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이셨던 친정아버지는 몹시 깐깐하고 정확한 분이셨습니다. 단 한 치의 빈틈도 오차도 없는 아버지의 교육을 받으며 때로는 답답하고 숨도 쉴 수 없었지만 어려서는 그게 당연하고 내 인생인 듯싶었습니다.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온순하게 따랐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나 같은 딸은 세상에 없을 듯합니다^^ 부모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랐으니 얼마나 수월하셨을까요?ㅎㅎ
물론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요.
친정아버지께서 수시로 하셨던 말씀은 ‘You can do it!' 이셨고 나 자신에게는 ’I can do it!'을 수시로 되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아버지의 기대와 믿음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말수는 적으셨지만 아버지의 나에 대한 믿음엔 한조각의 의심도 없었으니까요. 대단한 카리스마입니다.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다고 다 먹히는 것은 아닙니다.
조용히 쳐다만 보셔도 눈빛에 제압당하고 그 분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부담이 충분히 느껴졌으니까요. 어쩌다 한 번 웃어주시는 미소는 한없는 신뢰의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어려서 내 별명은 ‘아버지 딸’입니다. 요즘처럼 유별난 ‘딸바보’는 아니어도 든든한 후견인의 자리를 차지하셨던 엄한 아버지는 내가 바로 서야 하는 이유이고 정신적 지주임이 분명했습니다.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수학을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내가 속했던 반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학이라면 덜래머리를 흔들 정도였습니다. 수학과목을 먼나라 얘기쯤으로 치부하고 그 시간에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편이 나을 거라는 친구들도 있었으니까요.
고등학교 시절, 한 학년이 총 14반이었고 두 분의 수학선생님이 7반씩 나누어 지도하셨습니다. 수학 선생님 두 분은 서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으로 당신들이 맡은 반들의 반평균 성적에 예민해 하셨지요. 당시 우리 반 수학을 담당하셨던 여선생님은 마침 고등학교 동문 선배셨고 후배들 지도에 더욱 애착을 갖고 수학의 세계로 우리들을 입문시키려 무던히도 애쓰셨습니다.
어느 날, 선배이신 수학 선생님이 비장한 각오로 교실에 들어오셨습니다. 내가 이제부터 너희들에게 마술을 걸겠다고 하시더군요.
선생님께서 개발하신 주술(?)은 바로 ‘나는 할 수 있다!’였습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수학을 좋아한다’를 눈을 감고 세 번씩 큰 소리로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엔 웬 뜬금없는 주문? 아이들 모두가 히죽히죽 웃었지만 진지한 선생님의 표정과 요청에 못 이겨 모두 눈을 감고 세 번씩 외쳤습니다. 수학 수업의 마무리 또한 세 번의 주문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얼마간의 어색함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수학은 좋아하는 과목이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주문은 자연스럽게 수업의 일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그리고 2학기가 되면서 주문을 외웠던 7개 반들의 수학 반평균 점수는 다른 7개 학급들과는 차이가 나기 시작했고, 선생님의 주술은 학년이 올라가서도 계속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히죽거림도 장난도 아닌 진지한 ‘자기예언’에 우리 모두는 세뇌가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주문을 외운 후 학생들의 태도는 사뭇 진지해 지고 수업에 참여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있었으니 수학선생님의 주술작전은 성공을 거두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시작은 미미 했지만 결과는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으니까요.
아마도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을 실현한 매우 긍정적인 실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친정아버지의 ‘You can do it!’과 ‘I can do it!’이 익숙했던 나에게 수학시간의 ‘나는 할 수 있다’는 작은 실천이었으며 다른 친구들은 알 수 없는 울림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 말씀의 함축적 의미를 되새깁니다.
긍정의 힘과 끊임없는 격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심어 주고 싶었던 그 분의 깊은 뜻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과연 나는 아버지의 깊은 뜻에, 그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랑스러운 딸이었을까요?
말로는 부족했던, 담담하게 지켜보시며 마음 졸이셨을 아버지의 그 마음을 엄마가 된 지금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됩니다.
세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고. 너희들이 내 아이들이라서 감사하다고.’
‘너희들은 엄마의 기쁨, 믿음 그리고 희망이라고!’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는 엄마가 했던 짧은 말의 참뜻을 되새기며 헤아리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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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게시물: http://www.suksuk.co.kr/momboard/read.php?table=BEC_001&number=63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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