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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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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가 쏟아지는 집

  • 홍박샘
  • |
  • 2013-07-05
18

제 엄마 흉 좀 보려고요. 이 노인네는 뭘 자꾸 흘립니다.

밥을 드시고 난 식탁 아래를 보면 떨어뜨린 부스레기가 두 살짜리 애기가 한 짓 같습니다.

깔끔한 저는 아주 질색을 하지요. 막 잔소리를 하면서 줍거가 닦습니다.

"난 어려서부터 여적 그래. 원래 뭘 잘 흘려." 엄마는 까딱도 않습니다.

"누구나 흘려. 흘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줍지 않는 게 문제지." 제가 응수합니다.

 

그렇다고 엄마가 위생관념이 없냐, 그건 아닌 증거가 빨래를 기가 막히게 하십니다.

색깔 별로 구분하고 면 옷은 반드시 삶고, 손 빨래 할 거 골라 주무르고.

수건은 흰색 아니면 안 쓰시는데 모두 백옥처럼 흽니다.

세탁실에 수도꼭지 위치를 조절하고 앉는 의자를 묘한 걸 맞춰다 놓고

언제라도 기계 빨래 손빨래를 쉬이 할 수 있게 만반의 시설을 갖춰논 할머니입니다.

게다가 다림질 실력은 세탁소 부럽지 않아요. 거기까지는 참 좋은데...청소는 쩝.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데 안 치울 수는 없어 가끔 제가 집안을 치워드립니다.

저는 가스렌지 더러운 걸 못 참아요. 요리 후 늘 닦아서 새 것처럼 반짝입니다.

근래에는 전기를 주로 쓰는데 분해해 닦을 필요 없어 너무 너무 좋아요.

엄마네 가스렌지는 겉 판만 쓰윽 문질러 닦아 분명 새 것임에도 형편없습디다.

 

그 눔의 걸 분해해서 닦는데 죽을 뻔 했시유. 오물이 낀 거나 탄 흔적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틈틈히 갈라진 곳마다 깨가 나오대요. 음식 참깨 말입니다.

과도로 밀어내다, 이쑤시개로 끄집어 내다가 궁금하더라고요.

"엄마 도대체 부억에서 뭔 일이 있었던 게여? 깨 공장을 차렸남?"

어렵사리 구한 참깨를 씻어서 집에서 볶았는데 여러 차례 연이어 볶았다네요.

한꺼번에 볶아서 세 자식 나눠주시려고 치른 거사였는데

그러다가 깨 중에 틘 놈도 있고 또 살짝 엎으기도 했고 그런 사연이겠지요.

 

시작한 김에 대청소로 일이 번져 집을 치우는데 부억과 먼~ 지역에서도 깨가 나옵디다.

마루 바닥 틈에서도, 소파 밑에서도 하다못해 화분에서도 몇 알캥이 씩 나와요.

아마 앞치마에 깨를 묻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집안 구석구석 뿌려논 모양입니다.

저는 발바닥에 뭐가 밟히거나 먼지가 스윽 묻는 걸 병적으로 싫어해요.

혈액순환 문제로 발이 시려운 엄마는 늘 양말을 신고 계셔서 그런 데 둔합니다.

 

잔소리를 더 쎄게 할라다가 참았습니다.

얼마 전 구순 시어머니가 밥 한 술 뜨시고 허리 굽혀 밥풀 줍던 모습이 떠올라서요.

움직임이 둔해져서 뭘 자꾸 흘리시니 어머님 딸, 시누님이 자꾸 잔소리 하신 모양이어요.

아무리 내 잔소리에도 까딱 않는 우리 엄마와 달리 심약한 어머니는 자꾸 밥풀을 줍습니다.

누구 집에 얹혀사는 것도 아니고 당신 집 당당하게 누리며 살면서도 말이죠.

밥 한 술 뜨고 허리 굽히고, 또 한술 뜨고 걸레질 하던 어머님 모습이 안쓰러웠어요.

제 잔소리가 계속 되면 혹시 우리 엄마도 그리 될까봐 참았습니다.

 

반짝반짝 청소해놓은 마루에, 앗 울엄마 참외씨 세 알 떨어뜨려놓았네요.

아유, 정말...."에이 용서해 준다" 라고 했더니 "내 집인데 뭐 어때?" 까딱도 않습니다.

그렇게 당당하게 늙으시라요, 오마니..

이상 이런 사연으로 제목이 "깨가 쏟아지는 집"이었습니다.

 

 

난 이제 깨 안먹을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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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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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kcarrot
  • |
  • 2013-07-08 09:52
답댓글

제목은 재미날거 같은데 왠지 마음이 허전하네요....

저희 엄마도 흘리시는데....

자의와 무관하게 노력해도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는 현실...

그래도 엄마는 엄마예요...

엄마들의 엄마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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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박샘
  • |
  • 2013-07-08 17:43
엄마 흉을 본다고 하지만 노인여성에 대한 안스러움이어요.
우리독 그리 늙겠지. 우린 잔소리해 줄 딸도 없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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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정귀요미
  • |
  • 2013-07-08 00:45
답댓글

저도 처음에 깨가 쏟아지는 집이라 해서 얼마나 깨가 쏟아지길래 하며 금슬좋은 쑥쑥맘님이 올리신 글인줄 알았어요. 박사님 글이었더군요. 민정이가 집에 있기도 하고 핸폰으로 보건 패드로 보건 긴 글은 꼼꼼히 봐야하는 성격 때문에 이제서야 글을 읽었어요. 첫번째 문단을 읽으면서 맘이 참 아프네요. ㅠ.ㅠ

저희 시댁 할머니가 올해 구순이신데 정말 깔끔하셨거든요. 제가 결혼하기전 팔순때만해도 어찌나 깔끔하신지 놀랬거든요. 그런데 요즘 몇년전부터 뭘 흘리고 다닌다고 본인 따님들, 시고모님들께 잔소리를 들으세요.

그 고모님들도 넘넘 맘이 아프셨을 거에요. 그렇게 깔끔하신 분인데 자꾸만 흘리시고 다니시고 아프다고 하시니 ...

저희 친정 엄마도 젊었을 때는 깔끔하셨는데 요즘은 나이가 드셨는지 집안이 더러운게 보이더라구요.

딸만이 그게 보이나 봅니다. 깔끔한 집으로 이사를 가셨으면 하는데 정든 집이라 옮기지도 못하니 집안을 치워도 티가 안나더라구요. 저희 친정엄마도 올해 70이신데 예전에 그렇게 부지런하시고 일벌이는 거 좋아하시고 손님들 초대해서 먹이는 거 좋아하셨는데 자꾸만 귀찮다는 얘기를 자주 하세요.

박사님 어머님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어머니들의 얘기인거 같아 오늘 저녁은 참 친정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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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박샘
  • |
  • 2013-07-08 08:28
우리 엄마는 젊어서도 깔끔하지 않으셨어요.
남들 시장갈 때 땅 사러 가고 남들 빨래할 때 건물 지은 사람이어요.
집안 살림은 도우미 할머니가 오시거나 밥은 우리끼리 대충 때운 적도 있었어요.
대구 등지에서 직장생활하시던 아버지가 오시면 좀 살림이 나아졌지요.
그 와중에도 장 담그고 간식 만들어주시던 우리 엄마는 정말 수퍼우먼.
대신 집을 깔끔히 꾸미고 화분 가꾸는 우아한 엄마는 제 기억에 없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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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신
  • |
  • 2013-07-05 23:30
답댓글

잔소리 하는 딸도 그렇지만, 당당한 엄마의 모습도 보기 좋아요^^

당당하게 흘리고 사시는 어머니께서,

위풍당당 깨를 볶으셨을 모습을 생각하니 제가 왠지 흐뭇?!

 

딸이 집도 깨~~끗이 치워주니 엄마는 더 흐뭇~~진짜 좋아하실것 같어요^^

투덜투덜 하셔도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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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박샘
  • |
  • 2013-07-06 08:46
일년에 두 세번 쯤 청소해드리면서 부리는 위세여요.
어제는 엄마가 식탁 밑에 앉더니 "잔소리 나오기 전에 주워야지," 하시네요.
교육 효과가 나오는 건가했더니 깔끌한 사위가 옆에 있어서 그랬나봐요.
어제 마누라 놀고먹는 처가에 왔거든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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