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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17일 수요일]
오늘은 영어모임 있는 날.
항상 모임 전전날부터 혼자 끌어안은 스트레스에 잊은 적이 없었는데..아침에서야 '아차..오늘 모임이었지..'하고 생각날 만큼 나태해진건지..다른 곳에 정신을 빠트린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덧 시작하고 즐겁게 아이들과 놀다보면 '내가 왜 스트레스를 받았지..'하고 금새 풀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아이들의 시끌벅적 소리가 이젠 소음이 아니라 항상 주위에서 들려오던 주변음이려니..당연시 하며 수다를 떨다 오후 4시가 되어버렸다.
모임이 있는 날은 집도 엉망이라 치워야 하고..아이도 피곤하고 나도 긴장이 화악 풀어져서 대부분은 근처에서 잠깐 놀거나 집에서 쉬는 편인데 어제 다녀온 대학로 어느 소극장의 "아기 돼지 삼형제" 공연을 본 것이 한스러워서 하루를 더 넘기기 전에 좋은 곳에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다녀오면 다 늦은 저녁이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낮잠을 자지 못해 분명 안아달라..짜증낼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가기로 결심.
간송미술관에서 ?_blank"화훼영모전"(화(花)는 꽃, 훼(卉)는 풀, 영(翎)은 새의 깃털, 모(毛)는 짐승의 터럭을 이르는 데서 온 명칭. 화훼영모화는 그동안 산수화나 인물화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소품처럼 여겨져왔다.-따옴)이 열렸다.
오래된 그림..우리나라의 전통적 색채..더군다나 아이가 숨은그림처럼 꽃이나 벌레..동물을 찾으면서 보면 그저그런 전시회가 아닌 뜻깊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전시회일거란 확신이 들었다.
4호선 성신대입구 역에서 6번 출구로 나오라고 들었지만 가는데 얼마 걸리겠어..하고 택시를 탔더니..차는 막히고, 돈은 만원을 넘어서고..지하철로 30분이면 갈 곳을 50분이나 걸리니 숨이 막혔지만 피곤한데 지하철에서 빽빽거리며 겄게 하지 않아 다행이지.. 생각하고, 아이는 잠이 들어 낮잠을 대신 할 수 있으니 잘했어..싶고, 전시회 좋으면 되지 뭐..하고 스스로 위로했더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성북초등학교와 바로 붙어있는 간송미술관..
겉에서 느껴지는 미술관은 오래된 정원처럼..아니, 저녁이 다 되어서인가..약간 어두운 분위기며, 잘 가꾸어놓은 정원이 아니라 강하게 자란 듯한 진한 인상을 풍겼다.
여기저기 눈에 띄는 석탑이나 석가모니상..석재조각(사자나..호랑이) 등이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느낌까지 들게 했다.
어쩌면 조선시대의 많이 알려지지 않은 그림들을 보러가는 길이서서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관세음보살..하는거야 저거"하면서 석가모니상을 가리킨다. 탑모양으로 된 석재를 보고는 "엄마,저건 한빛탑이야?"하고 물어본다.
현지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난 또 난정이를 들먹거렸다.
"현지야 오늘 보는 그림들은 아주아주 옛날사람들이 그린 그림이야. 난정이가 살던 시대의 그림도 있고 난정이 할머니가 살던 시대의 그림도 있어. 그러니까 오래된 그림이거든. 근데 그림 속에 꽃도 있고..벌레도 있고..동물도 있을거야. 현지가 그거 찾아보면서 그림보면 정말 재미있을거야.."
초등학생과 같이 온 엄마. 아이도 처음엔 시쿤둥하는 것 같다가 하나하나 자세히 보더니 조금씩 신기하고 놀라는 눈치다. 엄마가 뭔가를 얘기해주며 설명을 해주니 그 모습이 부러웠다.
뭔가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아는 나이가 되어 이런 전시회에 같이 와서 비슷한 감동을 같이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늘한 느낌이 드는 분위기와는 달리 그림들은 하나같이 꽃과 동물..곤충들이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정혜옹주(1584~1638)가 그린 검정천에 수놓아진 "연당원앙"
처음에는 그림인가..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모두 수놓은 것이었다.
"현지야 이거 검정색 천에 바늘하고 실로 꼬매는 것처럼 해서 그린거야." 쉽게 풀어서 얘기해주다 보니 이렇게밖에 표현이 안되었지만..
전이암(1507~1566)의 봉황새 두마리가 자태를 뽑내며 긴 깃털을 떨구고 있는 "동명봉황"
현지가 나쁜물고기라며 인상을 남긴 심사정(1707~1769)의 물고기가 뛰어 오르며 해를 맞이하는 "어약영일"
원근법으로 표현해 놓칠 뻔했던 게까지 몇마리인지 찾아보면서 즐거워했던 장승업(1843~1897)의 "어해유행"과 어미닭이 뭇병아리를 불러먹이는 "계포군추"
이건 전시장에 들어오면서 보았던 수탉과 암탉과 병아리들이 있던 그림으로 달려가며 "엄마 이것도 똑같은거 그린거야"하며 알려주기도 한다.
정선(1676~1759)이 그린 많은 그림들은 가운데 유리안에 모아서 전시되고 있었는데 그림들이 너무 눈에들었다.
대부분 꽃과 곤충 또는 동물을 짝지어 그렸는데 어디에서 본 듯한 시골정취가 느껴지는 그림들이었다.
여뀌와 매미가있는 "홍료추선", 패랭이꽃과 호랑나비가 있는 "석죽호접", 꽈리와 수탉이있는 "등롱웅계", 외밭의 청개구리 "과전전계", 두꺼비와 가지가 있는 "하마가자", 몰래 수박 아랫부분을 갉아먹고 있는 쥐를 그린 "서과투서", 가을날 한가로운 고양이 "추일한묘"
단색이 아니라 서너가지의 색으로 은은하고 조화로운 자연을 담았는데 "어쩜 이리도 색이 예뻐..?"하고 아주 유심히 살펴보고 갔던 사람말처럼 정말 놀라웠다.
현지에게 이 많은 느낌을 전달해주기는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아래유리를 통해 자세하게 보면서 어디에 숨어잇는 뭐..무슨색 뭐..하면서 그림을 그냥 지나치지 않도록 해주었다.
그냥 지나치면 너무 아까우니까...
남계우(1811~1890)의 "호접" 몇작품들이 있었는데 나비가 진짜 나비보다 더 자세하고 날아오를 듯 선명했다.
여기서 감동이 남달랐던 작품 하나.
바로 사임당 신씨(1504~1551)의 작품들. 두작품 밖에는 보지 못했지만 내가 아는 사람의 그림이라도 만난 듯 그 그림을 보게 된 것을 감사했다. 수박과 개미취꽃이 있는 "서과자완", 가지와 뱀딸기가 있는 "가자지매"
도록을 하나 구입했지만 120여점의 작품 중 70여점밖에 없다고 해서 보니 내가 찜해놓은 것들은 많이 발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게 어디야..혹시 도록같은게 없으면 어쩌나..했는데 구할 수 있어서 기뻤다.
방명록에 현지의 한자이름도 남겼다. 벼루와..먹..붓을 알려주니 작은 기러기 모양의 하얀색을 가리키며 뭐냐고 묻는다. "이건 연적이야. 여기에 먹물을 담아놓고 글씨쓸 때 벼루에 부어서 쓰는거야" 방명록에는 직접 이름을 써볼 수 잇도록 해주었다.
비록 내가 손을 잡고 내가 쓰긴 했지만..
그리고 나중에 그림들을 보면서 "아까 먹물을 찍어서 붓으로 현지 이름썼지? 이 그림들도 대부분 아주 작은 붓으로 현지처럼 먹물을 찍어서 그림 그린거야" 얘기해주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어~~그렇구나"한다.
동물들의 털을 그린 그림들은 어쩜 그렇게 자세하고 꼼꼼하게 그릴 수 있었는지 놀라울 정도다.
"저기 보이는 동물 털 봐봐. 저거 붓으로 하나하나 다 그린거야.진짜 털같지?"
색이 어쩜 그리도 선명하고 예쁠까..
"이 색들 선명한 것 봐봐. 그림을 그린지 오래되서 찢어지고 낡았는대도 색들은 선명하고 예쁘다..그치?"
"엄마, 이리와봐. 여기도 찢어진 그림이 있어"
"어? 이것도 오래되서 찢어졌지..근데 찢어진게 꼭 벌레같아서 제비가 벌레 먹는 것 같은 그림이 됐네?(심사정 그림)"
"어 엄마 벌레가 두마리지.."
원숭이들이 좀 우스꽝스럽게 많이 그려져있는 그림을 보면서 한다는 말이 "우습다 히히"였다.
음료수가 먹고 싶다며 졸라대기에 그림에서 숨어있는 곤충이나 꽃이나 열매를 찾으면서 재미있게 보면 사주겠다고 하니 여기에는 나비가 있고 이건 메뚜기야..어쩌구 하면서 엄마에게 자신이 지금 열심히 뭔가를 찾으며 본다는 것을 알리려고 했다.
조용하게 옛작품들을 감상하는데 좀 어수선한건 아닌지..싶어 자제를 시켰지만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하기엔 좀 오색해서 눈치가 보이긴 했다.
"노란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라는 김홍도 그림이 눈에 띄었다.
서민적인 생활상을 그린 그림만 보아왔었는데 이렇게 고양이와 나비가 꽃과 어우러져 놀고 있는 그림을 보니 혹 이 그림은 수순한 시절에 그렸던 그림..?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너무 이쁘고 보송보송한 그림이어서 그렇게 오래된 그림같지도 않고 제목에서는 노란고양이라지만 귤빛의 달콤한 색이 산뜻하고 한번 쓰다듬으면 진짜 털이 만져질 것 같은 그림이었다.
모조그림을 한장에 만원씩 팔고 있는데 이 그림은 도록에도 나와있지 않아 한장 사갈까..하다 괜히 굴러다니게 할 것 같아 마음을 접었다.
현지는 견본을 훑어보더니 소나무가 삐죽삐죽있는 도깨비같은 그림이 제일 좋다며 그걸 사자고 한다.
정원을 한바뀌 둘러보았다.
줄기가 비틀비틀 꼬여서 우거진 나뭇가지들의 형상이 꼭 뿌리가 거꾸로 올라가 있는 듯한 나무도 있고 그림에서 보았던 구불구불한 소나무들이 줄기는 없이 땅속에서부터 가지를 여기저기 뻗어 나온 신기한 나무도 있고..꽃도 다양한 색을 내고 있었다. 뒷쪽으로 돌아오는 길은 낯선 숲속 오솔길을 아주 짧게 걸은 느낌이었다.
어떤 여자분이 "이런 곳엔 희귀한 꽃들도 많이 있을것 같아"하며 지나갔다.
한적하고 조용하게 들러보는데 언덕부분으로 올라갈 때쯤 아저씨가 못올라가게 했다. 둘러본 곳이라곤 눈에 보이는 곳 뿐이어서 꼭 오래된 그림속에 잠깐 들렀다 온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고요해지는 것 같이 편안했다.
미술관을 나올때 들어오던 할머니들이 "아이구..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네..공기맑고 조용하고.."하면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들어오셨다.
미술관을 나와서도 음료수 중독에 걸렸는지(음료수는 거의 안사주는 편인데도..)슈펴만 찾아가 자판기가 보이니 "엄마,음료수다!!"하며 눈이 빛난다.
음료수 하나 뽑아주고 손잡고,이 근처에는 어떤 상가들이 많이 있나..저기 집들은 왜 저렇게 빼곡하지..높은곳에 집이 있네..길은 넓고 깨끗하네..보도블럭에 사슴모양도 있고 거북이도 있네..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1초에 한발씩 천천히 걸어가니 성신대입구 지하철역까지 20분정도가 걸렸다.
도록을 보면 봤던 그림이 나오니까 더 좋은 모양이다.
그리고 스스로 넘기면서 나에게 얘기해줄 수 있기도 해서 신나는 것 같고.
택시안에서 3~40분잔게 효력이 있었는지 짜증도 안내고 더군다나 음료수까지 하나먹었으니기운이 펄펄 나는 모양이다.
돌아오는 길까지 기분이 좋았던 가슴이 뿌듯한 미술전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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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글 올리는 2002년 2월 18일..
간송미술관에 다녀온 후 도서출판 나무숲에서 나오는 어린이미술관 시리즈 몇권을 구입했다.
그 중 "풀과 벌레를 즐겨 그린 화가 신사임당"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미술관에 다녀온지 몇개월이 지났음에도 그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딩동댕유치원을 보다가 예고편에서 우리그림에 대한 사진들이 나오니까 "저거 나도 전시장가서 봤던거야"하는걸 보니 우리나라 옛미술에서 풍기는 비슷한 그림풍의 느낌을 조금은 받아들였나보다.
데리고 다닐때마다 스쳐보더라도 분위기와 함께 기억에 남을거야..믿으면서도 어느땐 집중해서 보지 않는 것에 대해 혼내기도 하고, 속상해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스스로 아는체를 하며 기억을 더듬는 모습을 보니 무심코 지나치더라도 다 보고있음을..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리라 다시한번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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