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투스님의 지우 이야기를 읽으며 내내 사촌동생이 떠올랐어요.
저보다 네 살 아래의 제 사촌동생은 하나밖에 없던 외삼손의 큰 아들이죠.
외삼촌은 딸만 내리 낳은 집의 귀한 아들이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저희 엄마가 "느그 엄마 아들 낳았단다!" 란 말에 펄쩍 펄쩍 뛰면서
"우리 엄마, 아들 낳았다!!!!" 동네 방네 뛰어다녔던 걸 지금도 기억하십니다.
그런 귀한 남동생이 삼남매를 남겨 둔 채 오토바이 사고로 뇌를 다쳐 운명을 달리 하였지요.
음.. 아주 오래 전 일이네요. 그 때 제 사촌동생이 초등학교 입학 전이던가,, 뭐 그랬어요.
전라도에서 시집 온 외숙모가 경상도 시골 촌에서, 남편도 없는 집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농사 짓고 살았어요.
애가 셋이니 팔자를 고치기도 어려웠고 자식들만 생각하며 사신 거지요.
사촌 동생이 6학년이 되었을 때, 시골에서 계속 공부를 시켜봤자 농사 밖에 못 짓는다며
서울로 보내기로 결정이 된 거에요.
어른들 중 누구의 주장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집도 애가 셋, 중딩, 고딩, 대딩에 식당을 차려서 전업주부도 아니었던 엄마.
피 한 방울 안 섞인 고모부(저희 아빠)... 모두가 찬성한 것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여튼 사투리가 심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드는 사촌동생은 그렇게 서울로 왔어요.
많이 외로울 것이고, 엄마도 동생들도 보고 싶을테니 잘 해줘야지.. 했지만
야간자율학습까지 하는 제가 사촌동생과 얼굴을 마주 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나마 한 살 터울의 제 동생이 챙겨주긴 했지만
아이의 마음엔 미래에 성공해야겠다는 결심이 그리움과 외로움에 점점 흐려져 갔나 봅니다.
시골에 놀러갔을 때에는 그렇게 잘 웃던 아이가,
서울에서는 도통 웃지를 않는 거에요. 반항도 않고, 조용해지더군요.
그러더니 급기야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저희 엄마는 당황하셨습니다.
다시 가족 회의가 열리고,,
시골에서 아무리 공부 잘 해봤자 소용없다. 애를 잘 달래야 한다. 이제 돌아가면 다시는 서울로 못 온다...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결국은 외숙모가 아이를 데려 갔어요.
한석봉 엄마같은 마음으로 모질게 서울로 보냈지만
아이의 마음에 난 상처를 모른 체 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큰 결심을 하고 데리고 살기로 했던 저희 아빠가 화가 많이 나셨어요.
그렇게 참을성이 없고, 눈 앞의 것만 보면 아무 것도 못 됀다. 지금 이렇게 가면 앞으로 고모부 얼굴은 볼 생각도 말아라. 라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그렇게 몇 개월만에 아이는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들의 우려대로 제 사촌동생은 시골에서는 상위권이었지만
역시 우물 안 개구리였기에 이름 없는 지방 대학의 이름 없는 과를 나왔어요.
그러나 집으로 돌아간 후에 제 사촌동생은 자신의 위치만큼은 확실하게 깨달은 것 같았지요.
한 살 터울의 여동생에게조차 오빠로서의 역할을 당당히 했고,
혼자 되신 엄마에게는 더없이 든든한 아들이 되었어요.
군대를 가게 된 제 사촌동생은 경찰서로 배정을 받게 되었어요. 전경이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아이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 놓았지요.
거기에서 '경찰이 되어야겠다'라고 생각을 한 거에요.
뚜렷한 목표가 서고 동기가 확실해지니 시험도 몇 번만에 통과해서 지금은 경찰 공무원으로 서울에서 살아요.
삼년 전 같은 경찰 공무원인 아가씨와 결혼해서 얼마전 사랑스런 딸도 얻었구요.
명절 때나,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와요.
큰 고모와 고모부가 자기에겐 가장 큰 어른이라고,,
전화 할 때마다 저희 삼남매의 안부를 묻고, 큰 고모의 건강을 챙겨요.
자기보다 먼저 시집 간 여동생 남편에게도 친정 오빠로서 아버지 없는 서러움 안 느끼게
군기 확실히 잡고, 아빠 얼굴도 모르는 막내 동생은 결혼 전까지 서울에 데리고 살면서 잘 건사했지요. 혼자인 엄마에게 둘도 없는 효자인 것은 당연하구요.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건 그야말로 우물 안 생각인지도 몰라요.
비록 방법상의 충돌이 있을 수도 있겠고,
원치않는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진심은 통하고.
때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살 수도 있어요.
고치려고 하기 보다
네가 있어 너무 좋다..라는 인정함이
아이를 살릴 수도 있구요.
사촌 동생 결혼식에서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을 닦았어요.
어른들이 흔히들 하는 말 있잖아요.
"제 아빠가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
기특했고, 고마웠어요.
맞아요...
참 고마웠어요...
지우에게도 이런 경험이 어떤 계기가 되고 동기가 되면 좋겠네요.
다시 집으로 돌아가 집을 싹 치워 놨다는 글에서
저는 희망을 보았어요.
그깟 핸드폰 게임 좀 한다고,
공부 좀 열심히 안 한다고,
나쁜 아이는 아니거든요.
핸드폰에서 사촌동생 아기의 사진을 보며 하염없이 미소짓는
저희 엄마의 행복한 마음이
조만간 비투스님에게도 생길 거라 믿어요.
결국은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기는 거... 아니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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