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갑자기 물어봅니다.
"엄마, 패러다임이 뭐야?"
"패러다임? 어 그러니까.......어떤 시대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지식이나 생각을 이루는.....어,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환경같은건데......."
이걸 어떻게 7살짜리에게 설명해야 하지? 좀 더 쉽게 음.......
"그러니까 예를 들면 고려 시대에는 불교국가이고 왕이 다스리던 나라였지.
그래서 불교적 사상이 널리 퍼져있고, 왕이 최고의 자리에 있고, 밑에 귀족같은 사람이 있고,
평민, 천민이 있는 계급사회여서 승려의 사회적 지위가 아주 높은 편이었고, 계급사회가 당연시 되던 시대였지.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중시되던 시대라 남자는 여자보다 더 귀하게 여겨져서 남존여비 사상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사회였어.....
근데 지금은......"
'근데 지금은 안 그런가? 아직도 여자들의 지위는 그리 높은것 같지 않아.
친정보다 시댁이 우선 순위가 되고, 맞벌이를 해도 집안일은 여자 차지이고.....
글구 사상, 계급사회, 유교, 남존여비 이런말을 얘가 알아 들을까?'
혼자 머리속으로 생각하다 보니 대답이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이럴 때 스맛폰이야 말로 구세주입니다. 얼렁 검색 들어갑니다.^^
'뭐야, 한국말이 왜 이리 어려워! 다른 사전을 보자.'
"아들 읽어도 뭔 말인지 도통 모르겠지?"
"응."
"엄마가 좀 더 쉽게 설명해 주기 위해 고민을 좀 해볼께."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이지만 비단 오늘뿐만 아니라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합니다.
아이의 질문에 제깍제깍 정확하게 대답을 못 해 줄 때가 많습니다.
내 머리속에 대충 알고 있는 지식이라도
7살 녀석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쉽게 풀어서 설명할 수 없다면 난 그 단어를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닙니다.
대충 두리뭉실 무슨 뜻인지 안다고 생각하고 때로는 그 단어를 쓰기도 하지만
나는 견해, 사고, 지배, 이론적 틀, 개념, 집합체라는 뜻을 알고 있는 어른에게
이런 식의 설명을 하면서 대충 이해가 가시겠죠?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7살 녀석에게 아주 쉬운 말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난 그 단어를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쉽게 잘 설명해 주는 날(단어나 뜻)도 있습니다. 오공쥬가 아예 바보는 아녜요.^^'
하지만 아이와 함께 책이 읽어나가면서 부딪히는 현상이나 단어를
우리말로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아이가 아침에 질문한 패러다임의 뜻도 저녁때는 대충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나름대로 정리한 7살용 정의를 새로 만들었지만
시간차 늦은 대답에 아이는 시큰둥해 할 때도 많습니다.
아이와 영어로 대화하기를 포기한건 우리말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제 수준의 한계때문입니다.
아이와 요즘 씨름하고 있는 전기에 관한 책에는 전지를 병렬연결했을 때와 전구를 병렬연결했을때, 전지를 직렬연결하고 전구를 병렬연결했을 때, 또는 전선이 전구의 꼭지와 꼭지쇠 중에
꼭지에만 연결되었을때, 또는 전선이 꼭지와 꼭지쇠에 연결했을 때
어떤 전구가 불이 들어오는지, 어느 전구의 불빛이 더 밝은지,
전지는 어느 것이 더 빨리 소모되는지,
저항은 어느 것이 더 큰지 등의 문제를 푸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옴의 법칙대로 계산도 하고, 몇 w인지도 계산해 봅니다.
최대한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하려고 하다보니 오히려 버벅댑니다.
전기를 들어가기 전 빅뱅때도 그랬고, 명화를 할때도 제 빈약한 지식으로 한참을 헤맸습니다.
너 지금 뭐하고 있니? What are you doing now?
숙제는 했니? Did you do your homework?
라는 영어쯤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영어로 아이와 30분 이상 대화를 하다보면 더 이상 할 얘기도 없습니다.
그건 제가 처음 원어민과 대화를 나누면서 느꼈던 한계였습니다.
30분 뒤의 침묵은 언제나 서로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서로 관심있어 하는 주제로 깊이있게 30분 이상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의 지식과 그 지식을 표현하는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은
제 아이 공부의 큰 맥락입니다.
그래서 저는 30분 동안의 수다에 만족하지 않고,
30분 동안의 수다에 목숨걸지 않습니다.
쑥에 자주 올라오는 글중에 엄마가 영어가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하고,
아이와 영어로 대화를 하는 부모를 부러워합니다.
아이와 영어로 대화를 하는 부모는 저도 정말 굉장히 부럽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진지한 토론이 오가는 대화는 거의 드물다고 생각됩니다.
가벼운 일상대화는 단단한 지식이 뒷받침되는 아이라면 금방 따라잡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와 책을 읽습니다.
회화문이 아니더라도 그림책을 보면서 영어 어휘를 익히고, 문장을 익히고
과학책을 읽으면서 지식을 넓힙니다.
거의 2년간 단어시험만 보고 억지로 영어책을 읽었습니다.
지금 쉬운 기초회화문장을 공책에 쓰는데,
거의 다 읽을 줄 알고 해석해 주지 않아도 이해합니다.
이 문장이 입에 익으면 대화가 좀 더 수월해지겠지요.
아이와 영어로 대화 못 해주시는 분들 너무 좌절하지 마시고,
쑥쑥 프로젝트를 따라 같이 책읽고, 웤싯하며 단어도 익히고, 문장도 익히면
엄마 실력과 별개로 아이의 실력이 늘거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북클럽을 하면서 꾸준히 하는 것이 아이 실력에 얼마나 많은 보탬이 되는지
아시게 되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제 말이 얼마나 영향력을 끼칠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저의 이상과 비슷한 엄마가 있으면
서로 의지하며 같이 해나갔으면 하고 주위에서 찾았지만
아주 이상한 아줌마 취급을 받아서 결국 혼자 했었어요.
아이가 6살이 되면서 둘이서 도서관에서 죽치고 책만 읽었는데
아이가 고학년 책을 읽으니 그제서야 저에게 관심을 가지고
과외섭외가 줄을 잇더군요.^^;
그리곤 제 말에 누군가가 귀를 귀울여 주셨어요.^^
엄마가 아이와 영어로 대화해 주지 않고, 주구장창 각자 알아서 책만 읽었는데
아이가 성공(?)한다면 그때는 조금 더 많은 사람이 귀기울여 줄지 모르지만
아이가 성공(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해도 전 그땐 훌훌 털고 놀러만 다닐꺼예요.
우리가 꿈꾸는 성공은 세속의 그런 성공이 아니니까
과고를 나와서, 일류대를 나오던, 대기업에 들어가서 고액연봉을 받던
그게 진짜 성공한거 아니니까 말예요.
(근데 우리 아들이 그래줄 수 있을까? 과고, 일류대까지는 좀 바라기는 하는데....쩝쩝.^^)
아무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의 무식함을 또 떠벌립니다.
나 이제 패러다임이 뭔지도 모르는 애가 된거야.....ㅜ.,ㅜ
근데, 아들아, 패러다임 몰라도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노는데 아무 지장이 없으니
나중에 니가 알아서 배우면 안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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