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희안한 일입니다....
평소 소설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읽은 책들은 모두 일본작가의 소설...
물론 나와 무라카미같은 스타일은 맞지 않지만....(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올 해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 모두 일본 소설이라는....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달팽이 식당,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모두 하나같이 극적인 반전도 크게 없고... 그냥 자연스럽게 흐르듯이 전개되는 이야기...
평소 멍하니 했던 잡다한 생각의 묘사들..
평소 영화나 독서에 있어 긴장보다는 심리적 안정을 추구하는 편이어서인지...
편안하게 읽으면서도
뭔가 자꾸 가슴에 여운이 남는 그런 이야기들이 아마 저하고 기호가 맞아 떨어졌나 봅니다.
얼마전 영풍문고에 들어갔다가 표지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눈길이 갔던 또 다른 일본작가의 소설
오쿠다 히데오의 <소문의 여자>...

이런... 표지 디자인 뿐 아니라... 표지의 카피를 읽어보니 완전 내 스타일이라는....
이것저것 재지 않고 바로 구입 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1/3이상을 거침없이 읽어내려가게 했던 소설..
나미야보다는 그렇지 않지만 그래도 꽤 글밥이 많은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데 이틀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소문의 여자... 미유키...
미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두툼한 입술,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로...
진한 살내음을 풍기며 사내들을 쥐락펴락하는 성숙한 마력의 여성...
소문의 여자는 장편이면서도 마치 열 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듯
10가지 에피소드가 시간 순으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 안에서는 각각 주인공이 모두 다 다르지만...
미유키에 대한 소문을 열거하고 있지요.
불우한 가정환경, 전문대에 입학하면서 섹쉬한 여성으로 변신...
클럽 호스티스로 일했다더라..
중고차 매장 사장의 세컨드라더라.. 육십이 넘은 노친네의 후처로 들어간다더라
지금까지 돈 많은 애인을 후린 후 돈을 뜯어내고 결국 모두 살해했다더라...
모두다 지방 소도시 내에 퍼져 흐르는 카더라 통신들....

작가는 각각의 에피소드 내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소소한 악행을 무척이나 쪼잔하게 그리고 냉소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혈연 지연 등등으로 청탁을 받아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공무원..
모두들 그러하니 나의 요런 소소한 부정행위 쯤이여 악행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무뎌진 사람들...
상품의 흠집을 잡아 보상금을 뜯어내려는 음흉한 블렉 컨슈머들...
그리고 혼자서는 도저히 행동할 수 없으니 떼로 몰려가는 습성..
불합리하다고 느끼지만, 자기 혼자 나서다간 눈 밖에 날 것 같으니
순하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등을 떠미는 집단 이기주의...

첫 번째 장, 중고차 판매장의 남자 주인공을 묘사하는 도입부에서... 작가의 문장.. 깜짝 놀라 버렸다는....
아니.. 이 사람 너무나 시니컬하잖아?
일부러 등록금을 내가며 삼류라는 낙인을 찍히기 위해 입학하는 대학....
미디어에서 쉴새 없이 불황이라 보도하는 바람에 떨거지 회사지만 비정규직이 아닌 것만으로
안심하는 부모...
이거... 정말 하나 같이 맞는 이야기지만, 왜이렇게 잔인한 건지....
정말 두루뭉술하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이렇게 직설화법으로 날려주는 돌직구를 던지며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히데오...
"그 여자, 틀림없이 남자 엄청 밝힐 걸?"
일본의 어느 지방 도시, 미유키라는 여자를 둘러싼 은밀한 소문이 밤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미유키는 불우한 집안에서 태어나 조용하고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대학에 들어갈 부렵부터 느닷없이 색기를 발휘해 남자를 쥐락펴락하는 팜므파탈로 변신한다.
중고차 판매점 사무직으로 시작해 마작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을 유혹하고,
건축회사 사장의 애인이 되었나 싶더니 곧이어 예비신부들이 다니는 요리교실에 나타난다.
아버지뻘 되는 남자의 후처로 들어앉다
남편의 사망 보험금을 받아서 순식간에 고급 클럽 인기마담으로 변신..
절의 젊은 주지를 유혹해 관계를 맺고 신도를 조정하는 마성의 여인...
미유키를 둘러싼 다양한 소문이 은밀하게 퍼지는 가운데,
그녀와 관련한 남자들이 몇 년에 걸쳐 연달아 죽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남자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가운데, 그녀의 행적은 묘연해 지고...
사실... 미유키는 소설의 주인공이자 소문의 여자이긴 하지만
항상 각 에피소드의 사건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는 주변인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녀가 저지르는 악행은 참 심플하고 대범해 보이는데,
각 에피소드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들의
찌질하고도 병맛같은 소행들은 참 한심해 보이도록 대비해 놓았다는...
우리 주변에 정말 많이 널려 있는
잘못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이정도 쯤은 괜찮잖아? 하는 악행들..
구직활동은 전혀 하지 않고 파칭코에서 시간을 룰루랄라 보내면서
거짓 구직활동서를 제출하여 실업급여를 받는 이십대...
하우스푸어로 몰린 부모에게 자기는
유럽여행 가야 하니 자꾸 나한테 돈 달라고 하지 말라는 이기적인 자식들...
모두... 우리 주변의 이야기가 아닐지...
하지만 솔직히... 응원하고 싶은 팜므파탈? 거기까지는 아니었던 듯 합니다.
그녀 역시 그냥 돈 액수가 크고 심플하게 범죄를 저질렀을 뿐,
다른 사람(그것도 사위)와 관계를 맺은 후 임신.. 늙은 부자 남편을 속이고...
그것도 모잘라 이용가치가 없으면 살해하는 그녀의 행동을 응원하기에는...
뭐 내가 변태도 아니고...
단지, 왜 그녀는 상황에 안주하지 않았을까...
편안해진 삶에 안주하고 그냥 눌러 편안히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만약 그냥 눌러 앉았다면... 그녀는 천한 여자가 되었겠지요.
그렇지 않았기에... 살짝은 당당하고 도도해 보이는 소문의 여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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