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존경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시다.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은 아니나 딸아이가 제네바에서 바이올린을 배운 인연으로 만나게 된 분인데 내게 ‘선생’의 직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신 분이다. 언제던가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 바이올리니스트는 직업(profession)이 아니라고, 천직(vocation)이라고 하셨던 것은 훌륭한 학자는 못되어도 좋은 선생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내게 큰 울림이 되어 남아 있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육십을 바라보는 마에스트로, 바이올린의 대가가 여덟 살 아이에게 바이올린이 아닌 음악을, 인생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려 비지땀을 흘리시는 모습은 늘 감동적이었다. 아이가 레슨 받는 방에 따라 들어가 같이 듣는 수업이 그래서 내게는 귀동냥을 넘어 인생의 선배에게 삶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제 오랜만에 ‘코러스’(원제: Les Choristes -합창단원들)라는 프랑스영화를 다시 보았다. 영화는 성공한 지휘자인 모렁쥬가 어머니의 부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어릴 적 친구를 만나고 그 시절을 회상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프랑스, 형편이 어려워 기숙사 학교에 맡겨진 주인공 모렁쥬는 규칙과 체벌만이 존재하는 그 곳에서 절망과 외로움을 안고 반항적으로 커간다. 새로 온 사감인 마티유 선생님은 노래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모렁쥬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가 자신의 재능을 키우고 더 큰 세계로 발돋움 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주선하며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도와준다. 선생님 자신 또한 노래를 배우며 조금씩 마음을 여는 아이들을 통해 자신을 인생 실패자라고 생각하던 자괴감에서 조금씩 벗어나던 중이었는데 뜻밖의 방화사건이 발생하고 그로인해 교장과의 마찰을 빚어 졸지에 파면 당한다. 정들었던 학생들과 작별인사 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을 씁쓸해하며 학교를 나오는 순간, 창문을 통해 수많은 종이비행기가 날아 선생님 발치에 떨어진다. 거기에는 아이들의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글들이 적혀 있었고 그는 보람과 행복을 느끼면서 학교를 떠난다. 키가 작아 창틀 밖으로 가까스로 손만 내밀어 인사하는 아이들, 고아인 뻬삐노를 거두어 같이 버스에 오르는 선생님, 모두 정겹고 따뜻하다.
모렁쥬에게 마티유 선생님은 인생 최고의 기회를 주신,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생각지 못했을 전환점을 마련해 주신 분이다.
모름지기 선생은 그런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말 그대로 선생은 삶을 먼 저 산 사람이므로 인생의 선배로서 제자의 잠재된 가능성을 발견해 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요, 올바른 길을 보여주고 삶의 폭을 넓혀주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을 믿게 하고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가르쳐주는 사람, 설혹 현실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람... 이런 점에서 부모도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작금의 대한항공 사태를 보면서, 자식을 잘못 가르쳐서 죄송하다고 딸을 대신하여 고개 숙여 사죄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부모의 자리를 돌아보게 된다. 능력을 믿고 성장하도록 밀어주는 것은 좋지만 자칫 공부만 잘하면 다 되는 것 같은 세상의 그릇된 잣대로 바르지 못한 길을 알려주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그저 덮어주며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전에 놀이공원에서 튜울립 목을 꺾으며 놀던 아이를 제지하니 옆에 있던 엄마가 오히려 자기 아이 나무란다고 화를 내던 기억이 난다.
선생의 길이 천직이라면 부모의 자리는 소명이 아닐까, 어쩌다가 감사하게도 내게서 태어난 자식을 위하여 그 자식이 ‘난사람’ 만이 아닌 ‘된사람’ 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키우는 책임을 지는 자리... 생각할 것이 많은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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