 믿기지 않겠지만 돼지고기 수육이랑 이 야채랑 냉채소스에 먹어도 좋습니다.
양파채, 깻잎채, 피망채, 그때 그때 눈에 띄는 재료랑 드세요.
저는 야채 준비 잘 해놓고 어쨋는 줄 아세요? 냉동실에 집어넣어 꽁꽁 얼렸더군요.
얼었다 녹은 채소를 어찌 먹습니까? 애쓰고 칼질해서 다 버렸네요.
깜박 잊는 증세가 극에 달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는 통장 새로 만들면 안 쓰는 가방에서 나오고,
양말을 신고 한번 더 신어야지 벗어논 채 새걸 꺼내서 수북히 양말이 쌓입니다.
비슷한 옷이 있는데 또 사서 검정색 터틀넥이 3벌. 심지어 같은 상표도 있네요.
여기저기에 이멜 보낼 일이 있는데 안 보낸 줄 알고 놀래서 열어보니 이미 보냈습니다.
또 썼으면 어쩔 뻔 했나.....
이제는 받아들여야죠. 내 머리가 한계에 달해 기능이 쇠한 걸 탓해 무엇 하리.
타이머에 의존에서 다 스케줄 저장해놨습니다.
재택이 늘어서 집에서 인터넷 접속해 처리하는 일이 많아서 잊기가 더 쉽습니다.
가스렌지 대신 전기 렌지로 부억일 합니다. 시간 되면 알아서 꺼지도록 해놨어요.
자꾸 자기 자신을 탓하면 뭐합니까? 실수 덜 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해야지.
노안이 심해져서 가까운 게 잘 안 보입니다. 눈이 무척 피로한데 그려러니 합니다.
받아들이는 일을 연습 중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싫지가 않네요. 늙는 게 싫지가 않다고요.
왜냐면 젊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일들이 괜찮아요.
시간 약속에 늦는 사람, 꾸물 거리는 아들녀석, 교활한 짓 하는 인간.
젊어서는 이런 걸 못 견뎌서 기필코 찾아 응징하고 관계를 끊었어요.
이제는 그럴 수도 있지, 그랬을 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네요.
그래서 뭘 자꾸 잊고, 눈이 불편하고, 몸의 일부를 잘 못 쓰는 노구가 되었는데
괜찮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야채를 냉동실에 넣으면 비명이 울리는 그런 가전제품을 사야겠어요.
자기를 제 자리에 안 놓으면 쌍욕을 하는 전화기 없나?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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