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와~ㅇ, 잉~잉’
아파트 통로가 떠나갑니다. 아래층집 네 살배기 아들내미가 뭘 잘못했는지 또 쫓겨났나보네요.
‘할머니한테 다 이를 거야~!’
울면서도 든든한 ‘빽’이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엄마를 협박합니다. 후훗^^
오래 전 기억이 문득 떠오르네요^^
둘째 아이가 다섯 살 때였어요.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 1년간 집근처 체육센터에 보냈지요. 마지막 시간은 수영강습이었습니다. 하루는 시간이 나서 아이가 잘 하고 있는지 보려고 체육센터로 갔습니다. 많은 엄마들이 수영장에 마련된 참관실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더군요.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선생님의 지도를 따라 팔도 내젓고 물장구도 치는데 아무리 봐도 우리 아이는 보이질 않았습니다. 참관실 유리창에 코를 바짝 갖다 대고 한참을 찾았는데, 이런! 아이가 물속이 아닌 수영장 한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게 아니겠어요? 어디가 아픈가? 운동하다 다쳤나? 온갖 걱정이 되더군요.
배가 아파서 수영을 못했다네요.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수영은 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물이 무서워서 들어가질 못한 거였어요. 내일은 꼭 수영을 하겠노라고 약속을 했지만 결과는 번번이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가 물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더군요.
‘수영하는 게 그렇게 무섭고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차라리 엄마와 약속을 하지 마.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건데... ’
아이도 자신에게 화가 나는 듯,
‘아니요. 내일은 꼭 할 거예요!’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아이에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아들은 키우고 싶지 않으니, 이 집에서 나가!’
엄포 아닌 엄포를 놓았지요.
아이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며, 내일은 반드시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요. 그런데 방으로 들어간 아이는 자기가 늘 들고 다니던 작은 배낭에 자신의 옷가지와 장난감을 주섬주섬 챙겨 넣었습니다. 아주 담담하게!
‘이런! 이게 아닌데??!!’
배낭을 메고 캡까지 눌러쓴 후, 아이는 조용히 집을 나갔습니다.
‘......’
잠시 후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왜?’ 라고 물었죠.
.
‘밖에 비가 와요.’
.
아이는 우산을 챙기더니 다시 나갔습니다.
@@@@@@
비는 후둑후둑 내리고, 어스름한 저녁 무렵. 비가 와서인지 밖은 더 일찍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가슴 속에도 후둑후둑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심장도 함께 떨어졌구요. 엄마의 위신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도 시간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잠시 후면 퇴근해서 들어 올 남편을 떠올리니 앞이 깜깜했습니다. ‘멘붕’이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엌 뒤 베란다 창으로 내다보니 보도를 따라 걷던 아이는 놀이터에 다다르자, 우산을 받쳐 쓴 채 벤치에 얌전히 앉더군요. 그나마 다행이었죠! 30분은 족히 흘렀을 겁니다. 아이는 꿈쩍도 않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자리에 여전히 앉아 있었습니다. 들어올 낌새는 전혀 없었고요ㅠㅠ
‘휴우~!’ 한숨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난감한 상황을 어찌 수습해야 할 지…….
바로 그 때,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이라고나 할까요. 나의 구세주. 바로 옆 동의 청소부 아주머니가 나타났습니다. 평소 인사를 잘 하는 우리아이를 예뻐해 주시던 아주머니였는데, 퇴근길에 아이를 보게 된 것이죠. 아이는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가출(?) 스토리였겠지요. 아주머니는 아이를 잘 타일러 집으로 데려오셨고, 초보엄마의 아이 가출기는 이렇게 가까스로 막을 내렸습니다. 덕분에 엄마의 위신과 체면은 유지되었고요ㅜㅜ
그 후로 다시는 아이들에게 ‘집에서 나가’라는 말은 꺼내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바로, 수습하지 못할 상황으로 아이를 몰고 가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도를 닦는 심정으로 참아야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요. 아이들 마다 색깔도 다르고, 레퍼토리도 다양하고, 같은 일에도 반응이 제각각이니, 간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아이들과 겪는 새로운 경험은 때때로 초보엄마를 시행착오라는 시험대에 오르게 합니다. 그야말로 ‘대략난감’이죠.
아이들에게 엄마의 위신을 지킨다는 건 정말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더더욱 조심스러우니, 이 무슨 시집살이인지요?!!
우리 아이가 그 때 무슨 생각으로 짐을 쌌는지는 지금도 궁금합니다.
‘엄마에 대한 배신감?’ 아니면,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이집에서 살 자격이 없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수영을 곧잘 하는 아들을 보면서 그 때는 그게 뭐 그리 큰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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